[인간 행동의 진화]귀여워지고 싶은 마음

말똥말똥 둥글고 큰 눈, 얼굴의 반이나 되는 이마, 둥글고 큰 머리, 앙증맞은 턱과 토실토실한 볼, 작은 코.
우리를 미소짓게 하는 녀석의 이름은 바로 '아기'다. 비단 인간의 아기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강아지도, 망아지도, 새끼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어린 동물의 얼굴이나 체형,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귀여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혹시 ‘나도 아기처럼 귀여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귀여운 대상을 보고 느끼는 마음만큼이나, 스스로 귀여워지고 싶은 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왜 귀여워하고, 또 귀여워지고 싶은 것일까? 아니, 그보다도 과연 귀여움이라는 느낌은 대체 왜 있는 것일까?
유아적 특징
원래 포유류의 새끼가 가진 형질상의 특징은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다. 공격이나 방어, 포식, 짝짓기를 위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다. 따라서 새끼는 성장과 발달에 꼭 필요한 형질만 가지고 있다. 행동이든 체형이든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강하고 귀엽다'는 진술은 형용모순이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유아적 특징을 보고 귀여워하는 경향은 5세 이후에 나타난다. 4세 아이는, 물론 본인도 아직 어린 아이지만, 아기의 얼굴을 보아도 ‘어른처럼’ 귀여워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귀여움은 보살핌을 위한 정서적 형질인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의 평균 출산 간격은 약 4년. 즉 4살 이하의 아이는 동생이 없다. 평균 4살 터울이므로 5살 이후에야 동생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아기를 보고 귀여워하는 형질도 5살 이후에야 나타난다는 것이다.
귀여움과 보살핌의 공진화

‘귀엽다’라는 느낌은 보호와 양육, 보살핌이라는 행동 반응을 유발한다. 이를 콘래드 로렌츠는 해발인(releaser)에 따른 고정행동패턴이라고 하였다.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라, 본능적인 행동이다. 귀여운 대상을 보면 즉각적으로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곰곰이 따져보고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귀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하지만 수명은 한정되어 있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경쟁을 통해 짝을 찾고 번식과 출산을 해야 한다. 만화영화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처럼 언제까지나 초등학생의 몸을 하고 있다면 분명 보살핌은 넘치도록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란이와 결혼하여 자손을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동물은 젖을 뗄 무렵, 체형과 행동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독립과 투쟁의 시기다. 거친 자연에서 풍찬노숙하며 살아야 한다. 먹이를 구하고, 동성의 라이벌과 경쟁하며, 짝을 찾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성장과 발달의 과정이다. 이제 귀여움이 필요 없는 어른이다.
언제까지나 귀여워지고 싶어
하지만 예외가 있다. 귀여움을 받는 것이 언제까지나 유리한 생태적 조건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나잇값을 못하고’ 귀여운 녀석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바로 우리 속에 사는 가축이다.
인간의 보살핌을 받는 가축은 성체가 되어도 독립할 필요가 없다. 아기를 귀여워하는 고정행동패턴은 다른 종의 새끼를 볼 때도 활성화된다. 덕분에 다른 녀석보다 귀엽게 생긴 가축이 더 잘 살아남았다. 귀여운 강아지는 아무래도 복날을 무사히 넘길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물론 자신처럼 귀여운 새끼를 낳을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가축은 주인이 포식자의 공격을 막아줄 뿐 아니라, 먹을 것도 주고 보금자리도 마련해 준다. 번식도 자신의 노력보다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자유를 잃어버린 서글픈 가축의 삶이다. 하지만 진화는 ‘자유를 향한 숭고한 이상’보다는 번식성공률로 결정된다.
그래서 가축은 성체가 되어도 여전히 귀여운 경우가 많다. 특히 애완동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냥개 혹은 일을 부리는 소나 말, 풀어 키우는 가축은 좀 다르지만, 집에서 키우는 가축 대부분은 나이가 들어도 상당히 귀엽다.
귀여운 현대인
인간도 그렇다. 넓게 보면 인간은 스스로 가축화된 동물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귀여울 수 있다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 인류가 만들어낸 높은 수준의 사회적 조직은 사실상 ‘모두가 서로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가축인’ 상황이다. 가축이라는 어감이 별로 맘에 들지는 않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인간은 어른이 되어도 제법 귀여움을 유지하는 독특한 종이다. 팔다리도 길어지고, 얼굴도 더 ‘어른’스럽게 바뀌지만, 침팬지나 고릴라에 비하면 미미한 변화다. 게다가 행동 형질은 더 그렇다. 어른이 되어도 놀기를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종이다. 애교도 부리고, 아양도 떤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더 귀여우려고’ 노력한다. 인스타그램을 잠깐만 들여다보자. 볼을 잔뜩 부풀리고, 손가락을 턱에 갖다 대면서 가능한 한 귀엽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진이 가득하다.
사회는 점점 고도로 복잡해지고 있고, 야생의 삶을 살 가능성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들은 정말 남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자연의 세계에서 자급자족할 일도 없고, 포식자의 공격을 받을 일도 드물고, 육체적 힘으로 짝을 구할 일도 없다. 유형화된 외모, 그리고 유형화된 행동이 더 유리한 세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여움을 권하는 세상이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