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 Eagles 이름은 누가 지었나?

빙그레이글스 로고. <한화이글스>

한화이글스의 전신인 빙그레이글스가 ‘이글스’라는 이름을 채택한 이유는 창단 당시 대국민 공모를 통해 결정된 결과입니다.

1985년 한화그룹이 대전을 연고지로 제7구단을 창단하며 구단 이름을 공모했는데, ‘이글스(Eagles)’는 독수리를 상징한다.

힘, 용맹, 높은 비상을 뜻하는 이미지로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에게 어필했습니다.

빙그레이글스 로고. <한화이글스>

스포츠 팀 이름으로 ‘이글스’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필라델피아 이글스나 일본 프로야구(NPB)의 라쿠텐 골든이글스처럼 세계적으로 친숙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이름으로 여겨졌습니다.

1993년 한화그룹의 통합 브랜드 전략에 따라 ‘한화이글스’로 변경되었지만 ‘이글스’라는 핵심 이름은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의 상징인 독수리 마스코트와 함께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요소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글스의 미래 정우주.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대전의 자부심, 독수리의 비상
한화이글스는 대전과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KBO 리그의 프로야구 구단으로, 1986년 빙그레이글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1993년 한화이글스로 이름을 변경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3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구단은 비록 우승 횟수는 적지만, 열정적인 팬덤과 프랜차이즈 스타들로 한국 야구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화이글스 대전 새구장.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빙그레이글스의 탄생

한화이글스의 시작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화그룹은 한국 프로야구 리그의 확장을 계기로 대전을 연고지로 삼아 제7구단 창단을 준비했습니다.

1985년 1월 15일 창단 준비 위원회가 발족되고, 이튿날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습니다.

구단 이름은 대국민 공모를 통해 ‘빙그레 이글스’로 결정되었으며, 이는 한화그룹의 제과 브랜드인 빙그레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1986년 3월 8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식이 열렸습니다.

다음날 청주야구장에서 추가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초대 감독은 배성서였으며, 창단 첫 경기는 MBC 청룡을 상대로 12,000명의 만원 관중 앞에서 치러졌습니다.

신생 구단으로서 첫 시즌은 쉽지 않았습니다.

1986년 시즌은 31승 76패로 전체 7위에 그쳤고, 승률은 3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명부와 이상군 같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후기 리그는 6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빙그레이글스 로고. <한화이글스>

빙그레이글스는 창단 초기 얕은 선수층과 신생 구단의 한계로 고전했지만, 1988년 김영덕 감독 부임 이후 급성장했습니다.

이 시기 구단은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삼성 라이온즈를 3전 전승으로 꺾고 창단 3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비록 해태 타이거즈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는 한화의 잠재력을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1999년 한화이글스 우승 멤버 송진우. <KBO>

1999년의 기적

한화이글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입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999년, 이희수 감독의 지휘 아래 한화는 정규 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를 꺾고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습니다.

우승한 1999년의 99라는 숫자를 류현진이 원해, 그의 등번호로 쓰고 있습니다.

99번 류현진.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이 시리즈는 ‘9회말 역전’이라는 극적인 명승부로 유명합니다.

특히 6차전에서 연장전 끝에 터진 데이비스의 끝내기 홈런은 한화 팬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등 마운드의 핵심 선수들과 장종훈, 김태균의 활약이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 우승은 한화가 창단 13년 만에 이룬 쾌거로, 대전 시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한화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추가하지 못했습니다.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쳤으며, 특히 1989년과 1992년에는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하위 팀(해태, 롯데)에 패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2025년 기준, 한화는 1999년 이후 25년째 우승이 없으며, 이는 KBO 리그에서 롯데 자이언츠(31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무관 기록입니다.

노시환.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2025년 4월 기준, 한화이글스는 2024 시즌의 반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2024시즌, 한화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선발 투수 8연승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25시즌 또 다시 8연승, 특히 8연속 선발승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고트’ 류현진의 복귀는 팀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고, 젊은 선수들과의 조화로 팀 분위기가 한층 개선되었습니다.

5연속 선발승 기록카드, 이후 8연속 선발승을 이뤘다.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2023년 시즌은 10개 구단 중 하위권에 머물렀고, 2022년에는 최하위를 기록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샀습니다.

그럼에도 구단은 강한 리빌딩 기조를 유지하며 문동주, 노시환 같은 젊은 스타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2025년은 창단 40주년을 맞는 해로 신규 브랜드 아이덴티티(BI)와 유니폼 공개, 신축 구장 계획 등 대대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레전드 장종훈.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과거의 전설

장종훈 (No.35): 한화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로, 홈런왕과 타격 4관왕(1988년)을 차지한 전설적인 타자입니다. 그의 마지막 안타가 홈런이었던 은퇴 경기는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송진우 (No.21): 철저한 자기관리로 20시즌 동안 200승과 2,000삼진을 돌파한 전설적인 투수. 그의 등번호 21번 역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정민철: 8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한 선발 투수로, 평균자책점 2.80의 안정적인 마운드를 자랑했습니다.

김태균 (No.52): 한화의 대표적인 4번 타자로, 86경기 연속 출루 기록과 한 시즌 300출루를 달성한 꾸준함의 상징입니다. 2021년 은퇴하며 팬들에게 감동적인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문동주.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현재의 스타

류현진: 2024년 한화로 복귀한 ‘코리안 몬스터’. 그의 선발 등판은 팀의 사기를 북돋우며 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노시환: 한화의 젊은 4번 타자로, 2022년 딩고 킬링보이스 출연으로 10~20대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문동주: 차세대 에이스 투수로, 빠른 직구와 강력한 구위로 한화 마운드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채은성: 타격과 수비에서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주장 채은성. <한화이글스 인스타그램>

2025년, 창단 40주년을 맞은 한화이글스는 “폭풍을 뚫고 더 높이(Ride the strom)”라는 슬로건처럼 새로운 도약을 꿈꿉니다.

대전 시민과 충청 팬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서, 한화가 다시 한 번 1999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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