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으로 시작한 웹툰 두 편의 차이 [만화로 본 세상]

2020. 9. 2. 09: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

여기 학교 폭력 장면을 담은 두 웹툰이 있다. 하나는 〈외모지상주의〉(박태준, 2014~), 다른 하나는 〈연의 편지〉(조현아, 2018)다. 모두 첫 화에서 학교 폭력 장면을 그렸다. 주인공이 학교 폭력을 뒤로하고 새 학교로 전학 간다는 점까지 닮은 두 작품은, 하지만 너무나 다르다.

웹툰 <외모지상주의> 의 한 장면 / 네이버웹

〈외모지상주의〉는 폭력 행위 묘사가 주를 이룬다. 가해자의 위압감을 강조하고 가해 행동을 액션 영화처럼 시원하게 연출하며, 피해자는 희화화해 비참하고 못나게 묘사한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혐오의 언어도 시시때때로 발화된다. 그 안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이해도,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도 찾기 어렵다.

〈연의 편지〉는 직접적 가해행위를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물리적 폭력은 구타의 순간 주인공 소리가 말리는 장면으로 갈음되고, 그 후 소리로 방향을 튼 폭력은 싸늘한 시선과 책상 위 낙서로 압축되어 표현된다. 가해행위 묘사를 최소화한 반면 그것이 피해자에 남긴 상흔을 그리는 데 훨씬 더 많은 칸을 할애한다. ‘피해자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딛고 살아가려는 주체로 그려낸다.

시작 지점의 다른 선택만큼이나 두 작품이 걷는 길은 확연히 갈린다. 전자는 주인공 형석을 새 학교의 (생각보다 착한) 일진 무리에 밀어넣고 주로 폭력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길을 택했다. 5년이 넘도록 장기 연재하고 있으나 초반부의 기발한 설정과 제목에 담은 비판적 주제의식은 연재가 길어질수록 빛을 잃는다. 트렌드를 좇은 요소들과 액션으로 찰나의 쾌감은 줄지 모르나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연의 편지>의 한 장면 / 네이버웹

〈연의 편지〉는 애초에 10부작으로 기획해 좋은 주제를 그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학교 폭력은 우정에 입는 상처다. 소리는 반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새 학교에서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편지를 추적해 가는 모험을 거치며 새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상처를 치유해낸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따스하고 섬세한 시선 덕에 그 여정은 진중하면서도 즐겁다. 작화와 이야기, 연출 등 만화의 모든 영역에서 굉장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다.

두 작품은 같은 네이버웹툰에서 4년의 시차를 두고 배출되었다. 전자가 발굴과 방임이라면 후자는 육성과 기획으로 요약된다. 작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플랫폼은 방관하며 페이지뷰만 올리던 오픈마켓 방식의 산물이 〈외모지상주의〉다. 그래서 뻔하고 게으른 표현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묘사가 이어졌음에도 작가 뒤에 숨은 플랫폼은 집중포화를 피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그 시절은 끝났다.

〈연의 편지〉는 더 이상 플랫폼이 오픈마켓일 수 없는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표현과 묘사가 섬세하고 무해한 것은 기본적으로 조현아 작가의 소양 덕이겠으나, 네이버가 제공해 작가가 참여한 루키 단편선 같은 육성의 의의도 적지 않다. 창작 활동을 뒷받침하고 형식과 분량을 조언했을 네이버웹툰 담당자들의 애씀 또한 좋은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다. 애니메이션 티저와 플레이툰도 성공을 거들었다.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켜라” 했던 조한혜정 선생의 말은 〈연의 편지〉로 대표되는 작품군이 〈외모지상주의〉로 대표되는 작품군을 낙후시키는 과정에 꼭 들어맞는다. 그 과정의 행위자·주체는 작가만이 아니다. ‘자율 규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와 표현의 윤리를 위해 편집권을 발동하는 것은 이제 플랫폼의 당연한 책무이자 보람이다. 작품에 더 높은 기준을 기대하고 이를 위해 조력하는 것은 검열의 방식이 아니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주간경향 표지이야기 더보기

▶ 주간경향 특집 더보기▶ 기사 제보하기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