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살에 백일상 받은 엄마, 명주실 손에 쥐고 ‘활짝’

한겨레 2024. 2.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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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소소의 간병일기
엄마의 퇴원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조혈모세포 이식 5주 만에 귀가
신생아 수준 면역…집안 소독 비상
3개월 고비 잘 넘기고 100일잔치
“사랑하는 엄마 오래오래 함께해”

“오랜만에 바깥바람 쐬니 좋네.”

엄마가 마스크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엄마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마친 뒤 폐쇄병동에서 5주 만에 퇴원했다. 무균실에서 약 3주 동안 영양음료만 먹고 버틴 탓에 얼굴 살마저 쪽 빠져 마스크가 바람에 펄럭였다. 자식 넷을 낳고 처져 있던 뱃살은 홀쭉해졌고, 도톰했던 팔뚝과 허벅지도 근육 소실로 얄팍해졌다.

“오, 엄청 날씬해졌는데? 아주 더 예뻐졌어.”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며 마스크와 두건으로 가려져 눈만 보이는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엄마는 그저 집으로 간다는 게 좋은 것 같았다.

한국혈액암협회의 ‘방역 서비스’

퇴원 전 병원에선 엄마의 식사와 면역 관리를 신신당부했다. 조혈모세포 이식 환자들은 면역력이 신생아 수준으로 낮기 때문이란다. 특히 감기나 폐렴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만명씩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던 때라 우리는 초긴장 상태였다. 엄마를 만날 땐 집이든 밖에서든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람이 한적한 숲길을 걸을 정도나 돼야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엄마는 잠시나마 콧바람을 쐤다.

엄마가 퇴원하기 전, 집 안 곳곳의 청결을 위해 청소서비스를 신청했다. 암 환자가 퇴원 뒤 돌아오는 집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청소업체에 당부했다. 또 한국혈액암협회에서 지원하고 있는 ‘집안 소독·방역 서비스’도 받았다. 협회는 매달 두차례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은 혈액암 환자의 집을 소독하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협회 사이트에서 매달 20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신청서엔 수술을 받는 병원과 퇴원 예정일 등을 적는다. 혈액암에 대해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돼 문의했는데, 다행히 그달에 신청한 환자가 한명뿐이라기에 바로 신청했다. 협회는 소독·방역 외에도 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헌혈증, 가발, 보디케어 제품 등을 지원한다. 환자 대부분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엄마와 한 병실을 썼던 환자 중 이런 내용을 알고 있던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병원 상담 과정에서 이걸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았다.

혈액암에 대한 이해가 높은 협회가 서비스를 지원하다 보니, 환자 컨디션에 따라 퇴원 예정일이 달라지는 상황도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퇴원 예정일은 두세차례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협회는 소독 일정을 변경해줬다. 덕분에 협회와 연계된 전문 방역업체를 통해 엄마 퇴원일 3일 전 집 안 전체를 소독할 수 있었다. 엄마가 퇴원하는 날, 다시 한번 집 안을 환기하고, 현관문 손잡이, 엘리베이터 버튼 등 손이 닿을 만한 곳을 소독제로 닦았다.

집에 온 엄마는 그동안 걷지 못한 것에 한이라도 생긴 듯 산책했다. 덕분에 근처에 사는 여동생은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뒤 엄마 집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저녁 시간은 내 담당이었기 때문에, 나는 퇴근하면 곧장 엄마 집으로 향했다.

