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세계의 ‘과장님 모시는 날’ 아시나요…사비 갹출 위해 초과근무까지 시켜
경험자 70%가 ‘부정적·불필요’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말단 공무원들이 사비를 걷어 국장·과장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공직사회의 이른바 ‘모시는 날’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직사회 ‘모시는 날’ 관행에 대한 공무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6일 공개했다.
‘모시는 날’은 팀별로 순번이나 요일을 정해 소속 부서의 과장, 국장 등 상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이다.
설문에 응한 지방공무원 1만2526명 중 75.7%인 9479명이 ‘모시는 날’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고, 이중 5514명은 최근 1년 이내에 모시는 날을 직접 경험했거나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방 공직자들이 최근 1년 내 경험한 ‘모시는 날’은 주로 점심시간(커피 제외 57.6%, 커피 포함 53.6%, 중복응답 포함)에 이뤄졌다. 저녁식사(7.2%)와 술자리(10.4%)를 진행한다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모시는’ 대상은 대부분 소속 부서의 국장과 과장이었다. 둘 다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응답 비중이 44.9%로 절반가량 차지했다. 이어서 과장 35.5%, 국장 17.0% 순으로 높았다.
식사비용 부담 방식(중복선택)은 소속 팀별로 사비를 걷어 운영하는 팀비에서 지출한다는 응답이 55.6%로 가장 많았다.
사비로 지출하되 당일 비용을 갹출하거나 미리 돈을 걷어놓는다는 응답도 21.5%에 달했다. 근무기관 재정을 편법·불법으로 사용한다는 답변도 4.1%로 조사됐다. 국·과장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주로 업무추진비(31.1%)를 이용했다.
조사에 참여한 공무원 10명 중 7명은 모시는 날을 ‘부정적’(69.2%)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매우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44.7%로 많았다.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43.1%)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다’(25.8%)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모시는 날이 불필요하다 판단한 사유로는 ‘시대에 안 맞는 불합리한 관행’이라는 응답이 84%(3189명, 중복응답)로 가장 많았고 ‘부서장과 식사자리가 불편함’(57.7%·2191명), ‘금전적 부담’(43.4%·1648명),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음’(39.8%·1510명), ‘준비 과정이 수고스러움’(38.5%·1462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기술해달라’는 항목에서는 “9급 3호봉인데 매달 10만원씩 내는 게 부담스럽다”, “월급 500만원 받는 분들이 200만원 받는 청년들 돈으로 점심 먹는 게 이상하다”, “차라리 본인몫의 식사비만이라도 지불했으면” 등 박봉의 하급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비용을 메꾸기 위해 초과근무를 시킨다”, “업무추진비는 부서장 용돈처럼 쓰고 모시는 날에는 사비를 갹출한다”, “노래방 사회까지 시킨다” 등 부조리에 대한 성토도 다수 있었다.
“부서장의 호불호, 제철음식을 파악하고 다른 팀과 겹치지 않는 메뉴를 골라야 한다”, “식당을 고르고 승인받고 예약하고 미리 가서 수저 세팅까지 하느라 오전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 “개인 차량으로 대기하다 모셔가는 운전당번도 있다” 등 과정에 대한 고충 의견도 많았다.
“하급자들에게 감사히 여기라고 하는 게 더 문제”, “어린 신입들이 하는 이유를 물어보는데 대답해줄 수 없어 답답하다”, “사기업이었으면 경영관리부서에 갑질 신고당했을 텐데 여기는 경영관리부서도 한다”,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등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이밖에도 “제발 없애달라”는 호소가 담긴 의견이 수백 건 제출됐고, 소속 기관의 실명을 거론하거나 구체적인 혐의 감사를 요구하는 응답도 다수 있었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경찰청, 보건소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위성곤 의원은 “젊고 유능한 공직자들이 느끼는 무력감이 가장 큰 문제”라며 “현장 실태를 모르는 중앙부처 담당자들은 수박 겉핡기 식 탁상행정으로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비용 전가 및 과도한 의전에 대한 문제와는 별개로 소통 자체는 꼭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며 “리더들이 관행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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