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로 어그러지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하헌기 2020. 8. 1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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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SNS와 다르다. 콘텐츠를 올리면 구독자에게 알림이 가고, 채널에 기대와 다른 것이 올라오면 바로 구독자가 이탈하거나 조회수가 빠진다. 그리고 이것은 생계에 타격을 준다.
ⓒ송대익 유튜브 갈무리배달 음식에 내용물이 빠졌다는 ‘주작’ 콘텐츠로 문제가 된 유튜브 영상.

유튜브에는 ‘인기’ 탭이라는 게 있다. 그날 올라온 ‘인기 급상승 동영상’들이 나열되어 있다. 단시간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찍은 영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먹방’, 정치 시사, 언론, 예능 등 종류도 다양해 트렌드와 이슈를 넓은 반경에서 읽어내기 좋다.

그 ‘인기’ 탭에 종종 ‘사과 영상’ 또는 ‘해명 영상’도 올라온다. 7월 한 달 동안만 세 번이나 봤다. 한 주에 하나꼴로 누군가의 사과 영상이 인기 영상이 된 셈이다. 각각 다른 장르의 채널이지만 사과 이유는 같다. ‘주작’ 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주작’이란 시청자를 기망하는 조작 콘텐츠를 칭하는 은어다.

7월에 사과 영상을 찍은 유튜버 중 하나는 무려 구독자가 100만이었다. 그는 ‘배달 음식이 도착했는데 배달 내용물을 배달원이 빼먹었다’는 고발 영상을 올렸으나 곧 조작임이 밝혀졌다. 해당 업체명과 지점이 노출되어 업체는 큰 피해를 봤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자영업자들이 힘든 상황이라 대중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유튜브 세계에선 의외로 흔히 일어난다. 지난 5월에도 있었다. 유명한 동물 유튜버가 조작 콘텐츠로 뭇매를 맞았다. 유기묘들을 입양해서 기르는 스토리로 인기를 끌며 구독자 50만명 이상을 확보한 채널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고양이들은 유기묘가 아니라 분양받은 것이었다. 심지어 반려묘들을 굶기고 학대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그래야 영상을 촬영할 때 고양이들이 말을 잘 듣기 때문이란다. 이 일은 유튜브 ‘인기’ 탭이란 울타리를 넘어 공중파 방송과 주류 언론에까지 보도되며 크게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사례를 소개하자면 끝도 없다. 해명 내용도 어슷비슷하다. 콘텐츠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재미있게 풀어보려다가 과한 연출로 각색됐다는 것이다. 필자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에 그들이 어떤 욕망에 잠식됐을지 이해는 간다.

유튜버들을 컨설팅해주는 MCN 업계에서 말하길, 크리에이터들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아이템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영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의 고충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대중적 영화 비평 콘텐츠로 수십만 구독자를 모았다. 영화 장면을 짜깁기해 단순히 스토리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영화에 담긴 메타포와 미장센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해준다. 그의 콘텐츠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그의 해석과 시선을 구독하는 셈이다. 1~2년까지는 열정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단다. 좋아하는 영화를 해석하고, 그걸 대중이 좋아해주는 데다 생계까지 보장되니 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3년 차로 넘어가면서부터였다. 매주 한 편 이상씩 영화 비평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템을 고르는 게 고역이 된 것이다. 어쨌든 조회수가 확보되어야 하므로 다양성 영화나 예술영화만 다룰 수도 없다. 그렇다고 상업영화만 다루자니 해석과 비평에 한계가 온다. 어느 정도 인문학적 해석이 담보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누가 봐도 오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나 액션 영화들의 미장센과 메타포를 억지로 해석해서 늘어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다른 방식으로 채널의 콘셉트 자체를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업에 성공한, 그러니까 약 10만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한 수많은 채널이 도로 자빠진다.

ⓒhaha ha 유튜브 갈무리‘어그로’ 없이 79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동물 유튜브 채널 ‘haha ha’ 영상.

충실한 콘텐츠로 정면 돌파해야 오래간다

유튜브 콘텐츠는 SNS의 게시물과 다르다. SNS의 게시물은 타임라인에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과 함께 나열되어 있다. 글 하나 밋밋하다고 팔로를 잘 끊지도 않을뿐더러 끊긴다 한들 그리 타격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유튜브는 콘텐츠를 올리면 구독자에게 알림이 간다. 채널에 기대와 다른 것들이 올라오면 바로 구독자가 이탈하거나 조회수가 빠진다. 그리고 그게 생계에 타격을 준다.

이렇게 조회수 및 구독자 증가의 정체와 아이템 고갈 사이에서 교착될 때 크리에이터들은 유혹을 느낀다. 소위 더 센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던 초심이 휘발되고 반대로 사람을 끌어당길 만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다. 즉, 유기되었던 고양이가 구조되어 집사의 사랑을 받는 영상을 기대한 구독자들의 기대를 더 세게 충족시켜주기 위해 고양이를 굶겨서 더 집사에게 애교를 부리게 하는 식이다.

이른바 ‘시사 유튜버’들의 가짜뉴스 생산도 이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래 유튜브에서 고전 책 소개나 하던 젊은 청년이 어느 날 제주 4·3 사건에 대해 극우적 시선의 영상을 올리자 조회수가 폭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청년은 4·3 사건은 폄하하면서도 5·18은 민주화운동이라 표현할 정도의 이성은 있었다. 그런데 4·3 사건을 다룬 콘텐츠가 대박이 나자 채널 성격 자체가 바뀐다. 책 소개를 그만두고 극우 유튜버가 된다. 책 소개에 들어가 있던 근사한 영상 편집도 그만두고 오로지 극우적 발언으로만 승부를 보기 시작한다. 당연히 5·18에 대한 평가도 ‘폭동’이었다고 바뀐다. 콘텐츠로 대중을 끌어당기는 걸 포기하고 극우 타깃 오디언스에 맞춘 콘텐츠를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성공시키려면 ‘어그로를 잘 끌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어그로를 끌지 못하면, 재미가 없으면, 심지어 ‘콘텐츠에 대한 욕심 때문에 과한 연출’을 하지 않으면 대중을 끌어당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이 말은 사실 거짓이다.

또 다른 동물 유튜브 채널 ‘haha ha’는 고양이 영상으로 인기를 끌지만 촬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결코 고양이들을 학대하지 않는다. 조작도 하지 않는다. 그는 시골에 살면서 집 근처를 배회하는 야생 고양이에게 그저 음식을 주고 쉴 곳을 마련해준다. 기본적으로 야생 고양이이기 때문에 그 고양이들이 집을 떠나도 특별히 잡지 않는다. 그렇지만 고양이들은 결국 그의 곁에 다시 돌아와 머문다. 그저 그런 고양이들을 찍고 보기 좋게 편집해서 올린다. 섬네일에 아무런 자극도 어그로도 없다. 그의 유튜브 구독자 79만명. 콘텐츠 평균 조회수는 50만 회다.

한계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어그로 같은 잔재주 대신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세계를 넓히며 문제를 정면 돌파해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대중의 기대에 맞춰 어그로를 끄는 콘텐츠보다 콘텐츠로 대중을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오래 남는다.

사실 이 글은 유튜브 세계에 빗댄, 우리 정치에 대한 은유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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