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el터뷰!) 영화 '거미집'의 송강호를 만나다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된다, 딱 이틀이면 돼!
<거미집>은 1970년대 예술도 검열당하던 시절,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바꿔야 된다고 믿는 감독 김열(송강호)이 바뀐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진을 설득해 마른행주 짜듯 예술혼을 불태우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극 중 송강호는 성공적인 데뷔 이후 악평과 조롱에 시달렸던 과거를 털고 일생의 걸작을 만들고 싶어 하는 감독 김열을 맡았다.
지난 18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송강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지운 감독과는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 <거미집>(2023) 총 5편을 함께 했다. <거미집>은 명실상부 두 거장이 만난 영화이자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는 독특한 구조다.

-한국 영화의 침체기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한국영화 사정이 힘겹습니다. 명절을 맞아<거미집> 개봉을 앞둔 소감이 어떠신지요.
“새로운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소통하는 기대가 일단 큽니다. 다들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의견이 공통적일 테지만. 특히 <거미집>은 영화관을 찾아야 할 이유, 영화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자, ‘이런 게 영화지’라며 영화 한다는 희열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많은 배우가 감독을 꿈꿉니다. <거미집>에서 감독 역할을 맡으셨잖아요. 직접 해보니까 어떠셨는지, 혹시 연출 욕심은 없으신지.
“전혀 없습니다. 연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 훌륭한 감독에게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 감독은 재능과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전 배우 하나만도 벅차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평소 감독 역할을 열망했기에 좋기는 했죠. 30년 가까이 카메라 앞에서 서다가 뒤에서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배우는 고생하는데 감독은 편해 보여서 은근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웃음) 이번에 감독 자리가 쉬운 게 아님을 절절히 느꼈죠.”

-감독을 연기하다 보니 배우로서 느끼는 지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열은 특정 인물이 아닙니다. 여러 감독의 갈등과 고통이 녹아있는 캐릭터입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고통에 휩싸인 인물입니다. 그밖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괴감이나 모멸감 같은 보편적인 문제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거미집>한줄평을 ‘인간 욕망을 다룬 지독한 우화다’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정의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열 개인의 욕망 때문이죠. 꿈에서 결말을 바꾸면 걸작을 만들 거란 작은 욕망부터 시작해요. 이 때문에 갈등하고 배우, 제작자 등을 설득해야 하죠.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각자의 욕망과 마찰이 일어나요. 사랑 이야기, 제작비 조달, 사회적 검열 등 욕망이 뒤엉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 짓궂은 질문인데요. <거미집>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국제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휩쓸고 다닌 것도 연장선인가요.
“새로운 시도였죠. 한 발자국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영화든 드라마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작품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제 욕망이 수상은 아니고요. (웃음) 앞으로 조금이라도 전진하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결과를 떠나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게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욕망입니다.”

-김지운 감독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벌써 5편의 영화를 함께 하셨어요.
“감독님들이 저를 활용하는 지점이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김지운 감독은 25년 전 제 연극을 보고 ‘께름칙하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머릿속에 그린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께름칙하다는 것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석연치 않은 지점을 말하는 거 같았어요. 이게 바로 관계의 시발점이죠. 함께 작품 하면서 느낀점은 김지운 감독은 께름칙함을 기대하고, 저는 더 께름칙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의 연속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거장 두 분이 한 영화에서 만났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지, 김지운 감독님이 디렉션을 주는 편인지, 이를 따르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김지운 감독은 평소 말 없는 타입인데 틀린 방향일 경우는 집요하게 말해줍니다. <거미집> 초반에 제가 어떤 수준으로 리얼리즘을 만들어야 하나 감을 잡지 못해서 방향성을 짚어 주었어요. 그것 말고는 거의 지켜보는 스타일입니다.”

