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의 열정으로 태동하다

자동차 경주가 없었다면 오늘날 아우디는 없었다. 본래 칼 벤츠 아래서 기술자로 일했던 아우디 설립자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자동차 경주를 향한 열정을 좇아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1899년 독일 쾰른에 워크숍을 세워 독립했고, 1904년 츠비카우에서 자동차 제조사 호르히로 거듭났다. 하지만 자신의 성을 따서 만든 회사에서 불화로 쫓겨난다.

1909년 4월 25일, 그가 다시 회사가 아우디로, 당시 유럽 최고의 자동차 경주 중 하나였던 오스트리아 국제 알파인 경주에 출전해 1912~1914년 무려 3년간 연속 우승을 차지한다. 영광의 주인공은 훗날 ‘알프스의 승자(Alpine Victor)’로 불리는 아우디 타입 C. 알루미늄으로 빚은 가벼운 차체에 3.5L 가솔린 엔진을 얹고 경쟁차를 압도했다.

1932년 아우디·호르히·반더러·데카베 등 네 제조사가 ‘아우토 우니온’이라는 한 깃발 아래 모인 뒤에도 모터스포츠 사랑엔 변함이 없었다. 1933년 ‘아우디 프론트’로 어김없이 자동차 경주에 뛰어든다. ‘유럽 최초의 6기통 앞바퀴 굴림 승용차’ 아우디 프론트는 여러 경주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의 명차와 자웅을 겨루며 이름을 날렸다.
실버애로우의 시대

아우토 우니온은 1937년 세계 최초의 기록을 쓴다. 경주차 ‘스트림라이너’로 자동차 역사상 처음 시속 400㎞의 벽을 넘어섰다. 지금으로부터 83년 전 이야기다. 이토록 당시 아우토 우니온은 시대를 초월한 성능으로 숙적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와 승부를 펼쳤는데, 이 경쟁으로 등장한 차들이 지금까지도 모터스포츠의 전설로 불리는 ‘실버애로우’다.

두 브랜드의 앞선 기술, 독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낳은 괴물이었다. 당시 정권을 잡은 아돌프 히틀러는 대중을 휘어잡기 위해 오늘날 포뮬러 원 경주의 기원, 그랑프리 레이스 제패를 목표 삼는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막대한 지원금을 전통의 강자 벤츠와 신예 아우토 우니온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 1934년 아우토 우니온 타입 A와 벤츠 W25가 등장한다.
성능은 압도적이었다. 타입 A는 V16 4.36L 엔진을 품고 최고속도 시속 275㎞까지 달릴 수 있었다. W25는 직렬 8기통 3.36L 수퍼차저 엔진을 얹고 시속 290㎞로 질주했다. 독일 팀의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그랑프리 레이스를 주도해왔던 이탈리아 및 영국 경주팀은 두 독일 팀의 성능 앞에 사실상 들러리로 전락한다.
이제 경주의 뜨거운 감자는 아우토 우니온과 벤츠의 라이벌 대결. 알루미늄 패널을 그대로 드러낸 두 경주차는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서 ‘실버애로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둘의 대결은 막상막하였다. 엔진은 벤츠가 강력했다. W-25는 타입 A보다 19마력 더 높은 314마력, 1936년 등장한 W-125도 타입 B보다 120마력 더 우월한 640마력을 냈다.

그럼에도 아우토 우니온은 1934~1937년 총 54회의 경주에서 32회나 승리를 거머쥘 만큼 선전했다. 비결은 독특한 구조였다. 가장 무거운 부품인 엔진을 좌석과 뒤 차축 사이에 얹고 뒷바퀴를 굴리는 미드십(Midship) 방식으로,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완성했다. 덕분에 빼어난 밸런스를 자랑했고, 그 결과 한층 강력한 엔진 품은 벤츠를 넘어설 수 있었다.
실버애로우 사이의 경쟁은 최고속도로 불붙었다. 1937년 아우토 우니온은 자동차로서는 세계 최초로 시속 400㎞를 넘어섰다. 정확히 시속 406㎞였다. 그러나 이듬해 같은 경기에서 갑작스런 돌풍으로 경주차가 수차례 구르면서 아우토 우니온의 천재 드라이버 로제마이어가 만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독일 정부는 더 이상 최고속도 경쟁을 열지 않았다.

아우토 우니온과 벤츠의 자존심 싸움은 독일 자동차 산업을 극적으로 발전시켰다. 성능 높이기 위한 온갖 기술이 등장해 수많은 불가능의 벽을 허물었다. 두 브랜드 경주차의 최종 버전 아우토 우니온 타입 D와 벤츠 W-154는 3.0L 엔진으로 400마력을 거뜬히 넘겼다. 그러나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화려했던 실버애로우의 시대도 막을 내린다.

한편, 실버애로우 단어의 어원은 1934년 벤츠 경주차가 규정 무게 750㎏를 초과하는 바람에 흰색 페인트를 깎아 무게를 줄이면서 시작했다는 얘기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담당 기술자가 훗날 “벤츠 경주차의 페인트를 벗겨낸 적은 없다”고 말하거나, 1932년 이미 라디오 방송에서 ‘실버애로우’란 단어가 등장하는 등 다소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랠리의 기준을 바꾸다, 콰트로
‘무거운 사륜구동은 후륜구동(뒷바퀴 굴림)을 이길 수 없다.’ 1970년대까지 모터스포츠 업계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 랠리 선수권(WRC)은 180° 뒤집힌다. 사륜구동 쿠페 아우디 콰트로가 랠리 경주차 기술의 변곡점이었다. 실제로 아우디 콰트의 등장 이후 WRC에서 사륜구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바뀐다.

