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수 와인 논란으로 드러난 고급 레스토랑의 민낯

김태현 기자 2026. 5. 11.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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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로 인해 미식 열풍이 절정에 달한 지금, 서울 파인다이닝의 이면이 드러났다. 수백만 원짜리 식사 자리에서 와인이 바뀌는 일이 생기면서다. 과거 손님 몰래 잔이 채워지고, 업장의 셀러가 개인 창고로 둔갑하는 일들이도 잇따라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미쉐린 스타라는 이름이 보장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제 손님들이 직접 묻기 시작했다.

[우먼센스] K푸드 열풍의 중심에 있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들이 잇따라 와인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셰프의 기량과 공간의 품격으로 명성을 쌓아온 서울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구조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그 불씨를 당긴 것은 스타 셰프 안성재가 이끄는 미쉐린 2스타 '모수 서울'에서 불거진 와인 바꿔치기 의혹이었다.

사진=모수(MOSU) 페이스북

모수 와인 논란의 전말

불씨는 지난 4월 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편의 방문 후기였다. 작성자는 스타쉐프인 안성재 쉐프가 이끄는 미쉐린 2스타 파인다이닝 '모수 서울'에서 약 80만 원 상당의 샤토 레오빌 바르통 생 줄리앙 2000년 빈티지를 와인 페어링으로 주문했으나, 실제로는 2005년 빈티지가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더욱 의심을 키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작성자가 와인 병 사진을 찍으려 하자 소믈리에가 갑자기 자리를 비운 뒤 2000년 빈티지 병을 들고 돌아왔고, 이후 "두 빈티지를 비교해서 맛보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2000년산 와인을 따라줬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후기를 접한 와인 애호가 A 씨는 "처음엔 단순 실수겠거니 했는데, 소믈리에가 사진 요청 순간에 병을 바꿔 들고 왔다는 대목에서 섬뜩했다"며 "그 정도 급의 소믈리에가 빈티지를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사진=Gemini 생성

논란이 확산되자 모수 측은 공식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초기 입장을 발표했지만, '안내 부족'이라는 표현 뒤에 핵심 의혹에 대한 해명이 없어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오너 셰프 안성재는 5월 6일 직접 SNS에 상세한 경위문을 게재했다.

안성재 쉐프가 내부 CCTV를 통해 확인했다는 내용에 따르면, 당일 4잔 페어링 손님 세 명에게 2000년 빈티지를 제공해야 했으나 소믈리에가 2005년 빈티지를 실수로 서빙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후의 대처였다. 소믈리에는 잘못된 서빙을 인지하고도 고객에게 즉시 알리지 않았고, 손님이 사진을 요청하자 '사진에는 올바른 빈티지가 담겨야 한다'는 그릇된 판단으로 2층 보관실에서 2000년 빈티지 병을 가져와 보여줬다. 이후 상사에게 상황을 보고하려 자리를 비운 사이 요리가 먼저 나왔고, 고객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안성재는 "소믈리에가 당황해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즉흥적으로 말하는 매우 부적절한 대응을 했다"며 해당 직원을 손님을 응대하는 소믈리에 포지션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또한 "실수의 발생부터 대처까지 모든 과정이 적절하지 않았다"며 오너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와인킹의 저격: "1층 바틀 손님이 진짜 피해자"

이 사건을 두고 와인 전문 유튜버 와인킹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또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소믈리에가 2층 손님에게 보여주고 따라준 2000년 빈티지 와인이 사실은 1층에서 풀 바틀로 주문한 다른 손님의 와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병째로 한 병을 온전히 구매한 손님의 와인을 소믈리에가 임의로 들고 올라가 다른 테이블에 따라줬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오히려 그 1층 손님"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2000년과 2005년 빈티지는 라벨 디자인 자체가 상이해 전문 소믈리에가 혼동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도 지적했다.

사진=Gemini 생성

다만 이 같은 주장은 어디까지나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며, 안성재의 해명에 따른 구체적인 내부 정황과는 일부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한 진위 확인은 여전히 공방이 진행 중이다.

