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디딤돌 대출의 배신…서민층 줄고, 고소득층이 수혜 누렸다
주택 구입용 정책금융인 디딤돌 대출 이용자 가운데 연소득 4천만원 이하 대출자 비중이 2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연소득 6천만원 이상 대출자 비중은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연소득이 1억원 넘는 대출자도 적지 않았다. 취약계층 주거 지원을 위해 마련된 정책대출이 실제로는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의 자산 형성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민층은 줄고 고소득층은 늘어
23일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받은 디딤돌 대출 집행 실적 자료를 보면, 연소득 4천만원 이하 가구의 대출 비중(금액 기준)이 2022년엔 전체의 절반 수준인 47.5%였으나, 지난해 36%로 줄어든 뒤, 올해 들어 9월까지 26.1%까지 쪼그라들었다. 2년 만에 20%포인트나 급감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중산층 이상은 비중이 크게 늘었다. 연소득 6천만~8500만원 가구 비중은 같은 기간 14.4%에서 31.4%로 뛰었다. 연소득 8500만원 이상 가구도 올해 집행된 대출의 8.1%, 연소득 1억원을 웃도는 가구 비중도 4.1%였다. 과거엔 소득 기준에 걸려 수혜 대상이 아니었으나, 올해 초 새로 시행된 신생아 특례대출 덕택에 1억원 넘는 고소득 가구도 디딤돌 대출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중산층 및 고소득층 대출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소득 기준을 낮춰 대출 대상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신혼부부 디딤돌 대출 소득 요건을 부부 합산 7천만원 이하에서 8500만원 이하로 완화한 데 이어, 올해 초엔 2년 이내 출산한 부부에 한해 연소득 제한 한도를 1억3천만원으로 설정했다. 이렇게 기준이 완화되기 전 대출 조건은 연소득 기준 6천만원 이하였다.
줄일 때는 서민층부터?
지난 4월 이후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불안과 가계대출 급증 현상이 나타나면서 과도하게 풀린 정책대출이 주범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가계부채 관리와 금융안정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과 디딤돌 대출 정책을 관장하는 국토교통부 간의 갈등도 불거졌다. 기획재정부가 이를 조정하면서 가계부채 관리에 좀 더 무게를 실었고, 금리 조정 등 본격적인 정책 대출 제한 조처가 조금씩 시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국토부는 중산층·고소득층이 아닌 서민층이 상대적으로 더 손해 보기 쉬운 방안을 선택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14일 케이비(KB)국민은행에서부터 시작된 국토부 방침은 세입자에게 보장되는 소액보증금(이른바 ‘방공제’)까지 포함해 대출 받을 수 있는 보증상품 가입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정책대출의 한도를 축소하는 게 뼈대였다. 이렇게 되면 서울 5500만원, 과밀억제권역 4300만원 등 지역별 소액보증금 한도가 대출한도에서 제외된다. 그간 3억원 이하 주택을 매매할 때(생애 최초 구입 제외) 어렵지 않게 보증 가입만 하면 담보인정비율(LTV) 70%까지 받을 수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수천만원 상당의 대출한도가 깎이게 된 것이다. 서민·지방주택 구매자들만 대출한도 제한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반발이 커진 까닭이다. 국토부는 보증상품 가입이 ‘은행 지점 재량 사항’이라 우선 손댔다는 설명이지만, 반발이 커지자 지난 18일 돌연 철회한 뒤 ‘비수도권 적용 제외’ 등 보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저리 정책대출의 수혜를 상대적 고소득층이 더 많이 누리는 상황이 합당한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해 정책 모기지 대상을 늘렸지만, 한정된 자원을 어떤 계층에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며 “다양한 정책적 목적을 위해 정책 모기지의 대상을 늘리면 가계부채 총량이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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