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레시피] 리더가 바뀌면 처신도 바뀌어야 한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온 리더와도 돌발 상황은 생길 수 있다. 리더가 바뀐다면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이 경우 모든 데이터를 새롭게 작성해야 한다. 조심할 것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리더 앞에서 전임 리더와 비교하는 일이다. 부등호가 신임 리더 쪽으로 열려 있어도 비교 자체에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짜장을 좋아해도 가끔은 짬뽕을 찾는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정의선 부회장이 취임했다. 현대차그룹이 정주영, 정몽구 회장에 이어 본격적으로 3세 경영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와 함께 재계 역시 젊은 총수들의 등장으로 더욱 활력을 띄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운영되고, LG그룹의 구광모 회장,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 한화그룹 한화솔루션의 김동관 사장 등 모두 3050세대가 최고 경영자들이다. 이들은 누구보다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주도하면서 한 발 빠른 결정으로 기업과 한국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주목을 모으는 기사들이 있다. 일테면 ‘정의선의 사람들’과 같은 기사들이다. 흥미를 주긴 하지만 사실 각 그룹의 사장단들은 이미 오너의 사람들이다. 이 중에서 회장의 특별한 신임을 받거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몇몇 임원들을 언론은 이렇게 호칭한다. 당연히 젊은 총수의 측근들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선대 회장 때부터 회사의 중책을 맡으며 능력과 충성심을 증명한 임원도 있고, 선대 회장이 후계자에게 충실한 참모 역할을 부여한 ‘특별한 임원’도 있다. 이들은 후에 이 젊은 총수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때 다시 한번 ‘그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기업 임원들과 이야기해 보면 그들은 일에 대한 열정에 불타는 사람처럼 보인다. 해서 조금은 짓궂은 마음에서 애로 사항을 물어본다. 물론 속내를 다 알 수 없지만 대개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를 제일 고민한다. 그 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자신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또 코로나19 시대의 불확실성으로 불황과 위기 돌파를 고민하는 임원도 있고, 총수의 지시를 현장에 녹여내는 현명한 방법을 고민하는 임원도 있다. 이런 고민들 중에 독특한 답변도 있다. 바로 ‘2대에 걸쳐 총수를 모시는 자신의 처신’이다. 물론 많은 숫자는 아니다. 대개의 기업에서 선대 회장을 모신 가신 그룹은 새로운 회장이 취임하면서 2선으로 후퇴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행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검찰총장이 취임하면 총장보다 위 기수 검사들이 사퇴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재벌급 회사가 아닌 중견 회사에서도 2대에 걸쳐 근무하는 임원들은 상당히 많다. 이들이 갖는 고민의 공통점이 바로 ‘차별화된 리더십에의 적응’이다.
현대차그룹만 해도 선대 정주영 회장은 창업주로서, 2대 정몽구 회장은 그룹의 확장과 안정을 도모할, 3대 회장이 된 정의선 회장에게는 새로운 현대차그룹을 이끌어 갈 의무와 목표가 있다. 당연히 시대와 사회의 변화, 다각화된 국제 환경 등에서 리더십은 더 진화하고 더 정교하고 더 전략화되어야 할 것이다. 총수와 기업에게 부여된 임무와 목표가 다르듯 임원들의 자세와 리더십 역시 변화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물론 기업의 목표는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화살을 날릴 때 시위에서 단 1도만 차이 나도 과녁에 꽂히는 활이 애초의 목표 지점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새로운 총수가 목표한 그룹의 장기 비전, 운용 방식은 숲 속에서 나무를 찾듯 정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 새로운 리더와 일을 할 때 무엇보다 새로운 리더십의 정체를 파악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대 회장님은 안 그러셨는데’, ‘선대 회장님이라면 그렇게 결정 안 하셨을 텐데’라는 마음을 품고 새로운 리더 옆에 머무는 것은 리더와 임원 그리고 기업 모두에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무더운 여름에도 냉수보다는 온수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 여름에 몸을 따뜻하게 하면 찬바람 부는 겨울에 그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장이 좋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온수를 마시던 사람도 때로는 속 시원한 냉수나 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만약 상사가 그런 경우라면 당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그래도 장이 안 좋으시니 건강을 생각해서 온수를 드셔야 합니다” 혹은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정도 드시는 것은 건강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에서 어떻게 말해야 더 정답일까.
