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치 200만 원.. 역사 기록상 없어서 못 먹었다는 음식

18세기까지 보통 상차림은 밥과 탕이 음식상의 기본이었습니다.

왕의 경우는 밥과 탕(국물)을 기본으로 해서 침채(배추나 무, 오이를 소금에 절여서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젓갈 따위의 양념을 넣고 버무려서 담가 놓고 먹는 반찬), 구이, 자반(생선을 소금에 절인 음식), 조치(바특하게 만든 찌개나 찜) 등으로 화려한 편이었죠.

궁중에서의 일상식은 이른 아침의 초조반과 조반(아침), 석반(저녁), 점심 때 차리는 낮것상과 밤중에 내는 야참(야식)까지 모두 다섯 번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왕은 주로 보약이나 미음 또는 죽. 오전 10시께 아침수라를, 오후 5시께 저녁 수라. 낮것상이란 점심과 저녁 사이의 간단한 상이었고, 야참에는 약식과 식혜, 우유죽 등. 수라상은 왕과 왕비의 건강을 최대로 고려한 건강식이었죠. 기본상인 12첩 반상은 두 가지 밥과 두 가지 탕, 찌개, 찜, 전골, 김치, 장 등 12가지 반찬이 올라간 밥상이었고, 대개 두 가지 수라는 흰밥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 두 가지 탕은 미역국과 곰탕이었습니다.

양반의 상차림은 보통 4첩(침채, 찬, 탕,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중인들도 비슷했습니다.
다만, 상민은 양반과 많은 차이가 있었어요. 상민의 주식은 양반과 마찬가지로 '밥'이었지만 양반이 주로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면 상민은 보리나 다른 잡곡을 섞어 밥을 지어 먹는 형태였습니다.

보리나 잡곡이 쌀에 비하여 저렴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음식은 채소. 봄부터 가을까지 자연 곳곳에서 자라는 나물을 캐고, 열매를 따서 반찬을 만들어 먹는 형태였고, 자신의 집 안이나 근처에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무 등을 직접 길러 먹기도 했습니다.

반찬은 된장이나 간장에 국과 김치, 나물 한 종류 등으로 매우 소박했습니다. 생선의 경우 해안가 지방에서는 음식의 재료로 흔히 쓰였지만, 보관법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결코 아니었죠. 소금에 절여 쉽게 상하지 않도록 했으며 절인 생선을 쪄서 먹는 경우는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귀한 음식이었죠. 소고기나 돼지고기 역시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던 상민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꿩이나 토끼 등을 잡아먹었고, 대부분은 개를 길러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상민들이 1일 3식을 하게 된 시기는 조선 후기 이후입니다. 이전에는 하루 두끼를 먹었다고 해요.
이에 반해 양반들은 하루 다섯 끼 식사까지 먹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양반들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찾고 즐겼다고 합니다.
돈 좀 있는 양반들은 설야멱적이라고 “눈 설, 밤 야, 즐겨 찾을 멱”, 그러니까 눈이 오는 밤에 즐겨 찾는 고기구이를 자주 즐겼습니다.

‘소고기를 저며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 다음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기름과 소금을 발라 충분히 스며들면 뭉근한 불에 구워 눈 녹인 물에 담근다. 다시 굽기를 세 차례 하고 참기름을 발라 숯불에 다시 구우면 아주 연하고 맛이 좋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때 가장 비싸고 귀했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기록상 가장 비싼 잔칫상의 음식은 약과로 전해집니다.

임금에 바치던 잔칫상에 올라간 당시 약과 비용이 30냥(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10만 원)정도 였다고 합니다. 약과의 경우 꿀을 발라 기름에 튀겨야 하는데 당시 기름이 귀했기 때문에 비쌌던 것으로 추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