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히어로물 속에서 세상을 지우던 ‘인피니티 건틀렛’이 현실에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캐나다의 발명가 켈빈 곤잘레스가 만든 수어 로봇팔 ‘벌칸 V3’는 손짓 하나로 언어의 벽을 넘는다. 그것도 단돈 40만 원 남짓으로.

벌칸 V3는 일반적인 로봇팔과 다르다. 단순한 제스처 모방이 아닌, 수어(수화)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양손’을 구현했다. 청각장애인에게 수어는 단지 손짓이 아니라 문장이자 감정이며 삶이다. 이 로봇은 그 복잡한 언어의 구조를 가능한 한 충실히 따라간다.
주목할 건 정밀도다. 손가락마다 4개의 서보 모터, 손목까지 포함하면 총 24개의 모터가 들어간다. 손가락 끝의 곡선과 손목의 각도, 작은 떨림까지 사람 손처럼 구현된다. 겉모습은 마치 타노스의 건틀렛을 연상케 하지만, 기능은 훨씬 섬세하고 유익하다.

프로세서는 아두이노 메가 기반. 저렴하지만 빠르다. 실시간 반응이 가능하다는 건, 이 로봇이 단순한 ‘움직이는 조형물’이 아니라 실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의미다. 로딩 없는 수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가격도 혁신이다. 부품 대부분이 3D 프린팅으로 제작됐고, 서보 모터도 고급형이 아닌 범용 저가형이다. 그래서 가능했다. 전체 제작비는 약 300달러, 한국 돈으로 40만 원 내외. 이 가격이면 교실, 병원, 공공기관 키오스크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집요한 취미’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곤잘레스는 로봇 회사 소속이 아닌, 유튜브와 커뮤니티에서 배운 DIY 기술로 벌칸 시리즈를 발전시켜 왔다. 그가 만든 첫 로봇은 마네킹 부품으로 만든 가동형 휴머노이드였다.
벌칸 V3는 그가 수년간 쌓아온 실험과 실패의 결과다. 단순히 기계로 말하는 걸 넘어, 어떻게 ‘사람처럼’ 말하게 할지를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이 로봇에는 기술보다 철학이 먼저 담겼다. “로봇은 인간의 손이 될 수 있는가?”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벌칸 V3는 아직 알파벳 수어 정도만 구현할 수 있다. 문장 전체를 표현하거나 상대방의 수어를 인식하는 기능은 없다. 말하자면, ‘말하는 손’은 있지만 ‘듣는 눈’은 없다. 향후 AI 시각 기술이 결합돼야 완성될 수 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칸 V3는 수어 로봇 시장에서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AI 기반 수어 번역 기술이 ‘말을 해석하는 뇌’라면, 벌칸 V3는 ‘말을 보여주는 손’이다. 번역과 구현의 차이는 분명하다. 특히 공공장소나 교육 환경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기술의 진보가 아닌, 이해와 연결의 진보를 꿈꾸는 로봇. 벌칸 V3는 거창한 상용화보다 ‘한 사람의 손짓’을 가능하게 하는 데 집중했다. 타노스의 건틀렛이 세상을 무너뜨렸다면, 이 건틀렛은 세상을 다시 이어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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