상황에 따른 순간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고집스럽게 ‘따뜻한 물’을 권해도 이 고집스러움을 자신에 대한 충성으로 받아들이는 리더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냉수’도 괜찮다는 권유를 상황에 따라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사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먼저 상사의 마음 크기를 파악하는 일이다. 비록 지금 냉수 한 대접을 마시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온수를 권하는 부하 직원의 마음을 헤아리는 상사인지,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군’ 하고는 부적합 딱지를 붙이는 상사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조직에서 리더와 상사를 모시는 기준은 ‘내’가 아니다. 상대가 있고 그 상대는 나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존재다. 그 존재, 즉 리더의 성품, 취향, 목표, 가치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리더의 마음은 언제든지 바뀌고 변화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더가 항상 짜장면을 선택한다는 고정 관념은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 절대는 없다. 리더가 짬뽕이 먹고 싶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리더는 부하 직원을 시험하고 싶어 한다. 어느 날, 리더가 임원에게 “먼저 가서 음식 시켜 놔요”라고 한다면, 임원은 당연히 리더를 위해 짜장면을 주문하고 리더의 취향을 생각해 양파와 고춧가루까지 준비한다. 음식이 나오고 바로 도착한 리더는 혼잣말로 “오늘은 이상하게 짬뽕이 더 당기던데, 짜장면이네. 그냥 먹지 뭐”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경우는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그만큼 리더는 이런 상황서도 임원이 어떻게 순발력을 발휘하는가를 보고 싶은 것이다. 정답은 무엇일까. ‘짬뽕과 짜장면을 두 개 다 시킨다’는 오히려 역효과다. 가장 근사치의 정답은 짜장면을 시키고 짬뽕 국물을 한 그릇 준비하는 것이다. 설사 리더가 짬뽕 국물을 먹지 않아도 이 정도의 준비성은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리더와도 이런 돌발 상황을 만날 수 있는데, 만약 리더가 바뀌는 상황이라면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리더 자체가 바뀌는 상황이다. 평사원들이라면 지금까지 같이 일했던 부장이 바뀌고 새로운 부장이 오는 경우다. 이런 때는 데이터를 새롭게 작성해야 한다. 각별히 조심할 것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부장 앞에서 전임 부장과 비교하는 언행이다. 부등호가 새로운 부장 쪽으로 열려 있어도 비교 자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자. 단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기준점이 내가 아닌 ‘그’라는 점이다.

2500년 전 춘추 시대는 영웅과 신화가 공존한 시간이었다. 국가들의 흥망성쇠, 영웅의 삶과 죽음,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의 탄생, 충신과 간신의 희비, 의리와 배신의 갈등, 수많은 전란과 민초들의 삶은 사마천의 『사기』 등에 기록돼 우리에게 교훈과 감동을 준다. 춘추 시대 수많은 영웅 가운데 ‘오자서’가 있다. 오자서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왕이 될 수 없는 자를 두 명이나 왕위에 앉혔다. 바로 오나라의 ‘합려’와 ‘부차’다. 그 공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국가 경영과 전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바로 자신이 왕으로 만든 부차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 이유는 새로운 리더십에 순응하지 못한 고지식이다.
오자서는 격정의 인간이었다. 초나라 공경 집안 출신이지만 하루아침에 멸족 당했다.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했다. 그의 목적은 초나라 평왕을 죽이는 것. 오나라에서 오자서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공자 광을 만난다. 그는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탁월한 계책으로 광을 왕으로 만든 오자서는 실력자가 된다. 오자서에게 큰 신세를 진 오나라 왕 합려는 오자서의 복수를 도와준다. 그 역시 춘추 패자를 꿈꾸던 야망가로 오자서의 욕망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오자서는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수도를 점령한 그는 가문을 멸족시킨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에 300번 채찍질을 퍼붓는 복수를 한다. 세상은 그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지만 오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초나라를 제압한 합려는 오자서를 앞세워 월나라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월왕 구천의 역공에 합려는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죽고 만다. 오왕 합려는 아들 부차에게 유언을 남긴다. “내 죽음을 갚아 주어라.” 부차는 와신상담, 마침내 월나라 왕 구천을 잡는 데 성공한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자 했지만 구천의 뇌물을 받은 간신 백비의 농간으로 구천은 살아 돌아간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월나라를 경계하라’ 했지만 부차의 욕망은 제나라를 점령한 후 춘추 패자의 자리에 있었다. 더구나 월왕 구천이 보낸 절세 미인 서시에게 빠져 버린 부차는 백비의 모함을 믿고 오자서에게 칼을 내려 자살을 명령한다. 오자서는 자결했다. 오자서는 오나라 왕 합려와 부차를 왕위에 올린 절대 공신이다. 또 그 공으로 오나라는 춘추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자서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유는 오자서의 굽히지 않는 강직함과 다른 의견을 무시하는 편협함 그리고 관용을 모르는 잔혹한 성품 탓이다. 군주로서 그릇이 크고 배포가 있는 합려는 오자서의 단점마저 포용했지만 부차는 오자서를 그저 ‘고집 센 올드 보이’로 여겼다. 사사건건 반대하는 귀찮은 신하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오자서는 기원전 6세기경 초나라에서 태어났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첫째가 오상이고 둘째가 오자서다. 오상은 온순한 성격이고 오자서는 한번 뜻을 세우면 굽히지 않았다.
