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낙원, 몰디브 포시즌스 리조트의 추억
Relaxing in a Maldivian Paradise
액티비티와 휴식의 조화
리조트 몰디브 앳 쿠다후라
란다 기라바루를 떠나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앳 쿠다후라(Four Seasons Resort Maldives at Kuda Huraa, 이하 쿠다후라)로 짐을 옮겼다. 사실 이 여정의 순서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몇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아담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쿠다후라를 먼저 찾은 뒤 더 큰 규모의 란다 기라바루로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리조트가 너무 좋아서 쿠다후라에서 실망하면 어떡해?” 같은 걱정의 말들은 쿠다후라에 내린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말레에서 스피드보트를 타고 20여 분을 달리자 선연한 옥색빛의 바다가 펼쳐진다. 아침까지 보던 란다 기라바루의 경치와는 다른 전경이다. 버기를 잡아타고 선셋 워터 빌라에 들어섰다. 달라진 건 경치만이 아니었다. 바다색을 닮은 옥색 벽지에 대나무로 짠 가구와 조명이 야자나무 지붕과 색을 맞췄다. 여기에 짙은 코럴 핑크의 드링크 바와 주황색 패턴의 쿠션이 포인트를 더한다. 란다 기라바루에 비한다면 작은 객실이지만 층고가 높고 수영장으로 나갈 수 있는 통유리창 덕분에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던하면서도 아늑함을 원하는 투숙객의 입맛에는 더 맞는 객실이다. 도착과 동시에 금세 하늘이 변하더니, 곧 검은 먹구름이 비를 뿌렸다. 소파에 누워 밖을 한참 바라본다. 수면이 빗줄기를 따라 반짝이면서 또 한 번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잔잔한 란다 기라바루와는 다른 높이의 파도가 친다. 사실 비가 오지 않아도 쿠다후라는 몰디브의 여느 리조트보다 파도가 높다.
“세계적인 수준의 서핑 선수들이 매년 찾아오는 목적지가 바로 쿠다후라입니다. 포시즌스 몰디브는 12년째 ‘포시즌스 몰디브 서핑 챔피언 트로피’를 주최해요. 쿠다후라 인근에 있는 유명한 서핑 포인트 술탄(Sultans)에서 열리죠. 술탄의 파도는 높고 길어 서핑을 하기에 최적이죠. 올해는 8월 29일부터 8일간 열리는데, 총 2만5천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어요. 직원들도 올해의 우승자가 누가 될지 궁금해해요. 저는 사상 최초의 여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카리사 무어(Carissa Moore)와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오웬 라이트(Owen Wright)의 각축전을 예상해요.” 쿠다후라 홍보 담당자 샤이마(Shaima)가 서핑 얘기에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쿠다후라의 파도를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면 초보자를 위한 서핑 클래스에 참여하는 게 어때요?”
쿠다후라에는 무려 10여 종류의 액티비티가 있다. 이는 다른 리조트에 비해서도 많은 숫자다. 객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리조트가 제공하는 온갖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지만, 쿠다후라는 야외 액티비티나 체험을 원하는 (나 같은!) 투숙객에게도 소홀함이 없다. 샤이마의 말을 따라 원데이 서핑 클래스에 참가하거나 스탠드업 패들보드, 제트스키도 타고 싶었지만 고민 끝에 스노클링과 돌핀 크루즈를 선택했다. 스노클링을 위해 인근 해역의 수중 환경, 주의해야 할 점을 교육받은 뒤 바다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영상으로 보던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코앞에서 유영하고 있다. 바닷속을 헤엄친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바다거북과 이글레이도 마주쳤다. 열대어 무리와 함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해를 지나기도 한다.
