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인사이드] 중동전쟁 '고유가 역설'…EV는 기회, 배터리엔 부담

/생성형 AI(챗GPT)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중동 에너지 공급망을 뒤흔들면서 전기차(EV) 시장의 반사이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유가가 오를수록 내연기관차의 유지비 부담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충전비가 낮은 전기차의 경제성이 다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터리 업계는 마냥 반기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배터리 셀 생산에 들어가는 석유화학 기반 원재료는 물론 해상 물류 차질로 운송·보험비까지 함께 뛰어오를 가능성이 커서다.

고유가로 살아난 EV 기대감

1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동 정세는 단순한 유가 상승 변수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합의했음에도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정상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수송 차질 우려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9일 기준 지난 24시간 동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평시 약 140척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척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해협 물동량 회복이 늦어질 경우 원유 공급 불안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클레이스와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들도 브렌트유 가격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잇달아 제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중동 전쟁이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공급망을 동시에 흔들며 글로벌 성장과 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개발한 4680(좌), 2170(우) 원통형 배터리. /사진 제공=LG에너지솔루션

표면적으로만 보면 배터리 산업에는 나쁘지 않은 환경처럼 보일 수 있다.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량 구매 뒤 들어가는 연료비가 다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전기차는 초기 구매 가격이 높아도 운행 단계에서는 연료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유가 상승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의 유지비 우위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이어졌던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 완성차 업계와 배터리 업계 모두 시장 회복 기대를 가질 만한 요인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고유가 국면이 친환경차 전환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기대가 꾸준히 제기된다.

문제는 배터리업계 손익계산서에 반영되는 순서다. 전기차 판매 반등은 소비 심리와 보조금 정책, 금리 환경, 완성차 업체 가격 전략 등 여러 변수를 함께 타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원가 상승은 훨씬 빠르게 반영된다. 유가가 오르면 배터리 제조 전반에 들어가는 전력·열에너지 비용과 함께 각종 포장재, 용제, 수지, 필름, 화학첨가제처럼 석유화학 계열 제품 가격도 연쇄적으로 자극받는다.

배터리업계 "원가·물류비 상승 우려"

특히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주력으로 삼아 온 삼원계(NMC) 배터리의 경우 더 민감할 수 있다. 삼원계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니켈 혼합수산화물(MHP)은 전구체와 양극재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MHP 생산에는 황산이 주요 부재료로 쓰이는데, 제련 중심지인 인도네시아가 황 수입 상당 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황산 조달 경로에 차질이 생기면서 삼원계 배터리의 기초 원가 구성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SDI의 대표 삼원계 배터리인 ‘PRiMX’ 제품. / 사진 제공=삼성SDI

게다가 물류비 상승도 배터리사들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지난 3일 기준 글로벌 해상운임 평균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전주 대비 1.5%(28.19포인트) 오른 1854.96을 기록했다. 이는 중동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27일 SCFI 1333.11 대비 5주 만에 39.1%(521.8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와 함께 전쟁 위험으로 인한 보험료도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해협 이용에 별도 비용이 붙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로 생산라인 가동률이 낮아지고 고정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물류비와 보험료 상승은 배터리사들의 수익성을 추가로 깎는 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셀 가격은 고객사와의 계약 구조상 즉각 전가하기 어렵고 수요 둔화 상황에서는 협상력도 약해진다”면서 “판매량이 살아나더라도 원가 상승 폭을 따라가지 못하면 실적 개선 체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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