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체불 1600억…‘이직 제한’ 약점 파고든 사업주

남소정 기자 2026. 5. 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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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명 돌파…통계 작성 이후 최다]
제조·건설 넘어 서비스업까지 확산
대부분 사업장 못 옮겨 피해 감수
노동자 상담·구제 지원 인프라 부족
정부, 인권침해 취약사업장 점검 강화

국내 산업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 규모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임금체불 노동자 수는 최근 감소세를 보였지만 외국인 체불 노동자 수는 최근 5년 새 7.5% 증가해 노동권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액은 1601억 원으로 전년(1108억 원)보다 약 44% 증가했다. 체불 피해를 본 외국인 노동자 수도 같은 기간 2만 3254명에서 3만 1580명으로 35.8% 늘었다. 체불액과 피해 노동자 수 모두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반면 내·외국인을 모두 포함한 전체 체불 노동자 수는 2024년 28만 3212명에서 지난해 26만 2304명으로 감소했다. 전체 임금체불 피해자는 줄어든 반면 외국인 노동자 피해는 오히려 빠르게 늘고 있는 셈이다.

임금체불은 제조업과 건설업·농축산업을 넘어 서비스업으로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경기 지역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일했던 베트남 국적의 20대 노동자 A 씨는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일한 임금 일부를 받지 못해 체불액이 400만 원을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주는 수차례 지급 요구에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지급을 미루거나 연락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한 데 이어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민원을 접수했다.

문제는 저출산·고령화로 산업 현장의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외국인 노동자 규모와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2025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에 상주하는 15세 이상 외국인은 169만 2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세종청사 노동부 입구. 사진제공=노동부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임금체불 피해를 입더라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장 이동 제한, 체류 자격 문제, 언어 장벽 등이 권리 구제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동 노무사는 “사업장 이동 제한이나 체류 문제 때문에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참고 넘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국인보다 권리 구제 과정에서 현실적인 부담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주민센터 ‘친구’ 부대표로 활동 중인 조영관 변호사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을 당해도 곧바로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하기 어렵다”며 “새 사업장을 구할 때까지 수개월씩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체류 기간이 줄어드는 부담 때문에 체불 피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부 업종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 적용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있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일부 사업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쉽게 옮기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하기도 한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상담과 권리 구제를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임금체불 문제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 수 자체가 크게 늘었고 임금 수준도 전반적으로 상승한 만큼 체불 증가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법무부와 협조해 체불 노동자들이 출국 전에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상담과 권리구제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최근 외국인 노동자 인권·노동환경 개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23일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외국인 노동자 인권침해 취약 사업장에 대한 집중 점검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임금체불 피해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불법체류 외국인 통보 의무 면제 범위를 확대하고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외국인 인권보호 및 권익증진협의회’ 운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남소정 기자 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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