정기적으로 파인다이닝을 방문한다는 미식 애호가 B 씨는 과거의 경험을 꺼내놓았다. "한국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도 소믈리에의 비전문성을 체감한 적이 꽤 있다. 한번은 옆 테이블 손님과 소믈리에 사이에 사소한 마찰이 있었는데, 그 이후 마치 보란 듯이 서비스 와인이 내 테이블로 쏠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받을 이유가 없었을 양이었다. 덕분에 와인을 실컷 마시긴 했지만, 그 순간 느낀 건 고마움이 아니라 당혹감이었다. 감정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지는 곳에서 프로페셔널리즘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 아닌 '와인 사건'들

사실 와인을 두고 유명 레스토랑에서 논란이 일었던 건 처음은 아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과거 고급 레스토랑에서 발생한 유사 사례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사진=Gemini 생성

미쉐린 2스타 한식 파인다이닝 권숙수에서는 지배인 겸 소믈리에로 근무하던 전 직원이 업무상횡령과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가 빼돌린 와인은 무려 106병, 금액으로는 4100만 원 상당에 달했다. 2021년 7월부터 석 달에 걸쳐 대표이사의 동의 없이 임의로 가격을 산정해 결제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챙겨갔고, 같은 해 11월에는 아예 결제 없이 130만 원 상당의 와인 3병을 무단 반출하기까지 했다. 범행이 들통난 이후에는 해당 와인이 손님에게 정상 판매된 것처럼 POS 시스템을 조작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재판부는 "희소하고 향후 가치 상승 여지가 있는 와인을 보고나 승낙도 없이 임의 가격으로 가져간 이상 횡령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와인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가능했던 범행이었고, 그래서 더 씁쓸한 사건으로 남았다.

강남 소재 와인 레스토랑 뱀파이어위켄드에서는 업주가 손님들이 콜키지로 맡긴 100만 원 이상의 고가 빈티지 와인을 고객 몰래 수차례 시음하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마치 개인 컬렉션인 양 테이스팅 노트를 게재했다가 적발됐다. 당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변호사였고 변호사는 "서빙해달라고 맡긴 것이지 마시라고 맡긴 게 아니다. 이는 절도에 해당한다"고 공개 항의했다. 업주는 사과문을 냈지만 업계의 시선은 싸늘했고, 결국 이 사건 이후 곧 상호를 변경했다. 

미쉐린 2스타 정식당 역시 손님 콜키지 와인을 둘러싼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약 90만 원 상당의 와인을 소믈리에가 100ml 가까이 무단으로 따라가면서 불거진 사건이었다. 피해 고객에 따르면 소믈리에는 사전 고지 없이 임의로 디켄팅을 시작했고, 고객이 가져간 잔의 행방을 묻자 "나중에 마셔보려고 막아놨다"고 답했다. 

정식당 측은 이후 사과 문자를 통해 '마시려던 것이 아니라 디켄터 린스(다음 마실 와인을 위해 내부 헹구는 과정)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고객은 "디켄팅을 요청한 적도 없거니와 '나중에 마시려 했다'는 말을 어떻게 설명하느냐"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콜키지 비용이 병당 10만 원에 달하는 업장에서, 정작 손님의 와인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와인 애호가 C 씨는 "당시에도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 모수 사태가 터지면서 또 떠올랐다"며 "혹시 나도 어딘가에서 당한 건 아닐까 싶어 불안해진다"고 털어놨다.

와인 논란은 왜 반복되는가

전문가들은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서비스 구조 자체가 이런 문제를 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미쉐린 스타급 업장에서는 통상 소믈리에가 손님의 시야 밖에서 와인을 관리하다가 잔이 비면 다가와 채워주는 방식을 택한다. 손님 입장에서 자신이 주문한 와인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구조다.

사진=Gemini 생성

와인킹은 "내가 돈을 내고 구매한 와인이라면 내 테이블에 놓아두는 것이 맞다. 테이스팅 여부도 내가 결정해야 한다"며, 손님이 불안하지 않게 와인을 직접 관리하거나 테이블 위에 두도록 정중히 요청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또한 "아무리 권위 있는 레스토랑이라도 합리적인 요청을 할 권리는 손님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식애호가 B 씨는 "앞으로는 와인을 주문하면 테이블에 병을 두도록 먼저 요청할 생각"이라며 "불신이 생긴 이상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일각에서는 K푸드 열풍으로 파인다이닝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레스토랑의 외형적 성장 속도를 내부 관리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성재 역시 이번 해명에서 "와인 서비스 전반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 같은 지적을 수용했다.

셰프의 요리 실력만큼 와인 관리와 서비스 도덕성이 파인다이닝의 품격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일련의 사건들이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손님이 수백만 원을 지불하고도 자신의 와인이 제대로 서빙되고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면, 그 레스토랑이 내거는 별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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