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단백질 구조 예측 넘어 '새 단백질' 설계까지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24. 10.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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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마인드 최고경영자, 존 M. 점퍼 구글마인드 수석연구원. 위키미디어 제공

올해의 노벨 화학상은 컴퓨터를 이용해 단백질 구조를 연구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노벨 화학상의 절반은 컴퓨터를 활용한 단백질 설계 연구를 개척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에게, 나머지 절반은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AI) 알파폴드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와 존 점퍼 연구원에게 수여됐다. 

● 노벨위원회가 ‘단백질 구조 연구’ 선호하는 이유

노벨 화학상을 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백질 구조 연구와 노벨상은 깊은 연관이 있다. X선 결정법을 이용해 최초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한 존 켄드루와 막스 페루츠는 1962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단백질 3차원 구조를 결정하는 NMR 분광법을 개발한 쿠르트 뷔트리히와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개발한 자크 뒤보쉐, 요아힘 프랑크, 리처드 헨더슨이 각각 2002년과 2017년에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21년에는 구글 딥마인드가 알파폴드2를 공개하며 인공지능으로 단백질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후 과학계에서 꾸준히 인공지능 기반의 단백질 구조 연구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벨위원회는 왜 이토록 단백질 구조 연구를 선호하는 것일까?

단백질은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주요 물질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생명의 화학적 도구이다. 우리가 보고, 먹고, 느끼고, 숨 쉬는 모든 과정에서 단백질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 소화효소인 아밀레이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그리고 면역 반응에 중요한 항체 등이 모두 단백질이다. 20가지 아미노산이 수십 개에서 수천 개까지 연결된 단백질은 그 서열에 따라 독특한 3차원 구조를 가지며 이 구조에 따라 특정 기능을 수행한다.

즉, 단백질의 구조를 이해하면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생명 현상의 원리와 조절 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단백질 기능의 이상으로 인한 질병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뿐 아니라, 플라스틱 분해 효소나 생분해성 단백질 소재의 개발을 통해 환경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단백질 구조 연구는 꾸준히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왔으며 2024년에는 ‘컴퓨터를 활용한 단백질 설계 연구’와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 연구’에 노벨 화학상이 수여된 것이다.

● ‘단백질 설계 연구’와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 왜 같이 상받았을까?

이번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세 과학자의 연구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먼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의 연구를 살펴보자. 베이커 교수의 단백질 설계 연구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맞춤형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중점을 둔다.

1990년대에 베이커 교수는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로제타(Rosetta)라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구조 예측 연구를 진행하던 중 그는 한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단백질의 서열로부터 구조를 예측해 기능을 연구하는 대신, 원하는 기능을 수행할 구조를 찾고 이에 맞는 아미노산 서열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베이커 교수 연구팀은 2003년 새로운 구조를 가진 단백질을 설계하고 로제타를 이용해 그 구조에 맞는 아미노산 서열을 찾아냈다. 이 서열을 코딩하는 유전자를 박테리아에 도입해 Top7이라는 새로운 단백질을 제작했다. 이후 X선 결정법을 통해 확인한 Top7의 구조는 컴퓨터가 설계한 구조와 매우 유사했으며 이는 인류가 컴퓨터를 활용해 설계한 첫 인공 단백질의 탄생을 의미했다.

Top7의 성공 이후 베이커 교수의 연구팀은 꾸준히 단백질 설계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항상 연구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정확도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의 부재였다. 단백질 설계의 핵심은 설계된 아미노산 서열이 정확한 3차원 구조를 형성하며 의도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예측 방법으로는 설계한 서열이 실제로 원하는 구조를 가질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와 존 점퍼 연구원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폴드는 베이커 교수가 고민하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했다. 이들의 연구 이전에도 단백질 구조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진화적으로 공통의 조상을 가진 단백질들이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공통 조상을 가진 단백질들의 서열을 분석하면 그 안에 구조와 관련된 패턴이 숨어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허사비스와 점퍼는 인공지능이 데이터에 숨어 있는 패턴을 탐지하는 데 뛰어나다는 점에 착안해,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단백질의 진화 정보를 활용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를 개발했다. 2018년에 첫 버전을 공개한 이후 추가적인 연구를 거쳐 2021년에 발표된 알파폴드2는 단백질 구조 예측의 정확도를 기존 60%에서 90%로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며 계산생물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난제로 여겨졌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알파폴드로 예측된 단백질 구조는 2억 개를 넘어섰으며 이는 실험을 통해 축적된 약 20만 개의 구조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알파폴드를 활용해 단백질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폴드의 성공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의 단백질 설계 연구를 가속화하는 촉진제가 됐다. 2018년 알파폴드 초기 버전을 접한 베이커 교수는 인공지능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독자적인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베이커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던 필자가 해당 연구를 주도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로제타폴드다. 로제타폴드 개발에 성공한 베이커 교수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로제타폴드 디퓨전(RFdiffusion)과 같은 단백질 설계 인공지능을 선보이며 기존 단백질 설계의 성공률을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단백질 설계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 단백질 디자인의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

인공지능이 마련해준 돌파구 덕분에 대부분의 단백질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게 됐고,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새로운 단백질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노벨위원회는 이러한 성과를 인류의 이익을 위한 혁신적 발전으로 평가했다.

단백질의 다재다능함은 우리 몸속을 비롯해 미생물, 식물, 동물 등 자연계 전반에서 다양한 생명 현상을 매개하는 역할을 통해 이미 입증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자연에 존재하던 단백질을 개량하는 것을 넘어, 특정 목적에 맞춘 맞춤형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게 되면서 단백질을 활용한 거의 모든 상상이 실현 가능한 상황이 됐다. 이 기술을 잘 활용하면 질병 치료제와 백신 개발은 물론, 단백질 기반의 나노 로봇, 플라스틱 분해 효소, 생분해성 단백질 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이 가능하다. 앞으로 이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그리고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응용될 수 있을지 더욱 기대된다.

※필자 소개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화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화학분자공학사업단에서 연수연구원을 지냈다. 미국 워싱턴대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22년부터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발표된 AI단백질 구조 예측프로그램 '로제타폴드' 연구의 제1저자이며 같은해 한국인 최초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올해 최고 혁신 연구성과'에 선정됐다.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n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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