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왜 재활용 안 해요?" 정수기를 '어택'하고 '해킹'하는 사람들

탁지영 기자 2020. 9. 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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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브리타 어택 캠페인 참여 매장들에 놓인 브리타 필터 수거함. 십년후연구소 페이스북 갈무리.


2ℓ짜리 생수 페트병을 버리고 싶지 않다. 수돗물을 끓여먹자니 번거롭다. 대기업 렌탈 정수기는 전기도 나가고 매달 관리비도 내야 한다. ‘브리타 정수기’를 대안으로 찾는다. 브리타 물통에 정수필터를 넣고 수돗물을 부으면 필터 안 활성탄·이온교환수지 알갱이가 불순물을 걸러준다. 브리타 측도 ‘환경보호’를 브랜드 가치로 내세운다.

친환경처럼 보이는 브리타에도 함정이 있다. 활성탄·이온교환수지 성능이 떨어질 때쯤 플라스틱 필터를 교체해야 한다. 브리타 측이 안내한 교체 주기는 ‘4주’다.

‘플라스틱을 버리지 않으려고 브리타를 쓰는데 왜 또 다시 버려야 하나’. 브리타를 20여년 사용한 송성희 십년후연구소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필터는 플라스틱 케이스와 내용물을 분리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해도 안에 있는 알갱이 탓에 재활용 되는 건지 의아했다.

고민 끝에 행동에 나섰다.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인 고금숙씨와 함께 지난달 7일 온라인 플랫폼 ‘빠띠’에 ‘브리타 어택 캠페인’을 올렸다. ‘어택’은 항의, 요구를 뜻한다. 이들은 브리타코리아에게 필터 수거 및 재활용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영국·독일 등에 있는 브리타는 자체적으로 필터를 회수해 재활용한다. 송 대표는 오는 11월 30일까지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폐필터를 모아 브리타코리아 본사에 보낼 예정이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송 대표를 만났다.

브리타 어택 캠페인 포스터. 십년후연구소 페이스북 캡처.


■브리타코리아를 ‘어택’합시다

“이전에는 이런 게 없었어요.”

송 대표가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브리타 물통 윗 부분을 가리켰다. ‘브리타 메모’로 불리는 알림판이 붙어 있었다. 필터 교체 주기를 알려준다. 필터를 넣으면 네 칸의 검은색 바가 한 주마다 하나씩 사라진다. 네 칸이 모두 사라지면 필터를 교체할 때다. 송 대표는 “알림판을 그대로 따르면 한 달에 한 번씩 필터를 버리게 된다”며 “필터를 많이 팔기 위한 장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알림판 대신 물 맛에 의존한다. 수돗물 특유의 염소 맛을 느낄 때 필터를 바꾼다. 그러니 4주에서 3~4개월에 한 번씩으로 교체 주기가 늘어났다.

“나라마다 수질이 다르잖아요. 한국은 비교적 안전하고 괜찮다고 하죠. ‘염소만 날려서 먹어도 된다’ ‘음용수로 적합하다’고들 이야기할 만큼요. 그런데도 교체 주기를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건 납득이 안 돼요. 기업은 소비자한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죠.”

전국 18개 상점이 브리타 어택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제로 웨이스트 매장 ‘알맹상점’, 대구 중구 플라스틱 프리샵 ‘더커먼’ 등이다. 친환경 매장 외에 카페나 책방들도 참여한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각 매장에 비치된 수거박스에 폐필터를 넣으면 된다. 십년후연구소에 택배로 보내도 된다.

29일 오후 기준 5600여명이 서명했다. 참여자들은 “한 달마다 필터를 버리면서 죄책감을 갖게 하지 맙시다” “브리타를 쓰는 건 생수통을 안 쓰기 위해선데, 다시 플라스틱을 버리는 회의가 든다. 한국에서도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해달라” 등 의견을 남겼다.

10년 넘게 브리타를 사용하고 있다는 한 시민은 “브리타 한국본사에 전화를 걸어 분리배출법을 문의했다. ‘필터는 플라스틱이며 속에는 자연분해 물질만 들어있기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배출하면 재활용 업체에서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할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적었다. 그는 “하지만 현재 분리배출 시스템을 생각하면 필터에서 자연분해 물질을 분리해 플라스틱 용기만 재활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필터는 아무리 플라스틱으로 배출해도 재활용 업체로 가면 다시 쓰레기로 버려진다”며 “브리타에서 직접 수거해서 올바르게 분리하는 게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반영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해외에선 이미 필터가 재활용되고 있다. 브리타는 1992년부터 재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미국의 경우 필터를 3일 정도 건조한 뒤 쓰레기 봉투에 담고 포장해 재활용 기업인 ‘테라사이클’로 배송하면 된다. 영국엔 슈퍼마켓, 공구점 등 일반 상점에 수거박스가 마련돼 있다. 영국 전역에 있는 수거장소가 1900곳에 달한다.

브리타 정수기를 만든 독일도 각 상점에 수거박스를 두고 있다. 적정량의 폐필터가 모아지면 한꺼번에 모아 타우누스타인(Taunusstein) 지역에 있는 재활용 시설로 보낸다. 재활용 시설에서 플라스틱 케이스와 내용물을 분리한다. 플라스틱 케이스는 분쇄해 수로나 케이블 파이프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활성탄은 폐수 처리 등 여러 필터 공정에, 이온교환수지는 재생돼 새 필터를 만들 때 다시 쓰인다.

영국 런던에 있는 브리타 폐필터 수거장소가 표시돼 있다. 브리타UK 홈페이지 캡처.