등장부터 화려했다. 1981년 출전 첫해, 몬테카를로 시험 주행에서 1분이나 먼저 출발한 경쟁자를 순식간에 추월하면서 세간의 집중을 한 몸에 받는다. 도로와 사막, 진흙길 등 다양한 길이 섞여 있는 랠리 특성상 네 바퀴 굴리는 콰트로의 경쟁력은 또렷했다. 다만 WRC 출전 경험이 부족했던 아우디는 최고의 무기를 쥐고도 출전 첫해 종합 우승을 놓쳤다.

1982년은 ‘광기의 경주’로 불린 WRC 그룹 B가 열린 해. 경주 참가를 위한 최소 생산대수를 200대로 줄이고 거의 모든 성능제한을 푼, 사실상 ‘무제한 체급’이었다. 고삐 풀린 콰트로는 트로피 사냥에 나선다. 1982년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 및 드라이버 부문 2위를 차지했다. 1983년엔 드라이버 부문 종합우승을 차지한다. 아우디의 랠리 전성시대가 열렸다.
1984년 엔진을 가운데 품은 미드십 경주차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콰트로도 대대적 수정을 거친다. 가령 허리를 무려 340㎜나 잘라낸 숏보디 스포츠 콰트로를 만들어 경주에 출전했다. 결과는 제조사와 드라이버 부문 세계 챔피언. 앞쪽에 엔진 얹은 구조에도 불구하고 콰트로는 신뢰도 높은 사륜구동 시스템과 5기통 터보 엔진으로, 미드십 경주차를 짓눌렀다.

한편, 그룹 B는 점차 과열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미 미드십 해치백 경주차부터 양산차와 동떨어진 구조였다. 아우디 스포츠 콰트로 역시 진화를 거듭하며 출력이 500마력까지 치솟았다. 결국 1986년, 포드 경주차가 관중을 덮쳤다. 란치아 경주차는 절벽으로 굴러 떨어져 선수 두 명이 사망했다. 아우디는 경주 중 기권을 선언하고 퇴장한다.

이후 WRC 그룹 B는 폐지되고, 경주차 기준을 양산 5,000대로 끌어올리는 등 제한을 더한 그룹 A가 나왔다. 여기에서도 아우디는 1987년 아우디 200 콰트로를 출전시켜 사파리 랠리 1~2위를 휩쓸었다. 아우디는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총 23회 경주 우승, 매뉴팩처러 부문 종합 우승 2회, 드라이버 부문 종합우승 2회라는 굵직한 결과를 남겼다.
르망 24시, 디젤 신화를 열다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아우디는 새 무대로 눈을 돌린다. 르망 24시다. 24시간 동안 누가 가장 긴 거리를 달렸는지 겨루는 경주다. 출력과 운전 실력은 물론 극한의 내구성도 필요하다. 아우디는 전용 경주차로 출전하는 최고 클래스인 LMP1 정복을 노렸다. 1999년 지붕 없는 R8R과 카울 씌운 R8C로 출전했는데, R8R 두 대가 3~4위로 들어왔다.

이듬해 아우디는 개선을 거친 R8 경주차를 내보낸다. 결과는 1~3위 싹쓸이. 출전 1년 만에 르망 24시 왕좌를 꿰찼다. 아우디 경주차는 24시간 동안 트랙을 368바퀴나 돌았는데, 4위로 들어온 경주차를 무려 20바퀴 차이로 압도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2002년까지 3년 연속 우승, 2004년 1~3위 석권, 2005년 1위, 3위로 절대강자로 등극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급기야 어느덧 르망 24시의 관심사는 ‘누가 우승할까?’가 아닌, ‘이번에도 아우디가 우승할까?’로 바뀌었다. 2004년 아우디가 세운 최고 기록은 무려 379바퀴에 달했다. 1등의 독주가 점차 지루해질 찰나 아우디는 새로운 카드로 디젤 엔진을 꺼낸다. 연료 효율 좋고 내구성 뛰어난 디젤 엔진으로 더 멀리 달려 보려는 속셈이었다.

예상은 적중한다. V12 디젤 엔진 얹은 새 경주차 R10은 2006~2008년 3년 연속 우승을 거둔다. 르망 24시 최초 디젤 경주차의 우승이다. 이후로도 아우디는 2010년, 2011년 디젤 경주차 R15 플러스와 R18로 연속 우승 기록을 써 내려갔다. 특히 2010년엔 397바퀴를 달려 르망 24시간 경주 역사상 최고의 기록마저 세웠다.

2012년부터는 디젤 엔진에 전기모터를 덧붙인 R18 e-트론 콰트로 하이브리드 경주차로 새로운 도전을 펼친다. 물론 우승이다. 2014년까지 우승 행진을 이어갔다. 2010년부터는 4년 연속 우승 기록까지 세웠다. 이로써 아우디는 2016년 LMP1 클래스 철수 때까지 르망 24시에 17번 참가해 13번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음 회에 계속)
글/윤지수(로드테스트 기자)
사진/아우디
*참고문헌
<매거진B No.23 아우디>|제이오에이치
<카북>|사이언스북스|자일스 채프먼
<폴크스바겐 스토리>|생각의 나무|페르디난트 피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