리조트로 돌아와 다시 교육을 받고 돌핀 크루즈에 몸을 실었다. 돌고래가 있을 만한 적당한 파도를 찾아나서는 길. 뱃머리에서 파도를 살피는 노련한 선장 뒤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과 여행 온 스리랑카 아이, 나이 지긋한 스페인 노부부 등 모든 사람의 눈빛이 기대로 빛났다. 여러 리조트에서 온 배가 모여들고 엔진이 꺼지자 돌고래를 부르는 박수 소리가 시작됐다.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르는 돌고래 무리가 서로 경쟁하듯 배 사이를 헤엄치며 수면 위로 뛰어오른다. “오 마이 갓”을 외치는 아이들의 환호, 갈채인지 더 많은 돌고래를 부르는 건지 알 수 없는(혹은 둘 다인) 박수 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워터 액티비티를 체험하지 않는 날에는 객실과 이어진 바다에 수시로 뛰어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들과 유영하는 데 채 1분이 걸리지 않는다. 허리까지 오는 높이의 바다에서 두세 발짝만 나가면 하얀 산호초들이 감싸고 있다. 쿠다후라는 부러진 산호초 조각을 리조트 주변에 모아 다시 자라날 수 있도록 관리한다. 포시즌스가 몰디브에서 실천하는 지속가능성의 대표 프로그램 ‘리프스케이퍼(Reefscapers)’다. 이들의 목표는 주변 해역에 약 3천500개의 산호 프레임을 배치해 기존의 산호초를 보호하고 새로운 산호초를 만드는 것. 투숙객은 언제든 리프스케이퍼에 동참해 일손을 더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산호가 자라는 과정을 수시로 공개하는 것도 리프스케이퍼의 특징이다.
액티비티로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도니(Dhoni)를 타고 아일랜드 스파로 향했다. 플라잉 박스피시가 란다 기라바루를 상징한다면, 쿠다후라의 상징은 이 귀여운 몰디브 전통 나무 배다. 2~3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지만, 아일랜드 스파는 몰디브에서 유일하게 단독 섬에 자리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베드에 누워 테라피스트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다 보니, 긴장된 몸의 피로가 금세 사라진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엔 투명한 유리 바닥 밑으로 바닷속을 오가는 수중 생물을 감상할 수 있다. 부지런한 여행자에겐 쿠다후라의 선라이즈 요가도 좋은 선택이 된다. 오전 7시면 수영장 옆 덱에 모여 “옴~”을 읊조리며 기운을 모은다. 평화라는 의미의 ‘샨티’를 되새기며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육체와 영혼이 가벼워진 것을 알아챈다. 1시간 정도의 요가가 끝나면 푸른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황홀한 풍경을 눈에 새길 수 있다.
쿠다후라를 이루는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미식이다. 금요일 밤마다 카페 후라(Cafe Huraa)에서 열리는 해산물 뷔페 피셔맨스 피스트(Fisherman’s Feast)에서 통통한 랍스터를 뜯으며 포시즌스 몰디브 마케팅 총괄 디렉터 줄리아나(Juliana)에게 물었다. “몰디브 포시즌스를 통틀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은 어디죠?” 줄리아나는 “하나만 꼽는 게 너무 잔인”하다고 말하면서도 크게 고민하진 않는 듯했다. “바라바루(Baraabaru)예요.”
인도인 셰프 키샨 싱(Kishan Singh)의 지휘 아래 정통 인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바라바루는 2022년 이 선정한 ‘몰디브 최고의 테이블’ 10곳 중 하나다. 납작한 빵 파라타(Paratha)에 소고기와 코코넛을 구워 올린 와규 비프 체티나드(Wagyu Beef Chettinad)를 맛본 다음에는, 양파와 향신료를 넣고 오랫동안 졸인 바라바루 시그너처 라안(Baraabaru Signature Raan)을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일 아침 열릴 쿠킹 클래스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마지막 날엔 보아바로 향했다. 보아바는 포시즌스가 몰디브에서 구현하려는 하스피탤러티의 정점을 목격할 수 있는 프라이빗 아일랜드다. 7개의 침실과 스파, 비치 하우스, 다이빙 센터가 있는 이곳엔 최대 22명의 투숙객이 머물 수 있다. 포시즌스 몰디브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강렬하게 각인된 단어는 ‘가족’이었다. 몰디브 포시즌스를 허니무너의 성지로만 설명하는 것은 한참 부족했다. 아이들과 샤크 피딩을 하는 미국인 가족, 3대가 함께 휴가 온 스리랑카 가족, 심지어 아버지와 유로 결승전을 볼 겸 포시즌스를 찾은 영국인도 만났다. 그동안 생각했던 몰디브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그를 닮은 하늘이 만나는 희미한 수평선. 몇 번의 어둠이 깔리고 헤아리기 싫었던 날들이 쏜살같이 지난다. 마지막 밤, 쏟아지는 별을 보다 문득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오면 더 아름답다”던 샤이마의 말이 생각났다. 모두가 동경하는 곳에서 보낸 비현실적인 그 시간을 더듬으며, 보름달이 뜨는 날 이곳에 있을 나를 벌써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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