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울리는 투자 갑질

주영재 기자 입력 2020. 12. 12. 15:58 수정 2020. 12. 1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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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투자계약으로 어려움 호소.. 특별상환조건 조항 논란도

[경향신문]

#1최근 한 스타트업 대표 A씨는 투자를 받은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원금에 연복리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덧붙인 주식 상환요청을 받았다. 보통 업계에선 상환이율이 연 8%를 넘을 경우 과도하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창업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데도 단순히 회사의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업자에게 투자금 상환을 요구한 것이다. 상법에 따르면 원래 상환권 행사는 회사에 상환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배당 가능 이익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특별상환권 조항’을 넣어 회사에 이익이 없어도 상환하는 책임을 추가하고, 그 책임을 창업자가 부담하도록 한 경우가 왕왕 있다. 창업 3년차인 A씨는 “특별상환권 조항은 업계 관행이라 넣었을 뿐 실제 행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받아들였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2 2년 전 창업한 에듀테크 분야의 스타트업 B사는 지난해 한 벤처캐피탈(VC)의 투자제안을 거절했다. VC가 제시한 투자계약서를 보니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징벌적인 보상을 더하는 위약벌 조항, 연대보증책임, 우선매수권 등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항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조정을 요구했지만 VC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B사는 초기 스타트업이라 돈은 궁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11월 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에서 중기부 관계자가 ‘그린 스타트업 벤처 육성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계약서상 독소조항 일부에서 여전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불공정한 투자계약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스타트업은 여전히 있다. 특히 투자를 받기 어려운 초기 스타트업이 불리한 조건의 투자를 받아들였다가 곤란에 처한 경우가 많다. 경험이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과 투자자 사이에 심리적으로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 쉽기 때문이다. 벤처 투자 초기엔 투자자가 성추행을 해서 문제가 될 정도로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관계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 제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지금도 일부 심사역들이 투자를 위한 IR 자료를 받는다면서 비싼 식당에 불러 밥값을 내게 하거나 훈수를 두는 등 ‘내가 너에게 돈 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걸 풍기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갑을 관계는 투자계약서를 투자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든다. 모태펀드(정부 정책자금으로 벤처투자기관에 투자하는 펀드)의 운용기관인 한국벤처투자에서 불공정 계약 등으로 적발돼 시정요구 등의 조치를 받은 VC들의 투자계약 사례는 2015년 이후 120여건이다. 최근에는 불법적인 이면계약을 요구하는 사례도 알려져 논란이 됐다.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도록 도울 테니 지원 금액의 20%를 컨설팅 비용으로 돌려달라는 식이다.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금을 불려 회수(엑시트·Exit)하는 데 있다.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장치로는 대표적으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들 수 있다. 상환전환우선주는 금전으로 상환도 가능(상환권)하고, 보통주식으로 전환(전환권)도 가능한 우선주다. 스타트업은 상장회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비상장사의 보통주는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투자 대가로 보통주를 인수하면 엑시트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투자자는 투자금의 대가로 보통주가 아닌 상환권과 전환권이 모두 포함된 상환전환우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대개 창업부터 기업공개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반면 투자자들은 5~7년 정도 후 자금을 회수해 다른 사업에 투자하게 된다. 만약 스타트업이 뚜렷한 이유 없이 상장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주식을 팔아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VC 입장에선 자금이 묶이게 된다. 따라서 투자자를 위한 상환권을 보장한 것이다.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는 “상장을 해야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 엑시트를 할 수 있는데 스타트업 대표가 일부러 상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때 생기는 피해를 막기 위해 연복리로 상환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것인데 극히 일부의 이상한 VC 외에는 이를 악용하는 폐단은 없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마이크로 모빌리티 분야의 스타트업 G.BIKE의 윤종수 대표는 “좋은 투자자를 만나 연대보증 조항 없이 업계에서 평이하게 통용되는 수준으로 계약해 크게 불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해외에 비해 유독 보통주보다 상환 조건이 붙은 상환전환우선주 인수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표준계약서 권고안 도움될까

그러나 특별상환조건 조항을 넣어 기업이 아닌 창업자 개인에게 원금 상환까지 요구하는 것은 고위험·고수익이라는 벤처 투자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투자자의 능력은 사업 모델을 잘 골라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 키우는 것”이라면서 “성공한 10%에서 고수익을 노리는 건데 90%에서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건 투자가 아니라 대출일 뿐”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런 불공정 계약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 과거와 달리 투자자와 피투자자 간의 힘의 불균형이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VC의 수가 300개를 넘고, 모태펀드 등 정부의 정책지원으로 투자금이 넘친다. ‘누구머니’처럼 스타트업 업계가 투자자를 평가하는 사이트도 열렸다. 과거와 달리 투자자도 평판을 관리하지 않으면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다 보니 주요 VC는 평판을 생각해 투자원금 회수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알토스벤처스는 폐업할 경우 폐업 지원금까지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토스벤처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직방 등이 이곳의 투자를 받았다.

한편으로 불공정 계약을 줄이고, 초기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표준계약서 권고안을 만들려는 벤처투자업계의 자율적 움직임도 있다. 창업 초기 기업의 기업가치평가 과정을 생략해 신속한 자금 유치를 돕고 상환의무를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함으로써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만들고 있다. 단순히 회사의 영업환경 악화에 따른 투자계약 위반이나 단순 보고 누락, 경영성과 부족을 이유로 한 청구권 행사를 지양하는 내용이 담긴다. 여전히 투자자 입장에 기울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창업자 입장에선 그래도 불공정 조항을 가려낼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된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협회 자정 차원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공청회 등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초에는 권고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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