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번호표 남아 있나요?"
28일 오전9시 SK텔레콤 T월드 서울 망원지점 앞은 줄을 선 50여명의 고객들로 붐볐다. 이들은 혹시 모를 해킹 피해를 막기 위해 유심 무료교체 서비스를 받으려는 고객들이다. 주말 중 온라인을 통해 대리점에서 매일 확보 가능한 유심 물량에 한계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교체를 위해 준비한 유심이 적은 데다 한꺼번에 많은 고객이 몰리면서 현장에서는 혼란이 빚어졌다.
재고 소진·예약 지연…현장 곳곳서 '오픈런' 현상
줄 끝에 있던 70대 여성은 "뉴스에서 오늘부터 유심을 바꿔준다고 하길래 나왔다"고 말했다. SKT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했는지를 묻자 "그런 게 있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SKT는 유심 교체보다 빠르고 손쉬운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할 것을 고객들에게 당부했지만 아직 모든 가입자에게 고지되지 않았다. 기자가 직접 T월드 웹사이트에서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시도했지만 신청자가 몰린 탓에 로딩을 반복할 뿐이었다.

오후 홍대입구역 근처 T월드 매장 앞에는 '오늘 준비된 유심 재고는 모두 소진되었습니다'라는 커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침 일찍 배포된 70장의 선착순 번호표는 오전에 동이 났다.
이에 매장을 찾은 시민 20여명이 밖에서 서성였다. 직원들은 밖으로 나와 QR코드를 활용한 유심 교체 예약 방법을 설명하고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권하며 노인 고객들의 휴대폰을 일일이 손봐주고 있었다. 이날 매장을 찾은 한 고객은 "예상은 했지만 유심 재고가 70개라니 너무 적은 것 같다"며 "내일 출국할 예정인데 해킹 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신촌 일대의 T월드 매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전10시14분에 이날 준비된 유심 물량은 이미 마감된 상태로 번호표를 가진 고객들만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직원들은 행사장 입구처럼 고객을 통제하며 혼란을 막으려 했지만 매장 앞에서는 예약하지 못한 고객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한 60대 남성은 "해킹당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직원들은 일단 예약하고 나중에 다시 오라는 말만 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주말 사이에는 SKT로 번호이동을 하면 '갤럭시 S25'나 '아이폰 16' 같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거의 무료로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SKT가 유심 해킹 사태 이후 가입자 이탈을 우려해 지원금을 기습적으로 상향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날 테크노마트 신도림점에서 만난 한 고객은 "여기저기 검색하다 번호이동하면 현금도 준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러나 SKT가 다시 정책을 변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매장 주변은 한산해졌다. 다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작 기존 고객은 유심 하나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번호이동자는 돈까지 얹어준다'는 비판여론이 확산됐다.
SKT "유심 추가 확보"...정부도 긴급 대응
SKT는 유심보호서비스 홍보, 교체예약 시스템 정비, 유심 추가 공급 등으로 고객 불편을 해소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SKT는 이날 오전10시부터 '유심 무료교체 예약 시스템'을 가동했다. T월드 앱과 홈페이지에서 접속할 수 있으며 예약 이후 매장을 방문하면 신분증과 대조해 교체를 진행한다. 하지만 오전 한때 시스템에 대기자가 몰려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다.
SKT는 현재까지 확보한 100만개의 유심으로 교체 서비스를 시행하고 다음 달 말까지 500만개의 추가 물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자에 대해 향후 불법복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전액 보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도 서둘러 움직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과 공동대응 체계를 가동해 공항 로밍센터 유심 교체 지원 강화, 디지털 약자 대응책 마련, 민관합동 조사단 운영 등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다만 500만개의 물량을 확보한다고 해도 전체 가입자 2300만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유심보호서비스 가입만으로도 안전하다고 SKT는 강조하지만 디지털 취약계층의 경우 서면안내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성명에서 "SKT가 고객에게 택배로 유심을 발송하고 번호이동을 원하는 가입자에게는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며 "대규모 판매장려금을 살포하는 행위 역시 엄정히 단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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