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속터미널 천장 위 숨겨진 공간 드러나자 선진국에서 줄지어 방문한 이유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건설 기업들이 도면만 보고 "이걸 만들라고?"라며 기겁하고 도망가게 만든 난이도 극악의 공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한 한국 기업이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성공시켜 버렸는데요. 그들의 공사법이 얼마나 신기했으면 세계 전문가들이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직접 한국으로 날아와 확인할 정도였습니다. 이 한국 기업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서울 한복판에 숨겨둔 '15cm의 기적' 알아보겠습니다.

하루 평균 승하차객만 19만 명, 센트럴 시티, 고투몰, 엔터식스 등 빵빵한 상권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일대에 100만 명 가량의 유동인구가 지나다니고 있는 이곳, 바로 '고속버스터미널역'입니다. 고속버스터미널역은 버스를 타고 서울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이용하는 곳이고, 3, 7, 9호선이 겹치는 트리플 역세권이죠. 그리고 내리자마자 상권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동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겠죠. 특히 급행열차가 운영되고 있는 9호선은 출퇴근 시간을 두렵게 만들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 '지옥철'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9호선은 지어지기 전부터 지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는 9호선 바로 위에 3호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하철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는 두 노선의 사이는 얼마나 두꺼울지 궁금한데요. 일단 지하철 차량 중량만 해도 143.8톤입니다. 여기에 승객들의 무게까지 더하면 어마어마하겠죠. 이 정도 무게를 버티려면 최소 2~4m는 돼야 할 것 같은데, 황당하게도 두 노선 사이의 단면 두께는 단 15cm라고 합니다. 지금 15cm 자를 들고 지하철 3호선과 9호선이 사람을 한가득 싣고 운행되고 있는 것이죠.

지난해 경기도 아파트에서 2m가 넘는 대형 수조를 설치했다가 2년 만에 터졌다는 뉴스가 나왔었습니다. 당시 터진 수조의 무게는 대략 3톤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아파트의 층간 두께는 21cm였습니다. 21cm 두께의 바닥도 3톤을 견디지 못해 몇 년 만에 바닥 꺼짐 현상이 일어났는데, 겨우 15cm밖에 되지 않는 3호선 과 9호선 사이는 어떻게 지금까지 10여 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평화롭게 운행되고 있는 걸까요?

15cm의 기적이 시작된 것은 2001년입니다. 서울시가 미루고 미루다 9호선 공사를 본격화했습니다. 9호선 노선망은 1994년 일찍이 계획되었지만, 한국에 IMF 등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미뤄지게 되었던 것인데요. 9호선은 시민과 사회 편의를 위에 반드시 필요한 노선이었습니다. 지하철 서비스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인데요. 9호선 전체 구간은 총 38km, 3구간으로 나누어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2001년 하반기 제1구간 김포공항에서 논현동까지 25.5km 착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1구간에는 9호선이 지어지기도 전에 지옥이라는 별명을 선물한 원흉이 있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세화여고에서 강남고속터미널 사이 겨우 1.78km 구간의 난이도는 그냥 지옥도 아니고,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고통을 받게 된다는 무간 지옥급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독한 공사였는지 전체 공사 구간의 7%도 되지 않는데, 전체 사업비 1,800억 중 47%인 846억이 투입되었습니다. 처음 9호선 사업의 입찰이 시작되었을 때 사업비를 보고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왔지만 주변 환경에 흠칫, 마의 구간을 보는 순간에는 기겁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서울특별시의 모든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몰려드는 고속버스터미널 일대는 이미 소문난 헬게이트였죠. 호텔과 백화점 등 대형 건물까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지상과 지하 1, 2층에는 하루 수십만 명이 이용 중인 노후된 지하상가, 지하 3층에는 25년 전부터 운행 중인 3호선이 있었습니다. 흠칫할 만한 환경이었죠. 통제가 어려운 번화가 한복판에서는 도로 보수만 해도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는데, 지하철 같은 대형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니 딱 봐도 답이 안 나왔습니다.

결정적으로 건설사들이 도망간 원흉은 3호선이 지나다니는 바닥 15cm 아래에 9호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그 이상 파고 들어가면 설계가 안된다고 단호하게 나오는 바람에 무조건 3호선의 15cm 아래 지어야 했습니다. 이런 공사를 진행할 사람이 있겠나 싶었는데, 이 미친 공사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한 기업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쌍용건설'이었는데요.

