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개짜리 인간은 없다[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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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사를 했다.
큰 불편함 없이 누리던 일상을 새로 계약한 전셋집에서도 그대로 누리려면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나는 그들의 수고를 별점 따위로 평가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고객님이었다.
그러므로 어서 달려가서 이번 신간을 한 권씩 구입하고, 별 다섯 개를 아낌없이 날려주기 바란다는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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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친절함의 이면은 통 석연치 않았다. 거의 모든 현장 기사는 자신들이 떠난 뒤 서비스 이용이 어땠냐는 문의 전화가 오면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그들의 수고를 별점 따위로 평가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고객님이었다.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하다 천장에 구멍을 낸 현장 기사가 쩔쩔매며 죄송하다고 할 때는 손바닥 위의 손오공을 바라보는 부처님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그 현장 기사를 후하게 평가해서 그의 실적에 도움을 줄 수도 있었고, 박하게 평가해서 그의 재계약에 지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불한 비용은 그들의 친절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수고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하다 천장에 구멍을 냈다고 해서 쩔쩔맬 필요도 없었다. 천장의 구멍은 때우면 그만이지만, 벽걸이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하나같이 다들 친절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처럼 전지전능한 고객님들이 그들을 엉뚱한 경쟁까지 하도록 부추긴 건 아닐까.
마침 얼마 전 신간을 출간했다. ‘음주욕’에 관한 에세이인데, 온라인 서점에서는 서평과 별점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번 신간이 재밌었다며 별 다섯 개를 주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그저 그랬다며 별 세 개를 주기도 했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소감을 직접 전해주시는 분들도 적잖았다. 그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친절하게 응대한다. 벽걸이 에어컨과 구멍 난 천장을 번갈아 바라보던 부처님이 졸지에 손오공 신세가 된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수십 종의 신간이 출간된다. 신간의 운명은 한 달 이내에 판가름 난다. 게다가 출판 시장에서 에세이는 이미 포화 상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독자에게 나의 최선은 중요하지 않다. 한 달 뒤 나는 서점 매대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신간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서 달려가서 이번 신간을 한 권씩 구입하고, 별 다섯 개를 아낌없이 날려주기 바란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이야 신간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 보려고 있는 힘껏 친절한 척하고 있지만, 별점이 어떻든 나는 내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나는 별 다섯 개짜리 인간이 아니다. 나는 구멍 난 천장처럼 흠집투성이인 나를 숨길 수 없다. 적어도 내 이야기 속 나는 그렇다.
권용득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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