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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이 87세를 일기로 암으로 숨졌다

조회수 2020. 9.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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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의 상징과도 같았던 긴즈버그 대법관은 18일 췌장암으로 숨졌다.

미국 대법관이자 여성 인권 옹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87세를 일기로 암으로 사망했다고 대법원이 밝혔다.

긴즈버그는 18일 전이성 췌장암으로 워싱턴DC의 자택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대법원은 성명에서 말했다.

올해 초 긴즈버그는 암이 재발해 화학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진보의 상징과도 같은 페미니스트였다.

긴즈버그는 대법원에서 27년간 봉직한 최고령 법관이자 두 번째 여성이다.

"우리 나라는 역사적 존재감을 가진 법학자를 잃었습니다." 존 로버트 연방 대법원장은 성명에서 말했다. "대법원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소중한 동료를 잃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애도합니다. 그러나 우린 미래 세대가 지금 우리가 그를 알고 있듯 지치지 않고 굳건히 정의를 수호했던 인물로 그를 기억할 것임을 자신합니다."

진보 성향 대법관 네 명 중 하나인 그의 건강 문제는 언제나 관심거리였다. 긴즈버그의 죽음으로 공화당원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11월의 대선 이전에 대법관을 지명해 보수 성향 대법관의 수를 더 늘리려 할 가능성이 생겼다.

긴즈버그는 죽음을 얼마 두지 않은 때에 그러한 행위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했다. "나의 가장 열렬한 소망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내가 교체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 NPR은 그가 손녀에게 쓴 성명의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속히 긴즈버그 후임으로 보수 대법관을 지명할 것이라고 백악관의 소식통이 BBC 파트너사인 CBS뉴스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네소타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긴즈버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건 몰랐군요. 그는 멋진 삶을 살았죠. 달리 할 말이 있겠습니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대법원 최고령 법관이자 여성 인권의 강력한 옹호자였다

긴즈버그는 다섯 번의 암 발병에 시달렸다. 가장 최근에 발병한 것은 2020년 초였다. 최근 수 년간 여러 차례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매번 신속히 업무에 복귀했다.

7월 발표한 성명에서 긴즈버그 대법관은 항암치료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대법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종종 제가 업무에 전력을 다할 수 있을 때까지 대법원의 일원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했다. "저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긴즈버그는 왜 중요한 인물인가?

미국 대법원의 법관은 종신직이며 본인이 은퇴를 택하기 전까지 계속 일할 수 있다. 긴즈버그의 지지자들은 보다 보수적인 대법관이 긴즈버그의 뒤를 이을 수 있음을 우려해왔다.

미국 대법원은 가장 논란이 되는 법령이나 주 정부와 연방정부 같은 분쟁, 집행정지 문제 등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 권한을 갖곤 한다.

최근 대법원은 미국 50개주 전부에 동성혼을 허용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여행금지령의 시행을 허용했고 탄소 배출을 경감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계획을 지연시켰다.

긴즈버그의 죽음은 그의 후임 자리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을 야기할 것이며 11월의 대선을 앞둔 대법원의 미래에 대한 논란도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이후 두 명의 대법관을 지명했으며 현재의 대법원은 많은 판결에서 5:4로 보수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이 대법원 후보를 지명하면 상원에서 이를 인준하는데 상원의 여당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넬은 대선 전에 지명자가 나오면 그에 대한 표결이 있을 것이라고 18일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은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유권자가 먼저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 대통령이 상원이 고려할 대법관을 지명해야 합니다."

긴즈버그는 무엇을 남겼나?

60년 이상 법률가로 활동하면서 긴즈버그는 미국에서 진보와 보수 모두의 존경을 받는 독보적인 법학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진보계에서는 대법원에서 낙태권부터 동성혼 등의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안에서 그가 취한 진보적 스탠스 때문에 그를 우상화했다.

1933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긴즈버그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수학했는데 당시 500명 가량의 학급에서 여성은 긴즈버그를 비롯해 9명에 불과했다.

긴즈버그는 최우등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건의 일자리 제안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긴즈버그는 법조계에서 다양한 직업을 수행하면서 꾸준히 버텼다.

1972년 긴즈버그는 대표적인 미국 진보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에서 여성인권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창설했다. 같은해 긴즈버그는 콜럼비아 로스쿨에서 최초로 테뉴어를 받은 여성 교수가 됐다.

1980년 긴즈버그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연방법원 다양성 증진 노력의 일환으로 컬럼비아 특별구 상소법원의 판사로 지명됐다. 긴즈버그는 종종 진보 혁명가처럼 묘사되긴 하나 상소법원에서 그의 판결은 온건한 성향을 보인다.

1993년 대법관 임명 청문회에서의 긴즈버그

긴즈버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1993년 대법관에 지명됐고 이는 지금까지 대법관에 임명된 단 4명의 여성 대법관 중 두 번째였다.

말년에 긴즈버그는 국가적 상징이 됐다. 신랄한 반대 의견 표명 등으로 온라인에서 긴즈버그의 팬들은 그에게 래퍼 '노토리어스 BIG'를 패러디한 '노토리어스 RBG'란 별명을 붙였다.

이로 인해 긴즈버그는 젊은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소개됐고 이윽고 컬트적인 추앙을 받는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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