먹는 게 가장 골치였다. 감염 우려 탓에 대부분의 음식엔 ‘금지’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회 같은 날것뿐 아니라 생채소도 먹어선 안 되고, 김치도 볶아서 먹어야 했다. 과일은 껍질을 깎거나 벗겨내고 먹을 수 있는 것만 가능했다. 달걀은 냉장 보관된 것만 먹고, 미리 조리한 상태로 파는 음식은 삼가야 했다. “병원에서 하는 말은 무조건 들어야지”라고 하면서도, 엄마는 동치미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엄마는 아픈 뒤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면, 되레 “엄마 뭐 먹지?”라고 나한테 되물었다. “엄마가 먹고 싶은 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면박을 주면, 엄마는 “그건 그렇지”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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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떡에 체하자 엄마가 바늘을…

그러던 엄마가 처음으로 수제비가 먹고 싶다고 했다. ‘가게에서 파는 음식보다는 정성을 담아 직접 만드는 게 좋지’라며 야심 차게 “내가 만들어볼게”라고 말했다. 처음이었다. 수제비 반죽을 해본 건. 결혼 전엔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지냈던 터라, 요리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밀가루에 물을 섞고 반죽을 치댔다.

멸치육수 팩으로 육수를 우리고 국간장으로 간을 했다. 수제비 반죽을 얇게 떼서 넣고, 애호박도 잘라 고명으로 올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국물 색이 뽀얗지 않고 노르스름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싱겁게 먹어야 한다며 간도 약하게 했더니 나조차도 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김치를 올려 먹으니 싱거운 간이 적당히 상쇄됐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몇 숟갈 뜨다가 얼마 뒤 숟가락을 내려놨다.

“엄마, 별로야? 난 괜찮은데.” 스스로도 민망해 자꾸만 웃음이 터졌다.

“아냐. 맛있어. 배불러서 그래.” 뻔한 거짓말이었다.

엄마 반응과 무관하게 처음 만든 수제비가 기특해 가족 단체대화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동생들이 “색깔부터가…” “엄마는 억지로 먹는 것 같다ㅋㅋㅋㅋㅋ”며 비웃었다. 나쁜 것들.

엄마의 민머리가 낯설 법도 한데, 다행히 조카들 누구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특히 22개월짜리 조카가 편견 없이 엄마한테 가서 곧장 안기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고마웠다. 조카는 엄마가 “○○아, 할머니 우유 좀 갖다주세요”라고 말하면 냉장고에서 엄마가 먹는 영양음료를 꺼내 가져왔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지 100일째, 다행히 엄마는 골수 이식 뒤 가장 고비라는 3개월을 잘 넘겼다. 거부반응도 없었고, 코로나19에도 걸리지 않았다. 골수 이식한 환자 100명 중 3~4명은 사망한다는 의사 말은 다행히도 엄마를 비켜갔다. 골수 이식 검사 결과도 좋았다. 양쪽 엉덩이 골수에선 골수종세포(종양화한 형질세포)가 0%라고 나왔다.

엄마가 다시 태어난 걸 기념해 백일잔치를 벌였다. 떡집에서 한자로 ‘百’(백)이 쓰인 떡도 맞추고, 영아용 백일상도 빌렸다. 인조 케이크에 “68살에 100일이라니” “사랑하는 엄마 오래오래 함께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퍼를 꽂았다. 가족사진을 액자에 담아 테이블 위에 놓고, 벽에는 “해피 100 데이”라는 문구가 쓰인 펼침막이 걸렸다. 백일상을 빌릴 때 유아용 한복을 무료로 빌려주길래 유아 한복을 엄마 어깨에 걸치기라도 할까 싶었지만 너무 우스꽝스러운 것 같아 관뒀다.

“백일 축하합니다. 백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백일 축하합니다.”

백일 떡을 급하게 집어 먹은 탓인지 체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그랬듯이 엄마에게 양 엄지손가락을 맡겼다. 항암 때문에 민머리에 두건을 써놓고도 엄마는 바늘에 머리 기름을 묻히는 시늉을 했다. “머리카락도 없으면서 무슨 소용이냐”는 농에 가족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이젠 이런 농담이 허용될 정도가 됐다.

아이가 건강히 오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가 백일상에 올렸을 명주실을 딸들이 주자, 엄마는 부끄러운 듯 명주실을 손에 쥐었다. 68살에 100일을 맞은, 엄마의 새날이었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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