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응급실 총력전…국민은 “아프면 어쩌나”

정종훈.남수현 2024. 9. 1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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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사태 후 첫 명절, 진료 비상
13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 다섯 대가 들어섰다. 응급실 앞 주차구역이 119와 사설 구급차로 꽉 찼다. 한 구급차에서 다급히 내린 60대 여성 A씨가 응급실 벨을 눌렀다. 조금 뒤 ‘수용 가능’ 신호가 오자 들것에 실린 80대 여성 환자가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옮겨졌다. A씨는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급히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응급실(지역응급의료센터). 성모(58)씨는 “동료 직원이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해 보호자로 왔는데, 진료를 봐줄 의사가 없어 1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큰 병원도 이런데 지방 병원은 어떨까 싶다”며 고개를 저었다. 응급실엔 경증으로 보이는 환자도 여럿 보였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40대 여성 B씨는 “복통 때문에 응급실을 찾았는데 의사가 한 명밖에 없어 한참 기다렸다”고 전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응급실 비상사태’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의들의 피로 누적과 사직 등이 겹치면서 응급실 근무자가 턱없이 부족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응급실은 응급환자에겐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서 ‘응급실 뺑뺑이’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도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긴 연휴 기간 많은 의료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환자들이 문을 연 병원으로 한꺼번에 몰릴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그런 가운데 의료공백을 해소할 계기로 주목받던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도 이날 의료계 8개 단체가 참여를 거부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연휴를 앞둔 이날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 홈페이지에도 여러 병원이 ‘전문의 한 명 진료, 119 이송 전 수용 여부 확인’ ‘일부 과목 진료 불가’ 등의 안내 메시지를 올려놓고 있었다. 서울 ‘빅5’ 병원의 한 관계자는 “응급실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그렇다고 현재 인력 상황상 추석 연휴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당직을 늘리거나 다른 진료과 전문의를 투입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지난 9~10일 전국 53개 수련병원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급실 근무 의사는 지난해 914명에서 535명으로 41.5%나 줄었다. 전의교협은 조사 참여 병원 중 7곳은 응급실 근무 의사가 5명 이하로 24시간 운영이 어려워 부분 폐쇄를 고려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흔들리는 응급의료 체계 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추석 연휴 동안 전국 409개 응급실 중 2곳을 제외한 407개 응급실이 매일 24시간 운영된다”고 밝혔다.


응급센터 상황판엔 “전문의 1명 진료” 올린 병원도 상당수
13일 지역 응급의료기관인 대구시 중구 곽병원 출입구에 추석 연휴 기간 진료시간 변경과 응급실 정상진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정부는 또 지난 11일부터 25일까지 2주 동안을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으로 정하고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번 연휴 기간 전국에서 하루 평균 7931곳의 병·의원이 문을 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설 연휴(약 3600개)의 두 배 이상이다. 150여 개 분만병원도 운영을 이어간다.

정부는 연휴 전후로 건강보험 수가도 한시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진찰료를 평상시의 3.5배로 올리고 응급실 진료 후 수술·마취 등에 대한 수가도 인상하는 식이다. 인력 이탈로 어려움을 겪는 응급의료센터엔 신규 채용 인건비를 지원하고 군의관·의사·진료지원(PA) 간호사 등 대체 인력도 최대한 투입하기로 했다.

국민에겐 아플 경우 무조건 큰 병원이나 응급실에 가기보다는 ‘중증도’를 판단해 의료기관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중증 응급 환자는 권역·거점지역센터에서 우선 수용하고 경증·비응급 환자는 중소병원 응급실이나 가까운 당직 병·의원에서 치료해 응급실 쏠림 현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증·비응급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진료비 본인 부담률을 50~60%에서 90%로 인상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이들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하면 기존보다 9만원가량 비싼 평균 22만원을 부담하게 된다.

실제로 명절 연휴엔 경증 환자 중심으로 응급실 방문이 잦아진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에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찾은 환자는 평상시 평일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 환자 중 상당수는 손상·염좌·감기 같은 경증 질환자였다. 각 지자체도 분주해졌다. 지자체장 책임하에 ‘비상의료 관리상황반’이 운영되면서 지역별 응급의료체계를 챙기게 된다. 서울시는 추석 연휴 의료기관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16~18일 문을 여는 병·의원과 약국에는 하루 최대 1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현장에서도 많은 의료진이 묵묵히 환자를 챙기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인 우리아이들병원은 추석 연휴에도 진료를 계속한다. 예전 명절에도 문을 열었지만 이번엔 의료공백 상황을 고려해 진료실 운영을 더 늘리기로 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밤·휴일·명절 없이 일하다 보니 체력적 한계가 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늘 그랬듯 이번 명절에도 응급실을 지킬 거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못 살리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도 힘들어지는 모습이다.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전의교협 등 8개 의료계 단체는 이날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는 내용의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진정 대화를 원한다면 전공의 사직 관련 수사를 중단하고 2025년도 증원을 무리하게 강행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한편, 13일 오후 서울지역 119 신고 접수에 한때 장애가 발생해 시민 불편이 가중됐다. 서울시는 이날 안전 안내 문자를 통해 “금일 오후 8시30분께부터 서울 지역 119 신고 접수에 장애로 화재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112로 신고 바란다”고 밝혔다. 장애 문제는 약 45분가량 이어지다 오후 9시15분께 복구됐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측은 “현재는 복구가 완료돼 119 신고가 가능하다. 시스템상 오류로 보이는데 정확한 원인은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정종훈·남수현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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