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9억에도 대기 1년" 초고령화 시대, 실버세대 주거시설이 뜬다

[땅집고]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이달 하순 입주하는 시니어타운 ‘평창카운티’ 전용 43㎡ 주택 내부. 거실 겸 주방, 침실. 화장실이 있어 1~2인 고령 가구가 생활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급격한 고령화로 시니어타운 수요가 늘면서 관련 시설 개발에 뛰어드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KB골든라이프케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지상 5층 건물. 실내로 들어가자 유리로 만든 4단 조명과 금색 계단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치형 기둥과 몰딩을 적용해 중세 유럽 건물처럼 보였다. 이달 하순 입주하는 시니어타운 ‘평창카운티’다. KB금융이 자회사인 KB골든라이프케어를 통해 선보이는 1호 시니어타운이다. 2006년 노인주거시설 겸 어린이집 용도로 지었다가 KB가 인수해 리모델링한 것이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관리비 포함)는 290만~457만원선이다. KB 관계자는 “방문자들의 절반 정도가 계약의사를 밝혔다”면서 “보증금만 수억원대인 다른 실버타운보다 저렴하고 보기 드물게 서울 도심에 있다는 점에서 수요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이른바 시니어타운 수요가 급증하면서 실버세대를 겨냥한 부동산 개발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건설회사는 물론 금융기관, 유통회사, 호텔까지 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요가 폭발하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급증하는 고령인구…제대로 된 시설없어

올 9월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국내 고령인구 비율은 2023년 18.4%에서 2025년 20.6%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2035년 30.1%를 거쳐 2050년엔 40.1%에 달할 전망이다. 문제는 고령 인구가 급증하는데 이들이 살만한 제대로 된 시니어 레지던스 공급은 거의 없다는 것. 실제로 노인복지주택(시니어 레지던스)은 2018년 35곳에서 지난해 38곳으로, 5년간 고작 3곳 늘어나는데 그쳤다. 올해 말부터 2025년까지 입주할 시니어 레지던스도 인천 서구의 ‘더 시그넘하우스 청라’(139실), 서울 강서구 ‘VL르웨스트’(810실) 등 총 1600여실에 불과하다.

이렇다보니 시설 수준과 서비스가 뛰어난 서울 도심과 수도권 시니어타운에는 입주자가 줄을 서고 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더클래식500′은 보증금만 9억원을 내야 하는데도 입주하려면 2~3년씩 기다려야 한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있는 ‘시그넘하우스’도 작은 방(전용 11~18㎡)은 최소 6개월, 큰 방(21~24㎡)은 1년쯤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버타운 대기 수요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고령자가 입주할만한 주거시설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노인 요양시설은 낡았고 여가 시설도 전무하다”면서 “4인실이나 6인실로 구성돼 사생활 보호도 힘들다”고 했다.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전국 양로시설은 2018년 238곳에서 지난해 180곳으로 5년간 25%쯤 줄었다.

◇금융기관, 호텔도 시니어 하우징 눈독

시니어타운 수요가 늘면서 건설업계는 물론 금융기관, 호텔 등도 시니어 부동산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평창카운티도 이지스자산운용이 KB골든라이프케어와 제휴해 만들었다. KB금융은 2025년까지 시니어타운 3개를 더 개발할 계획이다. 신한금융도 신한라이프생명을 통해 실버산업 진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은 기존 ‘메이필드호텔 스쿨’ 운영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시니어타운을 짓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 2~3월 착공할 예정이다.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도 이달 초 신세계프라퍼티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와 실버 주거를 결합한 신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KB라이프생명 관계자는 “금융사와 호텔, 신탁회사, 시행사 등이 시니어 주거 산업에 동시 다발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했다.

◇”신기술 활용한 시니어 타운 나올 것”

업계에서는 시니어 하우징 시장이 확산하면서 서비스와 시설 수준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10여년 전만해도 시니어타운은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던 식사 서비스, 피트니스클럽, 사우나, 수영장 등을 선보였다. 심우정 실버산업전문가포럼 회장은 “자율주행로봇이 거동이 불편한 입주자에게 식사를 배달하는 서비스도 등장할 것”이라며 “IT(정보기술)·의료·여가·주거가 결합한 신개념 시니어 주거 시설이 빠른 속도로 확산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시니어타운 공급 확대를 위한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어린이집처럼 시니어 레지던스 운영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면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 “수요가 집중된 서울 등 대도시에 중산층용 실버타운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입지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글= 김서경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