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허락 없이 집 판 뒤 보증금 물어내게 된 집주인… 대법 “중개사 책임 없다”

박강현 기자 2024. 10. 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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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건물. /조선일보DB

집주인이 보증금 관련 채무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집을 판 뒤 보증금을 배상하게 된 경우, 이 거래를 주선한 공인중개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채무 등 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은 변호사 조언을 받아야지, 공인중개사가 이에 대해 설명할 의무까진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손모씨가 공인중개사 김모씨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손씨는 2020년 5월 자기 소유의 울산 중구 아파트를 김씨 중개로 2억8000만원에 매매했다. 당시 아파트는 법인인 한국에너지공단이 임차인으로 2억원의 보증금을 내고 사용하고 있었는데, 손씨는 아파트 매매 계약을 체결하며 임대차 보증금 채무 2억원을 매수인에게 넘기고 차액인 8000만원만 받기로 했다.

그러나 손씨가 이 과정에서 임차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주민등록을 할 수 없는 법인 임차인은 개인 임차인과 달리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기 때문에 현행법은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 채무를 매수인에게 넘기고 책임을 면제받으려면 임차인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손씨는 거래 과정에서 이 절차를 모르고 지나갔다.

손씨 아파트 매수인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아파트를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했고,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갔다.

결국 임차인인 한국에너지공단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후 보험사를 통해 이를 돌려받았는데, 보험사는 손씨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2억원 배상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자 손씨는 이에 반발해 김씨와 협회를 상대로 “채무 인수가 불가능한 상황과 대비책 등에 관한 정확한 설명 없이 매매계약을 중개하는 등 공인중개사로서의 주의 의무를 위반해 손해를 봤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공인중개사의 주의 의무가 없다고 보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지만, 2심은 반대로 주의 의무를 긍정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채무 인수의 법적 성격을 가리는 행위는 단순한 사실 행위가 아닌 법률 사무로 공인중개사가 부동산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채무 인수의 법적 성격까지 조사·확인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공인중개사의 중개 행위는 당사자 사이에 매매 등 법률 행위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주선하는 목적일뿐, 변호사 등이 하는 법률 업무와는 구별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논란에 대해 견해 대립이 있어 왔는데 이번에 대법원이 공인중개사의 직역 범위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했다”며 “향후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법률적인 쟁점 등에 대해선 거래 전후로 변호사 등과 상의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이어 “공인중개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문제되는 경우는 다가구주택에 많은 소액임차인이 있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을 때”라며 “임차인이 몇 명 있고, 어떤 호에 거주하고 있는지 등 사실 관계에 관한 설명은 공인중개사가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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