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추천 여행지

한 번쯤, 꿈처럼 피어나는 겹벚꽃 아래를 걸어본 적 있는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꽃잎 너머로 고요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닌 천년 고찰의 지붕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자락 동쪽에 자리한 선암사는 봄이면 겹벚꽃이 터널을 이루는 비밀스러운 길로 이름나 있다. 연분홍빛과 진분홍빛이 층층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그 풍경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들어서는 문처럼 몽환적이다.
사찰로 향하는 길목마다 나무마다 가지마다 겹벚꽃이 피어 있어, 그 아래를 걷는 순간은 일상이 아닌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찬란한 풍경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겹겹의 꽃잎처럼 수백 년의 시간을 켜켜이 품고 있는 선암사는 단지 아름다운 봄날의 배경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살아 숨 쉬어온 이야기의 공간이다.
꽃은 피고 지지만, 그 속에 흐르는 시간과 정서는 그대로 남아, 선암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선암사
“꽃놀이, 아직 하나도 안 늦었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지은 것이 시초다. 이후 신라 경문왕 원년, 도선국사가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했다.
선암사는 우리나라 선종 9산 중 하나인 동리산문의 법맥을 잇는 사찰로, 깊은 산중에서도 남다른 정신적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바로 맞은편 산 능선에는 승보사찰 송광사가 자리 잡고 있어, 조계산은 말 그대로 불교문화의 보고라 할 만하다.
절 주변에는 수백 년 된 상수리나무와 동백, 밤나무, 단풍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봄이면 겹벚꽃이, 가을이면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특히 겹벚꽃은 다른 어떤 계절보다 선암사의 고즈넉함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주는 존재다.
사찰 입구부터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경내 길목마다 꽃이 겹겹이 피어나면서, 방문객들은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겹벚꽃에 시선이 머문다 해도, 선암사 안으로 발을 들이면 그 아름다움은 다시금 다른 결로 다가온다.
사찰 앞에는 아치형의 ‘승선교’가 있다. 자연 암반을 그대로 받침대로 삼아 만든 이 다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앙에 조각된 용머리가 인상적이다.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사찰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남기는 관문 같은 존재다.
대웅전 앞에는 좌우로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이 석탑 역시 보물로, 고요한 사찰 분위기 속에서도 뚜렷하게 그 자태를 드러낸다.
선암사는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등 주요 건축물 외에도 금동향로, 일주문 등 지방 문화재 12점을 포함하고 있어 전통사찰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암사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거대한 마애불이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 7미터, 너비 2미터에 달하는 이 불상은 바위에 새겨졌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조각 기법도 섬세해 오랜 시간 풍화 속에서도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있다. 이 길은 송광사까지 이어지는 조계산 등산로로, 길을 걷는 내내 울창한 수목과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이 동행해 준다.
이곳은 고로쇠나무가 자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매년 경칩 무렵이 되면 약수도 맛볼 수 있어, 봄철 등산객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더해진다.
호남고속도로 승주 IC에서 빠져나와 857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6킬로미터를 달리면 선암사에 도착한다. 주차는 가능하며, 입장료는 없다.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어 어느 계절에든 방문할 수 있지만, 겹벚꽃이 만개하는 봄날의 선암사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봄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통해 오래된 시간을 만나는 곳. 선암사는 꽃의 계절을 빌려, 천년의 세월을 우리 곁에 조용히 풀어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