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낙엽을 타고 – 사랑의 온기

기호일보 2025. 10. 1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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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답지 않게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다.

낯선 핀란드 작품,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Fallen Leaves, 2023)'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감정의 폭발도 없다.

낙엽은 떨어져 사라지지만 결국 흙이 돼 또 다른 생명을 돋우듯, 사랑 또한 흔적이 돼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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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동국대 강사
가을답지 않게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다. 한여름 장마보다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분명 9월까지만 해도 숨이 막힐 듯한 더위가 이어졌는데, 10월이 되니 비와 함께 기온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나뭇잎엔 어느새 단풍이 물들었지만, 그 고운 색을 채 누리기도 전에 빗방울에 눌린 잎들이 하나둘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성큼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계절감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가 있다. 낯선 핀란드 작품,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Fallen Leaves, 2023)'다. 제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보여 주지 않는다. 대신 건조하고 절제된 연출 속에서 외롭고 고단한 두 노동자가 서툴지만 순수한 방식으로 서로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무대는 늦가을의 헬싱키. 슈퍼마켓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인 안사는 최근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오래 근무한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이제 남은 거라곤 작고 허름한 방 한 칸. 당장 한 끼 끼니를 때울 식비조차 빠듯하다. 한편, 기술직 노동자로 일하는 홀라파는 기숙사에 머물며 술로 무의미한 시간을 견딘다. 살아 있음이 불편한 듯 무기력하게 버티던 그는 결국 알코올의존증 탓에 일자리마저 잃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사회의 가장자리에 내몰려 있다. 매번 반복되는 아침은 견디기 힘겹고, 하루하루는 삐걱거리며 흘러간다. 그러나 낙엽이 바람결에 흩날리듯 두 사람은 우연히 스치고 어색하게 마주 앉는다. 가라오케 바의 희미한 조명, 극장 좌석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 그들은 더딘 속도로 마음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 사랑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 서로의 이름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고, 어렵게 건넨 전화번호 쪽지마저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혹시라도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상대가 머물렀던 거리를 오래 서성인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덤덤하다. 대사는 짧고 무표정이다. 하지만 바로 그 무채색 같은 얼굴과 대사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정서가 배어 나온다.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무심한 말투 속에 절실한 온기와 연민이 숨어 있었다. 영화 속 음악은 이런 감정을 밀어 올린다. 곳곳에 흐르는 핀란드 가요와 팝 음악은 인물들의 마음을 대신 노래하며 건조한 장면에 파동을 일으킨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감정의 폭발도 없다. 그러나 은행잎 한 장이 바람결에 내려앉듯 이 영화는 조용히 관객의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카우리스마키는 무심한 듯 묻는다. "사랑은 모든 것이 스러진 뒤에도 여전히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이 영화로 단호하게 답한다. 낙엽은 떨어져 사라지지만 결국 흙이 돼 또 다른 생명을 돋우듯, 사랑 또한 흔적이 돼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고.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한 편의 로맨스를 넘어 삶의 고단함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휴머니즘을 그려냈다. 차갑고 고독한 계절에도 서로를 향해 손 내미는 온기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기적일 것이다. 낙엽은 지지만 사랑은 움튼다. 그리고 그 작은 움틈이야말로 우리를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따스한 불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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