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정원의 중요 역할은 ‘국가안보 파수꾼’
1976년에 일어난 코리아게이트(Koreagate)는 한국 중앙정보부가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을 통해 미국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건넨 정치스캔들이다. 이로 인해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을 촉진시켰고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곤욕을 치렀지만 그 동기는 단순하다.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시작하면서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군사원조는 의회의 예산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하자 미 의회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3월14일 “올해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바 있다”고 발표한 데 이어 4월15일 별도 통보 없이 이를 발효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지정 사유가 어떠하던지 사전 움직임이 있었을 텐데 우리는 까맣게 몰랐다. 민감국가 리스트 관리기관인 에너지부 정보·방첩국(DOE-IN) 수장은 주로 CIA 출신이 맡아 미국의 16개 정보기구와 공조하고 있다. 거대한 관료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조짐이 감지될 것이다. 기본적인 책임 소재는 외교부에 있지만 국정원도 자유롭지 못하다.
윤석열정부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새삼 들춰낸 것은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그동안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의문 때문이다. 김규현 원장 재임 시에는 인사소동으로 떠들썩하다가, 같은 외교관 출신인 조태용 원장 역시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채 비상계엄 사태에서 홍장원 전 1차장의 항명 사태를 겪었다.
새 정부 국정원장으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명되었다. 세종연구소에서 오랫동안 북한 문제를 다룬 전문가이고 노무현정부에서 통일·안보분야 요직을 거쳤으니 자격 면에서 손색이 없다. 다만 이 전 장관을 기용한 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데 지나치게 방점이 찍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안보 지형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6·25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새 국정원장은 국가정보기관의 주요 기능이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남북관계 관리 못지않게,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의 이익 증대와 안전보장 추구라는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한 파수꾼 역할도 함께 부여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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