이 말도 안되는 공사의 결말, 이미 우리는 알고 있죠? 지금 9호선은 지옥철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쌍용건설은 무간 지옥급 난이도 공사를 2009년, 9호선 2구간이 개통될 때까지 주변 시설과 3호선 운행을 통제하거나 중단하지 않고, 또 어떠한 안전사고도 없이 완벽하게 성공해냈다고 합니다. 쌍용에서는 무슨 수를 썼길래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쌍용은 당시 세계 어떤 건설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로 TRCM공법과 CAM공법을 병행한 것인데요. 본격적으로 공사를 준비하다 보니 이 공사는 생각보다 더 난공사였습니다. 지반마저 최악이었기 때문인데요. 토지검사 결과 이곳은 충적층이었습니다. 충적측이란 건 굳지 않는 퇴적층을 말하는데요. 즉, 연약지반이라는 것입니다. 싱크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충적층'이었죠. 이런 곳에 지하철이 이미 다니고 있는데, 이 밑에다가 또 지하철을 지으라니... 진짜 답이 안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도 쌍용건설은 이미 하기로 한 것이니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 짜냈습니다. 해외 사례까지 뒤지고 뒤지던 중 이탈리아 밀라노의 베네치아 지하철 정거장 건설에 사용된 CAM공법에 주목했습니다. 지금처럼 얇은 지반에 대단면 구조물을 만드는 CAM공법은 최적의 방법이었죠.

하지만 딱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한 면이 개방되어야만 공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래서 쌍용건설은 세계 최초로 TRCM공법과 CAM공법을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TRCM공법은 지하의 도로를 횡단하는 터널 형태의 구조물을 만든 뒤, 그 아래 CAM공법을 적용시켜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작업들을 반복해서 대단면 터널 형태의 정거장을 만들 계획이었는데요.

다행히 마의 구간을 풀어나갈 해결책을 짜냈지만, 번화가 한복판에서 공사를 벌일 수 없었던 쌍용건설... 그래서 그들은 뒤를 공략했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좁은 구멍을 파 인도와 도로를 최소한으로 통제했습니다. TRCM 공법으로 1차 보강공사를 진행해 위에서 누르는 하중을 지탱했습니다. 연속 벽을 세워 단단한 천장을 만든 후 하부 공사를 진행해 파놓은 구멍에 직경 2.5m의 철관을 밀어 넣고, 그 사이에 직경 2.5m의 관들을 채워넣었습니다. 그리고 관 안에 있는 흙을 파내고 빈 공간을 콘크리트로 채워 강도를 높였는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물 밑으로 내부 굴착과 슬래브 설치로 공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막대한 하중을 버티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쌍용건설은 2차 보강 공사도 진행했습니다. 만들어진 공간 사이에 직경 2m 관으로 아치형 구조물을 일정 간격으로 만들어 연결했는데요. 이렇게 하게 되면 1차와 2차 시공관이 십자가 형태가 되며 엄청난 하중을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도면 속에만 있던 15cm의 기적을 현실에서 재현해낸 것입니다.

우리는 쌍용건설이 만든 기적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9호선을 이용할 때마다 보고 있는데요. 바로 9호선을 타러 갈 때 보이는 대합실 천장을 볼 때마다 노출형 천장이 멋지다고만 생각했는데, 여기에 이런 멋진 탄생 비화가 있었는지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쌍용건설이 만든 15cm 기적 소식이 널리 알려지더니, 세계적인 기업들도 이게 가능한 공사였다는 사실에 놀라며 미국, 일본, 유럽을 비롯한 각국의 터널 전문가들이 공사 진행 과정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기적적인 공사를 성공한 쌍용건설에는 돈도 돈이지만, 많은 명예가 주어졌습니다. 2009년 토목학회에서 주관한 '올해의 토목 구조물'에서 대상을 수상, 전 세계적으로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토목학회에서 1년에 단 한 번 수여되는 '부루넬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영국 토목학회는 쌍용건설이 두 가지 공법을 한 번에 적용했다는 것에서도 놀랐지만, 쌍용건설의 건설 능력을 더 높게 샀던 이유는 600여 개의 지하상가 영업을 통제하지 않고 3호선 운영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완벽하게 대형터미널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것에서였습니다.

15cm의 기적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세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 쌍용건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멋진 기술을 더 이상 발휘하지 않는 것 같아 좀 슬퍼지는데요. 부디 쌍용건설이 15cm의 기적을 만들었던 그때의 열정을 떠올리며 더 안전하고 큰 건물을 짓기 위해 노력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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