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입 가벼웠던 최민식 친구의 '반전' 근황
영화 <올드보이>에서 일어난 사건의 시발점인 배우가 있다. 바로 지대한이다. 영화 <올드보이>는 15년간 감금된 오대수(최민식)가 누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가뒀는지 추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지대한은 오대수의 친구 노주환 역을 맡았다. 영화 속 지대한을 그저 흔한 친구 역으로만 치부하기엔 그가 영화 줄거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
이처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올드보이'에서 맹활약한 배우 지대한이 최근 신작으로 돌아왔다. 지대한은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과의 일상을 영화화했다.
[인터뷰] 배우 지대한, 치매 걸린 장인과의 일상...영화로 만든 까닭
"광대는 선택받는 걸 기다리는 것만 아니라 판도 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멍석도 내가 깔고 놀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지대한)
영화 '올드보이'(2003년)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의 친구로, 때로는 '해바라기'(2006년)의 '병진이 형'으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 배우 지대한은 2018년 고향인 부산에 '지브라더스컴퍼니'라는 영화제작사를 설립해 개성 강한 독립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오는 2월15일 개봉하는 영화 '장인과 사위'(감독 최이현)는 지브라더스컴퍼니가 제작하는 작품. 지대한이 기획과 주연을 맡았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지대한은 "독립영화에 몇 번 출연하면서 피가 끓는 걸 느꼈다"면서 "연기자로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후배들과 판을 짜서 작품을 만드는 일에도 보람을 느껴서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대한이 본격적으로 독립영화 제작에 뛰어든 작품은 80분 분량의 영화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2013년)였다. 이후 '참외향기'(2018년) '대관람차'(2018년) '접전:갑을 전쟁'(2019년) 등을 꾸준히 내놓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1988년 드라마 '지리산'으로 데뷔해 수많은 영화, 드라마에 출연해온 지대한은 "흥행과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충분히 다뤄볼 만한 이야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네가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단역이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재능 있는 제작진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역시도 그를 움직이게 했다.
개봉을 앞둔 '장인과 사위'에도 그동안 지대한과 호흡을 맞춘 수많은 연극배우들이 출연한다. 연출을 맡은 최이현 감독은 사실 배우 출신. 이번 '장인과 사위'로 연출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 치매 걸린 실제 장인어른과의 이야기 녹여내
'장인과 사위'는 치매로 인해 인지 능력이 저하돼 깜빡깜빡 사고를 치는 장인 최규만(동방우)과 왕년에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출연하는 작품도 없고 되는 일도 없는 배우 사위인 박진기(지대한)의 '강제 동거 라이프'를 그린다. 부산 올 로케이션 촬영으로 부산의 마천루와 푸르른 바다 등 부산의 매력을 한껏 담아냈다.
영화의 전반부는 사위 박진기와 그의 동료인 무명 트로트 가수 차도필(이혁)이 어떻게든 자신들의 영화와 음반에 투자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상황이 바뀌는 후반부는 박진기가 얼떨결에 장인인 최규만을 돌보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안긴다.
영화에는 지대한의 실제 경험과 감정이 녹아 있다.
"몇 년 동안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을 모셨어요. 장인어른이 아기처럼 이야기하는 게 어떤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재미도 있었죠. 치매 걸린 노인을 돌보는 건 우울하고 칙칙하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직접 겪어보니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았죠."
그는 "아이가 된 장인어른과 그냥 놀았다"면서 "장인어른이 철없는 이야기를 하면 같이 웃고, 서로 장난도 쳤다. 그런 경험을 연극이나 단편영화로 만들어서 치매가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서 박진기는 유쾌하다"고 강조했다.
"영화에서 박진기는 일류 배우가 아니어도, 치매 걸린 장인어른을 돌봐야 하는 일상에 지쳐도, 꿈과 희망에 젖어 즐겁고 행복해요.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영화에는 지대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해바라기'를 연상케 하는 장치들이 등장한다. 특히 '해바라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김병옥이 특별출연해 반가움을 더한다. 그는 "관객들에게 서비스"라고 웃어 보였다.
"좋은 영화가 오래간다는 걸 느낍니다. '해바라기'가 개봉한지 벌써 18년이 지났는데, 스무 살이 넘은 우리 아들 또래가 저를 '병진이 형'(영화 속 역할 이름)이라고 부르더라고요.(웃음)"
● "지대한표 영화, 틈새시장 노린다"
지대한은 팬데믹 기간 '장인과 사위'를 비롯해 '하우치' '더 버스'까지 무려 세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배우 생활을 통해 콘텐츠 업계에서 "틈새시장을 봤다"고 말하는 그는 "30억, 100억 그 이상의 상업영화 사이에서 분명히 '지대한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일상생활에서 재미있는 소스가 있으면 늘 메모하고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고 이야기했다.
"아직 관객들이 많이 본 작품은 없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10만명, 30만명 그리고 1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할 겁니다. 힘들어서 못하는 건 없어요. 실패해도 계속해 나가려고요. 안되면 될 때까지의 정신이죠. 하하."
지대한은 2009년 개봉한 '인사동 스캔들'을 촬영할 당시 마동석과 '배우가 제작하는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도 털어놨다.
"서로 무명이었거든요. 뜰지 안 뜰지 보장이 안 되지만, 광대들이 스스로 판도 깔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마)동석이를 따라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닙니다.(웃음) 동석이는 역량도 뛰어나고 똑똑하니까 잘 됐다고 생각해요."
무명과 단역배우 생활을 거쳐 연극 무대에 서고, 크고 작은 영화의 조연과 주연을 해온 지대한은 "부산에서 영화배우 하겠다고 스무 살에 무작정 상경해서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것마저도 재밌었어요. 지금은 제가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데 그것도 즐겁고요. 인생은 무조건 재밌게 살자는 주의인데, 잘 이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대한은 "'장인과 사위'는 35년 만에 고향에 들고 온 작품이라 더 의미가 깊다"면서 "작은 영화라 전국적으로 개봉은 못하지만 부산에서는 극장이 꽤 잡혔다. 부산에서만큼은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는 "지방의 어느 극장에서라도 지대한이라는 배우를 보고 싶다고 하면 달려갈 생각"이라고 남다른 각오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