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홈런 포수' 칼 랄리, 애런 저지 넘어설까

칼 랄리 (시애틀 SNS)

시애틀 포수 칼 랄리는 전반기 최고의 신데렐라였다. 원래 리그 정상에 군림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올해 본인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트레이드 마크는 홈런이다. 전반기에만 38홈런을 때려냈다. 메이저리그 역대 전반기 2위에 해당한다. 2001년 배리 본즈가 전반기에 39홈런을 몰아쳐 73홈런 시즌을 만들어낸 바 있다. 본즈의 73홈런은 훗날 금지약물 혐의에 휩싸여 '허울 뿐인 숫자'로 전락했다.

랄리는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도 출장했다. 뿐만 아니라 홈런더비도 나갔다. 보통 전반기 성적이 뛰어난 타자는 홈런더비 참가를 주저한다. 체력 부담이 크고, 스윙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랄리는 홈런더비가 '운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홈런더비에서 우승했다. 극적으로 예선을 통과하더니 결승전에서 주니어 카미네로(탬파베이)를 꺾었다. 아버지(투수)와 동생(포수) 함께한 대회였기에 더 의미가 남달랐다.

목표
랄리도 후반기 성적은 떨어졌다. 후반기 34경기 타율이 .217에 불과하다. 출루율도 3할이 되지 않는다(.289). 전반기 OPS는 1.011이었지만, 후반기 OPS는 0.789에 머무르고 있다. 전반기가 없었다면 후반기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런 페이스는 급락하지 않았다. 전반기 94경기 38홈런, 후반기 35경기 12홈런이다. 홈런 하나 당 걸린 타석을 보면, 전반기 9.1타석, 후반기 12.7타석이다. 전반기보단 늘었지만, 후반기 홈런 생산력이 크게 감소하진 않았다.

지난 월요일, 랄리는 홈런 두 방을 터뜨렸다. 그 홈런들은 새로운 역사였다.

단일 시즌 포수 최다 홈런

50 - 칼 랄리(2025)
48 - 살바도르 페레스(2021)
45 - 자니 벤치(1970)
43 - 하비 로페스(2003)


랄리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홈런 포수가 됐다. 2021년 살바도르 페레스를 가볍게 넘어섰다. 랄리의 기록을 알아챈 동료들은 랄리가 돋보일 수 있도록 커튼콜을 유도했다. 처음에 쑥쓰러워했던 랄리는 이내 관중들과 신기록의 기쁨을 공유했다.

포수 최다 홈런 시즌 경신 (시애틀 SNS)

랄리는 포수로 출장한 경기에서 40홈런을 때려냈다(지명타자 10홈런).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아직 포수 최다 홈런 시즌을 이뤄내진 못했다. 2003년 하비 로페스가 43홈런 중 42홈런을 포수로 나와서 쏘아올렸다. 물론, 이 기록도 깨지는 건 시간 문제다.

랄리의 다음 목표는 스위치 히터 최다 홈런 시즌이다. 미키 맨틀을 넘어야 한다.

단일 시즌 스위치 히터 최다 홈런

54 - 미키 맨틀(1961)
52 - 미키 맨틀(1956)
50 - 칼 랄리(2025)
45 - 치퍼 존스(1999)
45 - 랜스 버크먼(2006)


랄리는 61홈런 페이스다. 남은 시즌 충분히 1위를 노려볼 수 있다. 지난해 앤서니 산탄데르가 44홈런으로 이 부문 6위에 올랐는데, 60년 넘게 달라지지 않았던 1위 타자가 바뀔 수 있다. 참고로 단일 시즌 스위치 히터 최다 멀티 홈런 경기는 이미 바뀌었다.

9 - 칼 랄리(2025)
8 - 미키 맨틀(1961)
7 - 미키 맨틀(1956)
7 - 켄 캐미니티(1996)
7 - 마크 테세이라(2005)


랄리는 더 큰 목표도 도전한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6명밖에 없었던 '60홈런'이다. 60홈런 타자는 베이브 루스(1927년)와 로저 매리스(1961년), 마크 맥과이어(1998-99년)와 새미 소사(1998-99, 2001년), 배리 본즈(2001년), 애런 저지(2022년)만이 달성했다. 이 가운데 맥과이어와 소사, 본즈의 60홈런 위상은 추락했다. 이에 2022년 저지가 62홈런을 완성하자 '메이저리그 청정 홈런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 대기록에 랄리가 다가서고 있다. 전반기 38홈런에도 랄리의 60홈런이 멀어보였던 건 포지션이 포수라는 점이었다. 체력 소모가 큰 포지션이라 페이스 유지가 어려웠다.

랄리는 이 불리함을 안고 50홈런까지 때려냈다. 그리고 역사에 없었던 '60홈런 포수'로 이름을 새기려고 한다. 포수라는 포지션의 특수성은, 이제 랄리만의 특별함이 됐다.

경쟁
랄리가 후반기에도 홈런을 몰아치면서 아메리칸리그 MVP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애런 저지의 독주였지만, 랄리가 대기록들을 달성하면서 저지와의 거리를 많이 좁혔다. 심지어 <MLB> 공식 SNS에서는 "랄리가 MVP 순위를 뒤집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 선정 현재 MVP 순위 (MLB SNS)

이러한 역전 현상은 저지가 후반기에 주춤하면서 일어났다.

