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유통법들] ③ "합성니코틴은 담배가 아니다?" 해 넘기는 담배사업법 개정안
올겨울에 시작된 탄핵정국으로 합성니코틴 담배를 기존 담배와 동일하게 인정하고 규제하는 내용이 담긴 담배사업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개정안과 관련된 논의가 중단되면서 규제 공백에 따른 부작용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담배사업법에서는 합성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담배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담배의 정의를 연초잎·천연니코틴을 원료로 한 담배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성니코틴은 연초잎 대신 화학물질을 합성해 제조되기 때문에 담배가 아닌 공산품으로 분류돼 일반담배에 적용되는 세금, 경고문구 부착, 판매제한 등의 규제에서 자유롭다.
업계는 합성니코틴도 담배로 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합성니코틴 담배도 기존 담배처럼 인체에 유해하기 때문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야 형평성에 맞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에 따르면 합성니코틴 원액의 유해물질(발암성·생식독성 등) 검출 항목은 45개로, 같은 용량의 천연니코틴 원액 검출량(41개)보다 많았다. 복지부는 기획재정부에 합성니코틴을 담배사업법상 담배에 포함해 규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이를 수렴해 지난 2020년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며,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도 합성니코틴 담배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22대 국회에는 여·야당이 발의한 담배사업법 개정안 10건이 계류돼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는 지난달 27일 회의를 열고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의논하면서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국회가 사실상 마비돼 이달 초로 예정됐던 담배사업법 공청회는 기약 없이 연기됐다.
규제 공백에 커지는 부작용
담배사업법 개정안 통과가 지연될수록 입법 공백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성니코틴 담배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담배보다 저렴하고 판매방식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어 청소년이 접근하기 쉽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흡연 청소년의 약 70%가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담배에는 가격의 70%에 달하는 세금 및 부담금이 부과되고, 천연니코틴 액상담배도 1㎖당 1800원의 담뱃세가 붙는다. 하지만 합성니코틴 담배에는 세금이 적용되지 않아 리필용 액상담배 30㎖는 온라인에서 1만원 이하에 판매된다.
규제의 틈으로 세수손실이 발생하는 한편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자액상안전협회에 따르면 연간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로 인한 세금탈루액만 약 1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수입판매업자들이 세금을 아끼기 위해 천연니코틴을 합성니코틴으로 거짓 신고하는 등 허술한 법 체계를 악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2년 11월부터 2023년 7월까지 9개월간 천연니코틴을 합성니코틴으로 허위신고해 세관에 적발된 건수는 110건이었다.
담배 업계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이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뒤떨어진 것으로 개선이 시급하며 청소년 보호나 세수확보, 업계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조속한 입법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권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