-언론시사회에서 과거 김지운 감독은 현장에서 혹독했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거미집>에서는 예전의 혹독함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모든 감독이 열정적이고 집요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특별히 그 지점이 강합니다. 아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혹독한 촬영의 마지막 작품일 것 같습니다. 이후 영화 생태계가 많이 바뀌어서 오명 같은 특징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네요.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집요함이 남아 있어요. 요즘 현장에서 감독은 철저하게 준비된 콘티가 있고, 배우는 베스트 버전을 준비해서 계획하에 만나는 게 일반적입니다.”
-<거미집>에는 여러 배우의 앙상블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그중 정수정 배우의 <애비규환>까지 챙겨보셨다는 말이 있던데요.
“정수정 배우는 가수 출신이지만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습니다. 작은 실험 영화나 독립영화부터 닥치는 대로 차근차근 과정을 밟은 친구더라고요. <애비규환>은 우연히 보게 된 건데 어리지만 연기를 처음부터 배우려는 자세나 과정이 기특했지요. <거미집>때도 여러 선배 틈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열이란 감독은 아내가 있다는 것 말고는 전사가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의 톤 설정법을 조심스럽게 여쭈어보고자 합니다.
“1:1 대본 리딩 때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감은 잡았지만 사실 난감하고 어려웠어요. 캐릭터를 100% 다 준비해 갈 수는 없었죠. 미리 계산과 분석을 준비해 가고, 그 순간의 공기와 호흡, 상대방과의 리듬감 등이 형성되면서 절반은 현장에서 얻어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배우라면 송강호가 떠오릅니다. 많은 감독, 배우와 작업하셨는데 본인 출연작은 잘 보시는 편인가요?
“시사회 때 말고는 잘 안 봅니다. 예전에 <설국열차> 때 크리스 에반스가 부끄럽다면서 시사회도 안 보고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이해가 잘 안 갔는데 지금은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요. 명절이나 휴일에 TV 돌리다가 우연히 절 만나면 못한 것만 보여서 돌려 버려요. (웃음)”
-작품은 재관람 안 하셔도 반응은 챙겨 보시나요. <거미집>처럼 안 좋은 평을 만나면...
“신경 안 쓴다면 거짓말이죠. 결과를 떠나서 고생하면서 만든 시간을 어떻게 평가받나 궁금해 합니다. 아직까지 영화가 아쉽다는 전반적인 평은 봤어도, 마음이 아플 정도로 혹평을 본 적은 없습니다. (웃음)”

-칸 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이며 12분 동안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칸은 전반적으로 박수가 길게 나오기도 하지만 유난히 <거미집> 끝나고 긴 박수가 나왔습니다. <거미집>이 칸을 만족시켰던 건 어떤 매력이었을까요?
“영화 중간에 박수도 나오고 폭소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칸은 한국보다 덜 웃어 줍니다. 비경쟁 부분이더라도 눈 크게 뜨고 ‘어디 한 번 해봐’ 보는 관점이 있거든요. 그리고 아무리 번역이 잘 되어 있더라도 한국적 뉘앙스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거미집>이 말이 빠르고 많아서 자막 읽기도 바쁠 텐데 박수도 길게 나오고 즐거워하더라고요. 이와 같은 영화가 처음 시도되는 건 아닌데도 높게 평가해 준 것 같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써 28회를 맞았습니다. 개막식 호스트를 맡아 부산에서 뵙겠네요.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기억나는 추억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영화로 데뷔한 지 28년 정도 되거든요. 1회인가 2회부터 참가하기 시작했고 초반에 한번, 20주년에 한 번. 사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비상 체제고 <거미집> 야외 토크도 있어서 이틀 정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도움이나마 될까 싶은데요. 영화제도 28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해 세계 중심의 영화제가 되었다고 봐요.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쇄신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했던 영화제라 남다른 애정이 있습니다. 제가 뭐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비온 뒤 땅이 굳듯이 영화제 잡음을 조속히 잡고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할 수 있길 바랍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그렇고 한국 영화도 르네상스를 지나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 르네상스를 꿈꾸는 한국의 영화 변화 혹은 위기,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거미집> 같은 영화가 더 있어야 하죠. 새로운 소재, 형식, 연기 톤, 에너지, 앙상블 등이 다 들어가 있어요. 폰으로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영화만이 가진 무기, 영화관에서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게을리하지 말고 도전하고 실패해야만 합니다. 한국 영화만의 다양성과 매력이 쌓여 가면 제2, 제3의 르네상스를 맞지 않을까 싶고 관객은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미집>을 선택할 예비 관객에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포인트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김열이 영화를 만들고 묘한 표정을 보이는데 그게 <거미집>의 포인트입니다. 김열은 비애 뒤에 숨어 있는 얼굴을 관찰하게 합니다. 거대한 욕망의 카르텔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군상. 끝난 것 같아 보여도 욕망은 끝없으니까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거죠. 대표적인 장면이 강호세(오정세)랑 도망가다가 숨어 있는 지점이거든요. 그때 김열의 순수한 욕망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창하고 복잡해 보여도 단순한 게 또 욕망임을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이게 영화지’ 싶은 마음,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를 기다렸다면 추천합니다. 명절을 맞아 다양한 작품이 준비되어 있으니 극장에서 모든 분이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되길, 그게 <거미집>이길 바랍니다.
글: 장혜령 사진: 바른손이엔에이
- 감독
- 김지운
- 출연
-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크리스탈, 장영남, 박정수, 차서현
- 평점
-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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