당초 저지는 랄리 못지않게 위대한 시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전반기 리그 평균 타율이 .245였는데, 저지의 전반기 타율은 .355였다. OPS 1.194도 독보적인 1위, 종합적인 공격력을 측정하는 조정득점생산력(wRC+) 역시 나홀로 200을 넘겼다(저지 216, 랄리 175). 62홈런을 친 2022시즌보다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평가였다.

저지를 저지한 건 부상이었다. 저지는 후반기가 시작된 7월말에 오른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부상 부위도 사태의 심각성을 키웠다. 통증이 생긴 팔꿈치 굴근은 내측측부인대(UCL) 손상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내측측부인대 손상은 토미존 수술을 요한다.

다행히 저지는 더 큰 부상으로 확대되진 않았다. 8월6일 부상에서 복귀했다. 그러나 돌아온 뒤에도 경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양키스도 저지의 부상 재발을 피하기 위해 지명타자로만 내보내는 중이다. 저지도 무리해서 우익수 출장을 강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부상 복귀 후 저지는 이전 같지 않다. 18경기에서 62타수 13안타, 타율이 .210에 그치고 있다. 홈런 3개를 때려냈지만, 타석에서의 강력함이 약해졌다. 가장 이상적인 타구로 불리는 배럴 타구 생산도 전반기 타석 당 16%였는데, 부상에서 돌아온 뒤에는 9.2%가 됐다. 한편, 같은 기간 랄리의 배럴 타구 생산은 타석 당 13.3%다.

애런 저지 (양키스 SNS)

전반기 저지가 천상계 선수였다면, 후반기 저지는 인간계로 내려왔다. 그러면서 저지와 랄리의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저지 & 랄리 성적 비교

저지 : 121G 타율 .323 40홈런 [OPS] 1.106
랄리 : 129G 타율 .247 50홈런 [OPS] 0.949

저지 [wRC+] 193 [fWAR] 7.3 [bWAR] 6.9
랄리 [wRC+] 161 [fWAR] 7.3 [bWAR] 5.9


전체적인 성적은 여전히 저지의 우위다. 타자로서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랄리는 홈런, 타점에서 더 나은 성적이지만, 타율이 너무 낮은 점이 약점이다. 지금까지 타율 .240대 MVP 선수는 없었다. 2021년 오타니 쇼헤이가 타율 .257를 기록하고 MVP를 받았는데, 그 해 오타니는 투타겸업을 완수했다(9승2패 평균자책점 3.18 130.1).

다만, MVP 투표는 '임팩트'를 무시할 수 없다. 랄리는 홈런에서 기념비적인 시즌을 선보이고 있다. 만약 60홈런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포수 시즌을 장식한다면 타율 때문에 랄리를 외면하는 건 우선순위에서 어긋난다. 여기에, 저지가 반등하지 못할 경우 이미 기대치가 높아진 저지에게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저지로선 지명타자가 아닌 우익수로 나올 수 있을지도 대단히 중요하다. 수비 포지션에서 차이를 두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랄리가 확실하게 저지를 넘었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만장일치라는 '안전 지대'는 무너졌다. 두 선수의 MVP 경쟁이 남은 시즌 최대 볼거리다.

시애틀
수상 투표 기준은 과거보다 명확해졌다. 개인 성적에 집중하면서, 단순하게 누가 더 잘했는지를 따진다. 과거에는 해당 선수가 팀에 미치는 영향력도 하나의 잣대였다. 그러다 보니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를 비중있게 따졌다.

두 선수가 속한 팀들은 모두 포스트시즌 가시권에 있다. 공교롭게도 양키스가 와일드카드 2위, 시애틀이 3위다. 두 선수와 더불어 두 팀도 와일드카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2022년 시애틀은 2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해냈다. 그때 끝내기 홈런으로 시애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결정지은 선수가 랄리였다. 이후 랄리는 "시애틀의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바란다"는 말을 틈만 나면 했다.

랄리의 별명 'BIG DUMPER' (시애틀 SNS)

랄리의 바람과 달리 시애틀은 지난 2년간 포스트시즌에 초대받지 못했다. 지난 시즌은 막판까지 가능성을 두고 봤지만, 1승이 부족한 탓에 끝내 고배를 마셨다.

올해 시애틀은 5월과 6월 월간 승률 5할에 실패했다. 나란히 13승14패였다. 그러나 7월에 14승12패로 분위기를 바꿨다. 8월에는 첫 10경기 9승1패를 질주하면서 휴스턴과 지구 공동 선두에 올랐는데, 이후 8경기 1승7패로 흔들리면서 다시 내려왔다.

팀 성적이 수상 투표에서 가지는 지배력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시애틀이 3년 만에 다시 포스트시즌에 오른다면 랄리는 또 한 번 조명을 받을 것이다. 랄리의 대활약에 힘입어 시애틀이 가을 야구를 하게 됐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MVP 투표는 시즌 내내 주목을 받는 선수가 유리하다. 랄리는 개인 기록 외에 팀 성적으로도 마지막까지 주역이 될 수 있다.

랄리는 주인공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포수 최다 홈런 커튼콜도 동료들에게 떠밀려 받은 선수다. 저지와의 MVP 경쟁에 대해서도 "저지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욕심이 없는 선수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상황도 흥미롭다.

지난 6월에 쓴 랄리의 글에서 "랄리의 질주가 정말 멈추지 않는다면, 저지의 MVP 수상은 장담할 수 없다"고 썼다.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이 문장은 현실이 됐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