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벌어도 줄인다"…게임업계 덮친 '생존형 구조조정'

김채린 기자 2026. 5. 1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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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 인력 1년 새 35% 감소·크래프톤 200명 희망퇴직·넥슨 채용 중단
엑스엘게임즈도 희망퇴직 검토…코로나19 후 비대해진 인건비 구조 부담
생성형 AI 도입에 종사자 77.3% 고용불안…신규 채용도 2년 새 42% 감소
판교 엔씨 사옥. [출처= 엔씨]

게임업계의 구조조정 흐름이 대형사에서 중견 개발사까지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공격적으로 늘렸던 인력과 개발비가 시장 성장 둔화, 인건비 부담, 신작 흥행 불확실성,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과 맞물리며 빠르게 재조정되는 모습이다.

일부 기업은 실적 개선에 성공했지만, 그 이면에는 희망퇴직과 채용 중단, 연구개발(R&D) 비용 축소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2024년부터 대규모 희망퇴직과 개발 조직 분사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그해 4886명에 달했던 인력은 지난해 말 3170명 수준으로 줄었다. 1년 새 1700명 이상, 비율로는 35.1%가량 감소한 셈이다. 크래프톤도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약 200명 규모의 자발적 퇴사를 받았고, 넥슨은 신규 채용을 중단한 채 기존 인력 재배치에 나서는 등 사실상 간접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위메이드 역시 전사적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엑스엘게임즈가 개발 중인 신작 '아키에이지 크로니클' 대표 이미지.ⓒ카카오게임즈

구조조정의 파장은 중견 개발사로도 번지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자회사이자 '아키에이지' 시리즈 개발사인 엑스엘게임즈는 최근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 과정에서 희망퇴직 실시를 제안했다. 구체적인 규모와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조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며 단체협약은 결렬됐다. 엑스엘게임즈는 지난해 매출 311억원, 영업손실 242억원, 순손실 25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폭이 확대됐다. 

엑스엘게임즈의 사례는 중견 게임사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3년 샌드박스 MMORPG '아키에이지'로 주목받았고, 이후 '달빛조각사', '아키에이지 워' 등을 선보였지만 2020년대 들어 경쟁작 증가와 이용자 이탈이 겹치며 실적이 악화했다. 원작 '아키에이지'는 지난해 서비스를 종료했고, 지난 3월 얼리액세스로 출시한 익스트랙션 장르 신작 '더 큐브, 세이브 어스'도 저조한 반응 끝에 두 달 만에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 현재는 차기작 '아키에이지 크로니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상황이다. 
넷마블 사옥. [출처= 넷마블]

눈에 띄는 점은 구조조정이 단순한 인력 감축에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R&D)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엔씨소프트의 R&D 비용은 2024년 4218억원에서 지난해 3251억원으로 22.9% 감소했다. 넷마블은 6347억원에서 6164억원, 펄어비스는 1328억원에서 1286억원, 카카오게임즈는 262억원에서 255억원으로 줄었다. 신작 개발과 기술 고도화가 핵심 경쟁력인 게임업계에서 R&D 감소는 단기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되지만, 중장기 성장 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임업계에서는 최근의 실적 개선을 두고도 조심스러운 평가가 많다. 일부 게임사들은 지난해 영업이익을 개선했지만, 이는 매출 성장보다는 인건비와 마케팅비, 개발비를 줄인 결과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실적 개선은 비용을 줄여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며 "투자를 줄이는 구조가 이어지면 중장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배경에는 '고비용·저성장' 구조가 있다. 국내 게임산업은 코로나19 시기 이용자 증가와 비대면 수요 확대에 맞춰 인력을 빠르게 늘렸다. 개발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억대 연봉도 일반화됐다. 크래프톤의 1인당 평균 보수는 2024년 1억900만원에서 2025년 1억2900만원으로 올랐고, 펄어비스도 9848만원에서 1억3405만원으로 뛰었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역시 평균 보수가 증가했다. 

반면 국내 게임시장의 성장성은 둔화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게임산업 매출은 23조8515억원으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다만 성장분 상당 부분은 해외 수출 증가에 기댄 측면이 크고, 내수는 이미 포화 상태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청소년 인구 감소와 숏폼·동영상 플랫폼으로의 이용 시간 분산도 게임 이용자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게임사들은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고 있다. 넥슨은 신규 채용을 멈추고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사업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카카오게임즈도 핵심 IP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맞춘 체질 개선을 진행 중이다. NHN도 비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경영 효율화를 진행하며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또 다른 변수는 생성형 AI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획, 아트, 프로그래밍, QA 등 제작 공정 전반의 인력 수요가 재편되고 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IT위원회가 게임업계 종사자 1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7.3%가 생성형 AI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을 체감한다고 답했다. 

고용 통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국내 주요 게임사 6곳의 2024년 합산 신규 채용 인원은 1362명으로, 2022년 2339명 대비 약 42% 줄었다. AI 기반 업무 효율화가 확산되면서 신입·주니어 채용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도 비슷하다. GDC 조사에서는 최근 1년간 글로벌 게임업계에서 약 2만400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개발자 11%가 해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모든 게임사가 동시에 투자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크래프톤은 해외 매출 비중이 90% 이상인 '배틀그라운드'의 글로벌 성과를 기반으로 R&D 투자비를 늘린 대표 사례다.

지난해 R&D 투자비는 6122억원으로 전년 4247억원보다 늘었다. AI와 로봇 소프트웨어 등 신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넷마블은 코웨이를 통한 구독형 사업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며 게임 외 수익 기반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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