초나라 태자의 태부(태자의 스승)는 오사, 소부(태자의 부스승)는 비무기였다. 소부 비무기는 오사를 출세를 위해 넘어야 할 산으로 생각했다.
태자는 진나라 공주와 결혼을 결정했다. 비무기는 진나라 공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천하제일의 미녀였던 것. 비무기는 평왕에게 달려가 “진나라 공주가 천하절색입니다. 왕께서 비로 맞으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혼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 어떠신지요?”라고 꾀었다. 평왕은 진나라 공주를 대면하고 욕심이 생겼다. 며느리를 부인으로 맞은 것이다. 그리고 태자에게는 다른 혼처를 찾으라 명한다. 비무기는 평왕의 총신이 되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무기는 태자를 모함했다. 비무기의 이간질은 어느덧 ‘태자가 반역을 도모한다’까지 커졌다. 평왕은 태자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무기는 태자와 오사를 같이 모함했다. 오사는 죽음의 덫에 걸린 것을 알았다. 비무기는 오사의 두 아들도 같이 제거해야 후환이 없다고 평왕에게 말했다. 평왕은 오사에게 “두 아들을 불러라. 그들이 온다면 너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말했다. 오사는 답했다. “장남은 말을 잘 듣는 아이라 분명 오겠지만 오자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오상이 평왕 앞에 당도했다. 평왕은 오사와 오상 부자를 사형시켰다.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겠다”고 맹세했다.
오자서는 오나라로 가 공자 광을 주목했다. 그는 야심가였다. 오나라 왕은 막내 계찰에게 왕위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계찰은 왕위를 사양했고 왕위는 장남, 차남으로 내려가다 결국 셋째 아들 요가 차지했다. 공자 광은 장남 계촬의 아들로 당연히 왕위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다 사촌에게 빼앗겼다며 불만이 가득했다. 오자서는 광의 야망을 간파했다.
오자서는 그에게 자객 전제를 소개했다. 전제는 요리사. 그의 요리 솜씨가 세상에 퍼졌다. 공자 광은 요왕을 집으로 초대했다. 공자 광을 믿지 않았던 요왕은 경호병을 거느리고 왔다. 창검으로 둘러싸인 식탁에서 광이 “전제가 만든 생선 요리가 별미입니다”라고 권했다. 생선 요리를 좋아하던 요왕은 전제를 들라 했다. 전제는 큰 생선 요리를 들고 요리를 권하는 척하며 순식간에 생선의 배에서 단검을 꺼내 요왕을 암살했다. 경호병들은 전제를 죽였지만 매복해 있던 광의 군사들이 경호병들을 모두 제거했다. 광은 궁으로 가 자신의 왕위 승계를 발표했다. 이가 합려다.
그러나 합려는 편치 않았다. 요왕의 아들 경기가 복수를 계획하고 있었다. 경기는 군을 모집했다. 경기는 영웅의 풍모와 기질을 갖춘 위협적인 존재였다. 합려는 오자서를 불러 상의했다. 오자서는 암살을 제안했다. 자객 요리를 불렀다. 하지만 삼엄한 경호에 둘러싸인 경기에게 접근할 방법은 쉽지 않았다. 오자서는 잔인한 방법을 생각했다. 반간계다. 요리가 억울하게 죽은 요왕을 위해 합려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도망한 것으로 꾸몄다. 이를 경기가 믿을 수 있게 요리의 처자식을 실제 사형에 처하고 요리에게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다. 요리는 경기를 찾았다. 경기는 요리의 소문이 사실임을 알고 그를 받아들였다.
경기는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로 진군했다. 강을 건너기 위해 경기가 배 위에 올라서는 순간 요리가 창으로 경기를 찔렀다. 경기는 치명상을 입고 경호병들은 요리를 죽이려 달려들었다. 그 순간 경기는 “요리를 보내라. 처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충성을 다하려 했다. 오늘 두 명의 영웅이 죽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죽었다. 오나라에 도착한 요리는 환대를 받았다. 그에게 상을 내리려 하자 요리는 “나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내 처자식을 죽였고 새 군주를 위해 옛 군주의 아들을 죽였으니 의리가 아니다. 내가 부귀 영화를 누린다면 세상에 대한 면목이 없다”며 자결했다.
오자서는 잔혹했다. 두 명의 왕과 왕자를 죽이고 2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초나라 평정을 위해 합려를 독려했다. 합려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자서는 인재를 천거했다. 바로 손무다. 손무는 병법의 대가. 이 손무가 후일 세계 3대 병법서 중 으뜸인 『손자병법孫子兵法』을 남겼다.
