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니 '개신남'..견공들의 미술관 관람

지난 봄부터 반려인들의 기대를 모은 전시가 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다. 인간과 개의 반려를 주제로 하기도 하지만,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은 사상 최초로 국립미술관에 개가 초대되었다는 점이었다.
애초 5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미뤄지다 지난 9월25일 마침내 전시회가 시작됐다. ‘힙한’ 전시에 애니멀피플도 빠질 수 없어 부랴부랴 전시장을 찾았다. 견공 관람객의 감상을 살피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 권남희씨와 그의 반려견 ‘나쵸’와 함께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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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따로·야외정원…반려견 배려한 동선
전시는 입장부터 조금 달랐다. 반려견 동반 관람객과 일반 관람객의 출입 방향을 분리한 것이다. 반려견 동반 관람객들은 지하 주차장을 통해 곧장 전시장 입구로 올라갈 수 있었다. 동선을 분리해 반려동물과 인간 모두의 편의와 안전을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40여 분 차를 타고 온 나쵸는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실례’를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한 것일까. 티켓박스에서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배변 봉투까지 받아들고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바로 잔디밭이 펼쳐졌다. 넓직한 전시마당에 알록달록한 설치물과 커다란 볏짚 미로가 꾸며져 있었다. 작품명 ‘알아둬, 나는 크고 위험하지 않아!’였다.


전시작이지만 한편으로는 실내에 들어가기 전 반려견들이 공간을 탐색하고 배변을 하도록 설계된 장소였다. 마당에는 먼저 입장한 개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볏짚 미로에서 노즈워크를 즐기고 있었다. 전시는 코로나 확산방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등에 따라, 회차 당 입장 인원을 제한했다. 반려견 동반 관람객 또한 1회차 당 6팀만 입장이 가능했다.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개를 위한 도구’를 상상했다는 작품 설명처럼 설치작품은 포토존이 되기도 하고, 개들이 돌아가며 영역표시를 해 ‘전시장 방명록’이 되기도 했다. 5분 남짓, 나쵸도 작품 위에 올라가 사진도 찍고 볏짚에 가서 노즈워크도 했다. 함께 입장한 다른 개들과 스치듯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실내 전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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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따라 한바퀴, 산책길에 녹아있는 작품들
복도를 따라 7전시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노란색과 파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가 김경재의 ‘가까운 미래, 남의 거실 이용방법’과 김용관 작가의 ‘다가서면 보이는’은 적녹색맹인 개들을 고려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노랗고 파란 강아지의 거실에 들어서자 개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나쵸가 파란색 경사로에 따라 올라서자 남희씨와 동일한 높이에서 비디오 작품 ‘기다릴 수 없어’(앨리 허경란)를 관람할 수 있었다.


‘개들의 거실’에 놓인 테이블과 좌석도 작품의 일부분이었다. 인간이 앉기에는 조금 낮은 의자와 방석이 놓인 이 공간은 또 다른 비디오 아트를 관람하는 좌석이면서 동시에 평소 개들이 인간의 공간에서 생활하며 느꼈을 불편함을 체험하는 장소가 됐다. 이곳에서 상영중인 작품 ‘안녕’(데이비드 슈리글리)처럼 친밀하지만 다른 존재인 개와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전시관을 도는 개들의 산책길에 작품들이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조경가 유승종의 ‘모두를 위한 숲’은 7전시실 전체의 배경이 되는 작품이었다. 입구부터 곳곳에 놓여있는 식물들과 나무조각들은 마치 작은 공원을 옮겨놓은 느낌을 줬다. 실제로 나무조각으로 작은 동산을 만들어 개들이 산책을 나온듯 곳곳을 둘러보며 노즈워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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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갈 수 있는 공간 늘어났으면”
나쵸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던 작품은 ‘토고와 발토-인류를 위한 영웅견 군상’이었다. 토고와 발토는 1925년 알래스카 극한의 추위에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면역혈청을 싣고 밤낮으로 개썰매를 끈 영웅견이다. 정연두 작가는 이 영웅견의 군상을 개들이 좋아하는 사료와 간식으로 뭉쳐 빚어냈다. 과연 나쵸가 좋아하는 냄새가 날까. 아쉽게도 나쵸는 오직 바닥에 깔린 나무조각에만 관심을 보였다. 개들이 자유롭게 냄새를 맡기엔 너무 높았지만 영웅 조상들과 사진을 찍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관람시간은 40분 남짓. 생각보다 짧았다. 개들과 함께 관람한 탓에 비디오 작품들을 여유롭게 못 본 탓도 있지만, 관람 공간이나 작품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탓도 있었다. 전시실 구석구석에 작품들이 배치되어 못 보고 지나친 작품들도 많았다. 개들이 주인공인 전시지만 인간들을 위한 설명이 전시관 안에 좀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려인들은 개와 미술관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격이라고 했다. 3살 반려견 꼬미와 전시장을 찾은 김은아씨는 “이런 공공장소에 개가 같이 오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참 소중한 경험인 것 같다. 앞으로도 어디든 같이 갈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동행한 권남희씨는 “미술관이라는 권위적인 공간을 개방했다는 것에 큰 감격을 느꼈다. 전시가 ‘개에게 전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에 포커스가 너무 맞춰져 있어서 다소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의 미술은 이렇게 개방적이고 유연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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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초대했다기보다 개가 들어온 것”
전시를 기획한 성용희 학예연구사(이하 학예사)는 이번 전시가 미술관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전시임을 강조했다. 성 학예사는 전시 소개에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이자 대표적인 공공장소인 미술관에 개를 초대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반려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 타자들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적었다.
성 학예사는 “실제로 관람객 중에는 반려견 때문에 처음 미술관을 찾았다는 분들도 꽤 있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미술관에 개가 초대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개가 우리 삶에 스며들어 왔듯이 미술관에도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종료된 이번 전시에는 약 1만7000여 명이 다녀갔다. 개를 동반한 관람객도 2000여 명이 참가했다. 제한 인원 관람으로 미처 예약을 못해 아쉬웠다는 반려인들도 많았다. 개를 위한 미술관 2탄이나 연장 전시가 가능할까. “다녀가신 분들의 반응에 달렸다”는 게 성 학예사의 답변이다. 전시를 놓친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youtube.com/MMCAKorea)과 전시 내용과 관련 글을 묶은 책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을 통해 아쉬움을 달랠 수을 것 같다.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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