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8일 법정에 온 공중부양, 유죄의 나비효과 [오래 전 '이날']

이혜리 기자 2020. 9. 18. 0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심서 유죄로 바뀐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 사건

10년 전 오늘(2010년 9월18일) 경향신문에는 <강기갑 ‘공중부양’ 2심선 유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신문과 대기업이 보도 기능을 포함한 방송사, 즉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내놓았습니다. 야당이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밀어주기법’이라면서 비판했고,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반대 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했습니다. 국회 경위들은 본회의장 문에 붙어있던 ‘MB 악법 저지’ 현수막을 철거하는 등 농성을 강제로 해산하려고 했습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를 막다가 경위들과 충돌하고, 국회 사무총장실에 가 항의했다가 공무집행방해·공용물건손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입니다.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강 의원이 탁자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는 모습이 나중에 ‘공중부양’이라고 회자된 바로 그 장면입니다. 당시 언론에선 ‘국회 폭력’ 사건으로도 불렀습니다.

2009년 1월5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왼쪽)의 집무실 탁자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이날 오전 국회 경위들이 로텐더홀에서 민노당 당직자들을 강제로 끌어낸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화와 토론의 장인 국회에서 일종의 강제 조치인 국회의장 질서유지권이 행사될 수 있는 요건은 엄격히 따져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즉 1심 재판부는 본회의가 개최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란행위가 있을지 모른다는 개연성만으로 사전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강 의원 사건 때도 질서유지권이 본회의와 무관하게 발동됐기 때문에 질서유지권 자체는 물론 현수막 철거 등이 모두 부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적법한 공무수행을 전제로 하는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후 한나라당은 법원이 정치적으로 편향돼있다면서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2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박대준)는 2010년 9월17일 강 의원에게 일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반대로 질서유지권의 행사 요건은 중요치 않다고 봤습니다. 현수막 철거 등은 모두 적법했고, 강 의원 행위는 폭행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 현수막이 강제로 철거된 사례가 없다거나, 민주노동당의 정당 활동 보호가 국회 질서유지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도 댔습니다.

2심 재판부는 형량을 벌금 300만원으로 정했는데 양형이유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사건 범행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입법활동 등의 의정 업무를 수행해야 할 국회의원이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 문에 불법으로 현수막을 부착하고 그 앞에서 장기간 농성하다가 현수막이 강제로 철거되자,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않은 채 극도로 흥분해 국회 경위 등 국회 사무총장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고 공용물건을 손상한 것으로서 그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 (…) 피고인의 행위가 국회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정책 관철을 위해서라면 집단적인 물리력 행사까지 불사하는 행태를 취해 왔던 부끄러운 우리 의정 역사에 일부 기인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2009년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현 국무총리)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반 형사사건으로는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아야 의원직이 상실되기 때문에 벌금 300만원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형량이었습니다. 강 의원은 당시 2심 판결에 대해 “방송을 빼앗아가는 날치기 통과는 무죄이고, 그걸 막기 위한 소수정당의 정당한 의정활동은 유죄라는 것은 정치적 입김을 탄 사법적 탄압”이라며 “이렇게 되다가는 다수당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 의원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처벌을 받았고, 소위 ‘동물국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명목으로 국회 선진화법도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국회 폭력’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한나라당의 후신으로 이제는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논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일으켜 국회의원 수십명이 재판에 넘겨진 상태입니다. 한편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장에도 강 의원 사건이 등장합니다. 강 의원 판결이 대법원 입장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1심 판사를 ‘문제 법관’으로 분류하고 인사 불이익을 검토하도록 시킨 게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로 돼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정치고, 무엇이 폭력일까요?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