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고금석, 키다리아저씨였던 서진룸살롱 사건 사형수(종합)

박수인 2020. 11. 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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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룸살롱 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고금석 이야기가 공개됐다.

11월 12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86년 8월 14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4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서진룸살롱 사건에 대해 파헤쳤다.

당시 서울 목포파와 맘보파는 강남 서진회관에서 술을 마시던 중 시비가 붙었고 맨 앞에서 칼을 휘둘렀던 고금석은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렇게 목포파가 된 고금석은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사형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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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박수인 기자]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고금석 이야기가 공개됐다.

11월 12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86년 8월 14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4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서진룸살롱 사건에 대해 파헤쳤다.

당시 서울 목포파와 맘보파는 강남 서진회관에서 술을 마시던 중 시비가 붙었고 맨 앞에서 칼을 휘둘렀던 고금석은 사형을 선고 받았다.

섬마을에서 태어난 고금석은 대학을 가고 서울에서 자취하며 고향 선배 장 씨를 따라 나쁜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나이트클럽 카운터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으나 점점 싸움에 가담했다. 그렇게 목포파가 된 고금석은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사형수가 됐다.

사형을 선고 받은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삼중스님 말에 따르면 고금석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삼천배를 했고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위해 천 일 동안 기도했다. 뉘우침이 담긴 옥중편지도 공개됐다.

알고 보니 아이들의 키다리아저씨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989년 강원도 정선 산골마을의 분교에는 매달 편지와 함께 학용품값 5만 원이 도착했다. 고금석은 바다를 보고싶다는 아이들 위해 '아이들 소원을 이뤄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죽기 전 남은 영치금을 모아 산골 분교에 야외 교실을 지었다.

고금석이 남긴 염주를 지금도 차고 있다는 삼중스님은 "항상 내 손에 있다. 난 금석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난다. 물론 사형수였다. 죗값을 지불하고 집행장에서 갔다. 사형이라는 죄목에 대해서는 억울하니 얘기를 할 건 없지만 인간은 저렇게 변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변해지는 거다. 그걸 배우는 거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는 떠날 때를 보면 안다"고 말했다.

고금석의 생전 일화를 듣게 된 한지은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 어떤 이유든지 사람을 죽인 건 분명히 잘못한 일이다. 내막을 들여다봤을 때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 인간적으로도 이해가 된다는 마음이 참 복잡하다"고 전했다.

장항준은 "아직도 이런 조직폭력배를 동경하고, 해볼 만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거다. 그 친구들한테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진=SBS '꼬꼬무' 캡처)

뉴스엔 박수인 abc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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