오자서는 손무와 힘을 합쳐 오나라 군을 강병으로 만들었다. 합려는 초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 군은 무적이었다. 초나라 수도 영까지 점령했다. 오자서는 평왕에 대한 복수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평왕은 이미 죽었다. 오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평왕의 시신을 꺼내 300번의 채찍질을 가했다. 처절한 복수를 한 것이다. 복수심은 이해하지만 죽은 평왕에게 채찍질을 한 것은 심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오자서는 이렇게 외쳤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나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귀를 닫으면 주변은 모두 적이 된다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춘추 패자로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기 위해 월나라를 제압해야 했다. 합려는 서둘렀지만 월나라는 만만한 국가가 아니었다. 월왕 구천은 똑똑했고 명재상 범려가 있었다. 합려는 범려의 계략에 패하고 큰 부상을 입었다. 합려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 부차를 불러 “나의 복수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부차는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왕위 자리를 노리는 형제와의 싸움이었다. 오자서의 계략으로 부차는 형제들을 제압하고 왕위에 올랐다. 오나라는 부차의 솔선수범과 오자서의 노력으로 다시 강국이 되었다. 기원전 494년 부차는 회계산에서 월왕 구천을 대파했다. 구천의 항복 사자가 당도했다.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간언했지만 부차는 듣지 않았다. 이미 구천이 부차의 측근 백비에게 손을 쓴 것이다. 백비는 뇌물을 받고 ‘죽이는 것보다 속국으로 삼고 굴욕을 주는 것이 낫다’는 논리로 부차를 설득했다. 구천은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부차는 백비의 말만 듣고 제나라, 진나라 정벌에 몰두했다. 오자서는 간언했다. “월왕 구천은 백성과 동고동락하며 국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북쪽을 경영할 시기가 아닙니다. 제나라가 피부병이라면 월나라는 심장에 생긴 우환입니다. 월나라를 쳐야 합니다.”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자서도 부차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부차는 오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오자서는 아들을 불러 당부했다. “오나라의 번성은 끝난 것 같다. 나는 오나라로 가고 너는 제나라에 남아 가문을 잇도록 하라.”

사마천은 『사기』에서 ‘오자서는 성품이 굳세고 사나워 너그럽지 못하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원망하고 시기하고 적을 대하듯 했다. 또한 그는 제나라에 아들을 부탁했다. 이는 오나라 안에서 뜻을 얻지 못하고 다른 제후에게 몸을 의탁한 것이나 다를 바가 아니다. 선왕 합려를 모신 공을 내세워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한탄하고 원망했다’고 평가했다. 오자서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간신 백비의 존재. 백비도 초나라 사람이었다. 그 역시 오나라로 망명한 처지. 당시 오자서의 측근은 백비를 들이지 말자고 청했다. 백비의 성품이 간특하고 관상이 배신의 상이라는 이유였다. 오자서는 개의치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백비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백비는 오자서의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둘째는 손무의 충고를 거절한 것이다. 손무는 은퇴를 결심하고 오자서에게 같이 물러나자고 권했다. “우리는 오나라 사람이 아니네. 공도 세우고 벼슬도 했으니 이제 물러나 조용히 살아야 할 것이네. 더운 여름이 오면 추운 겨울이 오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에 접어드는 것이 인생 이치네.” 오자서는 손무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그는 초나라를 쳐 개인적인 원한을 갚았지만 월나라 구천에게 목숨을 잃은 합려의 복수를 하고 싶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대를 이어 오나라를 춘추의 패자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컸다.
앞의 두 가지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리더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오자서는 합려의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것은 합려의 리더십에 맞춰졌다. 합려는 아들 부차보다 군주로서 그릇이 큰 영웅이었다. 그는 귀에 거슬리는 오자서의 간언과 고집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부차는 새로운 리더였고 그에게 오자서의 고집과 간언은 반대만 하는 늙은이의 옹고집으로 보였을 것이다. 또 오자서의 성품을 들 수 있다. 그가 요왕과 경기를 암살한 경우나, 초나라 평왕 시신을 파내어 매질을 가한 점 등을 봐도 그는 유연성이 부족했다. 강한 힘과 의지로 전진하는 스타일. 이로 인해 오자서는 명성과 능력에 비해 민심과 후배들의 심복을 얻지 못했다. 부차가 자살을 명했는데 누구도 이에 반대치 않았다. 오자서는 불운한 영웅이었다. 초나라에서는 가문을 잃었고, 그가 받아들인 백비에게 모함을 받았고, 그가 왕위에 올린 부차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한 인간의 여정으로는 가혹한 운명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56호 (20.12.0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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