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드라마, 새로운 청춘을 그리기 시작하다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올해 초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JTBC 《이태원 클라쓰》를 필두로 최근 방영된 tvN 《청춘기록》 《스타트업》,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까지 청춘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어딘가 과거와는 달라진 면모를 보인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JTBC 《이태원 클라쓰》에는 박새로이(박서준)라는 청춘이 등장한다. 이름부터 어딘가 '새로움'이 느껴지는 이 청춘은 장대희(유재명)라는 장가 회장에 맞서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성공의 과정은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자신을 옥살이하게 한 장대희와 그 아들 장근원(안보현)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박새로이의 성공기를 통해 그려졌다는 점에서 남다른 청춘의 도전이 드라마의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다. "필요한 건 다 할 거야.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나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 박새로이의 이 대사는 이른바 N포세대라 불리며 마치 청춘을 '포기세대'로 치부하는 현실에 대한 도발로 다가왔다. 그래서 박새로이와 장대희의 대결은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 기성세대의 시스템과 '나만의 방식으로' 부딪쳐 이겨내는 청춘의 대결처럼 그려졌다.
여기서 청춘이 기성세대와 차별화되는 방식으로 내세운 건 '소신'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뭐라 해도 박새로이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어. 괜찮아."
《이태원 클라쓰》가 16.5%(닐슨 코리아)라는 높은 시청률에 뜨거운 화제성까지 성과로 거둔 건 복수극 구조가 가진 강한 극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색다른 청춘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쳐 이겨내고 성취하는 청춘들의 단상은 우리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큰 반응을 일으켰다. 장기 불황에 어려움을 겪는 건 우리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청춘 드라마가 담는 청춘은 젊은 세대들만의 공감을 얻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또 일본에서도 《이태원 클라쓰》는 중년들에게도 큰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N포세대라 말하며 그것이 청춘들만의 현실인 양 말하곤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사회 현실 그려내
최근 청춘 드라마들은 상큼발랄한 남녀 주인공의 일상과 사랑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다소 무거운 현실들이 밑그림처럼 드리워 있다. 멜로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는 사랑하는 남녀와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존재하고, 그 장애물은 다름 아닌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과거 가부장제 시대의 멜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애물은 고부갈등이나 시집살이, 빈부와 신분의 차이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청춘 드라마들이 일관되게 건드리고 있는 건 꿈도 사랑도 태생부터 결정되는 사회 시스템이다.
임상춘 작가의 2017년작 《쌈, 마이웨이》에서 흙수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처럼 살지 마라"라고 아픈 현실 고백을 털어놓으며 꺼내놓은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최근 방영된 청춘 드라마의 단단한 현실로 등장한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가진 것 없지만 작은 식당 하나 차려 행복하게 살려 했던 박새로이네 가족의 삶은 의도와 상관없이 장가가 저지른 사건으로 인해 밑바닥으로 내쳐진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 이태원 한구석에 '단밤포차'를 세우지만 장가의 돈과 권력은 이들을 늘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tvN 《청춘기록》에서 흙수저 모델 사혜준(박보검)은 똑같이 노력해도 잘사는 부모를 가진 금수저이자 친구인 원해효(변우석)만큼 쉽게 배우로서의 성공을 열지 못한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박은빈)는 뒤늦게 바이올린이 좋아 경영대를 포기하고 음대에 들어가지만 늦게 시작한 데다 가난해 늘 꼴찌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됐지만 재단의 지원을 받아왔던 가난한 박준영(김민재) 역시 생계를 위해 콩쿠르와 콘서트를 전전하다 보니 피아노는 불행한 노동이 되어 버린다.
tvN 《스타트업》에서 서달미(배수지)는 가난해 학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면서도 남다른 열정과 능력을 보이지만 계약직의 삶으로는 고층 엘리베이터에는 결코 오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들 청춘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공정하지 않다. 똑같이 노력한다고 해서 똑같은 성공을 거둘 수도 없고 심지어 공정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청춘의 방식으로 이겨내다
한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구가 유행어처럼 되어 버리고, 마치 청춘의 시기는 당연히 그런 상처와 아픔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로 마취적인 위로를 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픔을 주는 건 저 사회 현실이고 그러니 청춘들이 겪는 아픔은 당연한 게 아닌 저 잘못된 사회 시스템 때문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무거운 현실 앞에 포기하던 청춘들은 이제 적어도 아픔을 내면화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일까. 최근 등장한 청춘 드라마 속 청춘들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부딪쳐 이겨내려 하고 나아가 청춘의 방식으로 넘어서려 한다. 《쌈, 마이웨이》는 '쌈마이' 취급받는 청춘들이 그럼에도 '마이웨이'를 가는 걸 선택하고, 《청춘기록》의 사혜준은 심지어 가족까지 반대하는 배우의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 톱배우가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는 결국 바이올린을 포기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며 공연기획자로서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박준영은 비로소 자신이 원하고 행복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찾아간다. 아직 종영하지 않은 《스타트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달미는 이미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성장해 가는 고층 엘리베이터를 탄 존재가 되었으니.
물론 드라마는 현실을 가져오지만 현실 그대로를 그리지는 않는다. 현실에 부재한 결핍을 판타지로서 그려내면서 거기에 바람직한 현실의 풍경을 제시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의 청춘 드라마들이 포기하지 않고 제 꿈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밀고 나가는 청춘들을 담고 있는 건 우리네 사회가 가진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며 부조리한 시스템들의 변화를 대중이 욕망하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점점 바늘구멍처럼 작아져 가는 취업 현실과 스펙 사회가 가진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 그래서 야기되는 교육 문제부터 결혼, 출산, 육아 문제들까지. 어찌 보면 청춘들이 마주한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는 무수한 문제들의 근원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들 청춘 드라마는 청춘들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결코 청춘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드라마가 된다. 시청자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 어려운 현실 앞에서 이제는 더 이상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청춘들을 마치 내 이야기처럼 공감하며 지지한다.
그래서 최근 무거운 현실을 가득 안고 있는 청춘 드라마들의 선전은 결코 달달하지만은 않다. 시원한 카타르시스만큼 다시 돌아오면 마주할, 변하지 않은 현실의 씁쓸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달라진 청춘들의 모습에 그나마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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