송 대표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강조했다. 생산업체가 제품 수거와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에선 2003년부터 시행됐다. “전 세계에서 1분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진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생산되는 플라스틱 절반 이상이 포장재, 일회용이고요. 플라스틱 소비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외출할 때마다 텀블러에, 다회용기에 바리바리 싸서 다니는데 이 노력으로 얼마나 바꿀 수 있겠어요. 결국 생산 단위가 고삐를 죄어야 효과적이죠.”

지난해 12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발표한 보고서 ‘플라스틱 대한민국-일회용의 유혹’에 따르면 한국 바다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의 82%가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환경부는 지난 2018년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2030년까지 재활용률을 70%까지 올리고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줄이겠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017년 기준 한국에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통해 관리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약 30%에 불과하다고 밝힌다. 현행 제도는 생산자가 생산량에 따라 재활용 분담금을 내고 그 분담금으로 재활용 업체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비닐 65.3%, 스티로폼 80.7%, 페트병 81.8% 등 품목별로 정해진 의무율에 따라 분담금이 정해진다. 생산한 비닐이 100장이면 65장에 해당하는 제품에만 책임을 지게 되는 셈이다. 생산자의 책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송 대표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강화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강한 요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2008년 미국에서 벌어진 한 캠페인을 예시로 들었다. 미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살던 베스 테리(Beth Terry)가 ‘Take Back the Filter(필터를 회수하라)’ 캠페인을 진행했다. 브리타 폐필터 581개와 1만6000명의 서명을 계기로 미국에서도 필터 재활용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저희가 브리타코리아를 미워해서 표적 삼은 게 아니에요. ‘다른 나라에서도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도 하라’ ‘현행 제도가 강제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방기하지 말라’고 정당하게 요구하는 거죠.” 송 대표가 말했다.

송성희 십년후연구소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알맹상점’에서 브리타 필터를 해킹하고 있다. 탁지영 기자

■브리타를 ‘해킹’한다고요?

지난 24일 오후 7시, ‘알맹상점’에 6명이 브리타 필터를 들고 모였다. 송 대표가 진행하는 ‘브리타 해킹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해킹’은 개조를 뜻한다. 브리타 필터를 버리지 않고 내용물만 빼낼 수 있게 만들어 언제든 다시 충전해 쓸 수 있도록 한다. 해킹 워크숍은 지난달 14일 시작해 거리 두기 2.5단계 기간을 제외하고 매주 한 번씩 열렸다.

알맹상점 한켠에 드릴, 브리타 필터, 시험관용 마개, 활성탄·이온교환수지를 일정 비율로 조합해 만든 충전재가 놓였다. “구글에 ‘브리타 해킹’으로 검색하면 여러 방법이 나와요. 이런 저런 방식을 조합해서 해보다가 제가 사용하기에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방법을 골랐어요.” 송 대표가 자신이 해킹한 필터를 들었다. 필터 양면에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었다. 각 구멍은 마개로 막혀 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필터를 한 달 정도 말려야 한다. 물에 젖은 내용물을 잘 빼내기 위해서다. 송 대표가 ‘윙’ 소리를 내며 필터 양면 상단에 구멍을 뚫었다. 지름 1.2㎝짜리 마개를 집어넣자 딱 들어맞는 크기였다. 구멍을 아래로 하자 내부에 있던 검은색 활성탄과 하얀색 이온교환수지 알갱이가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털어냈다. 필터 내부를 물로 세척하고 건조시킨다. 활성탄 60g, 이온교환수지 40g을 혼합한 새 충전재를 구멍에 깔때기를 대고 넣으면 새 필터처럼 사용할 수 있다. 새 충전재는 알맹상점에서 팔기도 한다.

해킹한 뒤 나온 활성탄과 이온교환수지는 재활용할 수 있다. 송 대표는 “활성탄은 햇빛에 말리면 기능이 살아난다. 신발장, 냉장고 등에 놓고 탈취제로 쓰면 된다”고 말했다.

해킹한 필터에서 활성탄과 이온교환수지 알갱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해킹이 완료된 필터. 탁지영 기자. 오른쪽 사진은 브리타 프로젝트 아카이브 캡처.


이날 워크숍에 참석한 조아라씨(32)는 2008년부터 브리타를 사용했다.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쓰기 시작했다. 필터를 3~4개월마다 바꾸다보니 ‘페트병을 버리지 않는 것보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조씨는 “집에 남아있는 필터 하나도 해킹해보려 한다. 브리타를 쓰는 친구도 같이 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약 9년 동안 브리타를 쓴 황수현씨(34)는 “해킹 워크숍을 동네 커뮤니티에서도 활발하게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플라스틱 소재 자체를 증오할 필요는 없지만 ‘금방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포장재 플라스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평균수명은 6개월인데 비해, 분해되는 데는 무려 500년이 걸린다. “플라스틱은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내 눈 앞에서 치워질 뿐이죠. 내 손 안에 들어온 플라스틱이라면 적재적소에 오래오래 써야 합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가 강화되면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는 해결될까. 송 대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는 ‘생산-소비-폐기’라는 선형 구조가 만든 결과물”이라며 “생산도 소비도 다 바뀌는, 거대한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후 우울’이라는 말이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송 대표는 불안과 우울에 빠지기보다 작은 방법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있잖아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혼자보단 함께, 실천해야죠. 브리타에 요구하고 필터를 해킹하는 것처럼요. 여러분이 더 나은 해킹 방법을 발견하신다면 공유해주시겠어요?”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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