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햇볕 뜨거운 날

7월부터 월요일마다 '웰다잉'을 주제로 그림책 수업을 하고 있다. '그림책 웰다잉 교육지도사'로 활동하시는 임경희 선생님이 서울에서 합천까지 먼 길을 오신다. 죽음에 대한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이 이렇게 재미있고, 심오한 것이었구나' 하는 걸 느끼고 있다. 임경희 선생님은 그림책은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누군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림을 직접 그려보기도 해야 그림책이 가진 힘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남 순천에 그림책 견학을 갔을 때, 마을회관에서 어르신에게 그림책을 읽어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림책 이야기로 만든 연극도 하고, 그림책에서 나온 질문으로 이야기도 나누었다. 말랑한 그림책으로 이야기하니, 수줍음 많던 할머니도, 딱딱한 할아버지도 모두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렸다.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도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첫 실습 장소를 옆 마을 하목마을회관으로 정했다. 하목마을 옛 이름은 '나무실 마을'이다. 어르신들은 지금도 여전히 나무실 마을이라 부른다. 나무실 할머니들을 십 년 넘게 만났지만, 마을회관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나무실 마을 청년들(청년회 회장이 60대이지만)부터 옆 마을 젊은이들까지. 열 시에 딱 맞춰서, 하동아지매, 우동아지매, 복암아지매가 들어오셨다. 할아버지들은 담배 피우고 오느라 조금 늦게 오셨다. '갑자기 웬 그림책이야' 하고 생각하시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아이처럼 깔깔깔 웃으며 재미있게 들어주셨다. 상상스쿨에서 출간된 <하지만 할머니>를 읽었다. 뭘 하든지 '난 나이가 많아서 못 해'라고 하던 할머니가, 우연한 계기로 용기를 얻게 되고, 지금껏 못해본 일들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림책을 다 읽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내가 젊을 때로 돌아가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수아재는 변호사 공부를,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복암 어르신은 벌건 얼굴로 막걸리 공장을 차리고 싶다고 하셨다.

마을에서 가장 흥이 넘치는 우동할머니는 춤꾼이 되고 싶다고 하실까,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실까, 궁금했다. 우동할머니는 젊을 때로 돌아가면, 공부를 가장 하고 싶다고 하셨다.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컸다고 눈물을 훔치시기도 했다. 오늘 만남의 물꼬가 트였으니, 앞으로 자주 모여 글공부도 하고, 같이 시집 한 권 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이 나이 먹고 무슨" 하시던 우동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이 낸 시집을 읽어보시더니, "나도 내 이름은 쓸 줄 안다" 하면서 이름을 여섯 개나 쓰셨다. 또박또박 쓰인 이름을 보니 왠지 코가 찡해졌다.

모임을 끝내기 전에, 신나는 노래를 틀고 같이 춤을 췄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우동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위로 아래로, 옆으로 흔들면서 들썩들썩 춤을 췄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림책은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같이 춤췄던 게 가장 재밌으셨다고 한다. 다음에는 좀 더 흥겨운 내용이 담긴 그림책을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박 한쪽 먹고 가라는 할머니들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선생님이 오실 시간이었다. 좀 더 일찍, 자주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안한 마음에 "다음에 또 봬요" 하고는 슬쩍 회관을 나왔다. 햇볕 뜨거운 날이었다.

/김수연 청년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