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세의 연필 편지
아직 41세다. 1983년 12월 16일생이다. 음력 생일로 선수 등록이 됐다.
그 나이에 손 편지를 썼다. 볼펜, 만년필도 아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흔적이 역력하다.
‘기아 팬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최형우입니다.’ 이렇게 시작한다. 유려한 필치는 아니다. 어색한 글씨에는 불편한 마음이 드러난다.
행복했던 기억, 죄송함, 감사함.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다.
‘기아에서의 시간은 제 야구 인생을 다시 한번 뜨겁게 만들어준 값진 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감사했고, 앞으로도 깊이 감사드릴 겁니다. 여러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수로 계속 뛰겠습니다.’
편지는 그렇게 끝맺음된다.
이틀 전(3일)이다. 오피셜이 떴다. ‘유력’ 혹은 ‘확정적’이라는 보도가 꽤 긴 시간을 끈 끝이다. 드디어 대구행 확정이다.
손색없는 2025시즌을 보냈다. 정규시즌 133경기에서 타율 0.307을 기록했다. 홈런 24개와 타점 86개를 올렸다. 출루율 0.399, 장타율 0.529, OPS(출루율+장타율) 0.928을 마크했다.
이로써 KIA 타이거즈는 가장 강력한 타자 하나를 잃었다.

‘작은 차이’라면서 왜 잡지 못했나
발표된 내용이다. 30억이 넘을 것이라는 예상은 틀렸다. 2년간 총액 26억 원의 조건이다. 2027년까지, 그러니까 43세 시즌까지 보장되는 조건이다.
금액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적어도 알려진 바는 그렇다. 타이거즈의 제시액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기간이 다르다. KIA는 1+1을 원했다. 2026년에 옵션을 채우면, 2027년 계약이 발동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구단 측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얘기다.
그런 관측도 있다. 보상액에 대한 부분이다. C등급 FA다. 보상선수는 필요치 않다. 연봉의 150%를 보전해 주면 된다. 즉, 삼성은 KIA에 15억 원을 이체해줘야 한다.
당사자는 이것도 투자로 받아들인다. 그런 견해다.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 41억 원(26억+15억)을 썼다. 그렇게 해석한다는 뜻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전체적인 맥락은 하나다.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KIA 쪽도 허투루 일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진정성을 보여줬다. 다만, 세부적인 차이가 있었다. 옵션의 내용이나, 보장된 조항이 약간씩 달랐다. 거기서 결말이 달라졌다.
그래서 얘기다. 오늘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그런 작은 차이로 선수가 움직였나?”

집토끼 3명을 놓쳤다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익숙한 곳, 정든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 물론 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복귀’라고 읽을 수도 있다. 자신이 데뷔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보면 만만치 않다. 붉은 유니폼을 9년이나 입었다. 갈아입기 쉽지 않은 세월이다.
그래서 얘기다. ‘어느 팀으로 갔느냐.’ 그건 차후 문제다. 그보다 앞선 궁금증이다. ‘왜 놓쳤냐.’ ‘왜 떠나야 했나.’ 하는 의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일을 바라봐야 한다. 그야말로 ‘별로 크지 않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형우 혼자가 아니다. 벌써 세 번째다.
첫 타자는 박찬호(30)다. 이번 스토브리그 최대어 중 한 명으로 불리던 FA다. 그가 먼저 방을 뺐다. 80억 원이라는 거액으로 잠실(두산)로 이사했다.
포수 한승택(31)도 옮겼다. 4년 최대 10억 원(계약금 2억, 연봉 6억, 옵션 2억)의 조건이다. 수원 KT 위즈로 향했다.
타이거즈에서는 이번에 6명이 FA를 신청했다. 이중 불펜 요원인 좌완 이준영(33)만 잡는 데 성공했다. 3년 최대 12억 원에 합의했다.
3명이 떠났고, 2명이 남았다. 양현종(37)과 조상우(31)가 아직 미계약 상태다. 그런데 협상의 진척이 시원스럽지 않다.
물론 양현종(37)은 남을 것으로 보인다. 상징적인 선수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들리는 얘기가 영 매끄럽지 않다.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길까 걱정이다.

타이거즈는 고민해야 한다
불과 10개월 전이다. 보도자료 하나가 떴다. 발신자는 KIA 타이거즈다. 미국 전지훈련을 앞둔 시점이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지원으로 선수단은 왕복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이동한다.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긴 비행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한 결정이다.”
뭘 그 정도에 그룹 회장의 이름까지 필요한가. 그런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파격적인 일은 맞다.
감독, 코치, 선수는 물론이다. 훈련 보조요원까지 모두 넉넉한 좌석에서 인천~LA(어바인) 노선을 즐겼다. 12~14시간의 긴 거리가 한결 편하다. 우승의 달콤함이다.
하지만 이번 겨울은 다르다. 싸늘하기 그지없다.
구단의 방침은 뚜렷하다. ‘오버 페이는 없다’라는 기조다. 이런 일관성은 FA 시장에서도 유지된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는 얘기도 맞다. 8등 한 팀이 훈훈할 리 없다.
문제는 분위기다. 보도자료에 등장한 용어 ‘(선수단의) 사기(士氣)’다.
벌써 집토끼 3명을 놓쳤다. 박찬호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최형우는 삼성과 큰 차이가 아니라고 애써 설명한다. 그럼 왜 못 잡았는지를 해명해야 한다.
과연 여전히 뛰고 싶은 팀인지. 우승 반지를 노릴 경쟁력을 갖춘 곳인지. 커리어를 바칠 가치가 있는 조직인지.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인지.
타이거즈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