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도 안 갖춘 교과서, AI 디지털 교과서!

신자유주의 교육관 가진 이주호 장관
밀어부치기식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교육과정과의 연계성 등 외면한 채
경험없는 민간업체까지 참여시키며
미래 세대 교육에 '부실한 교과서'라니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무리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이 있다. 마치 이 정책을 위해 장관이 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초 단기간에 전국 모든 학교에 전면화시키겠다는 의지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정책이다.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그것이다. 이주호 장관은 미래교육을 디지털교육과 등치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가 장관이 되고 작성한 2023년 교육부 주요업무 계획에 따르면 2023년이 ‘국민 눈높이에 맞춘 교육개혁의 원년’이며, 10대 핵심정책의 첫 번째가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이다.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의 제1 개혁 핵심추진과제가 AI 기반 코스웨어*(디지털 교과서) 운영과 테스트베드 확대 및 ‘에듀테크 진흥방안’ 수립이다.

이 장관은 신자유주의 교육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교육은 교육을 기본적으로 서비스 ‘상품’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이 장관 시기에 교사와 학교는 교육서비스상품 공급자,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서비스 수요자(소비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는 정치적 지위나 사회경제적 능력 면에서 구매력 높은 일부 소비자(특히 학부모)들이 교사와 학교에 당당하게 소비자 권리를 요구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도록 길을 내준 사람이다. 사실 서이초 사태의 진짜 원인은 여기에서 비롯하고 있다. 교육을 시장논리로 접근하는 한 불가피한 일이다. 그는 우리 교육이 경쟁과 효율성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주의에 포획당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강행하고 있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그는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우리 교육프레임을 대대적으로 바꾼 소위 ‘5.31 교육개혁’ 개혁안을 만드는 데 적극 관여했다. 또한 대학설립 기준을 대폭 완화해 부실대학이 난립하고 지방 사립대들이 오늘날 고사 직전 상태에서 허우적대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인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입안하는 데도 참여했다. 이명박 정부 때 수준별 수업을 주창하며 우열반을 만들고, ‘고교 다양화 300’으로 자사고·특목고 확대를 본격화해 학교서열화와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표본조사 방식으로 실시되던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조사로 전환한 일제고사를 시행하고, 학교폭력 징계사항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해 학교가 소송전의 전쟁터가 되는 물꼬를 터 준 이다.

반대여론 높은 AI디지털교과서 도입

그런 그가 10년 만에 다시 돌아와 교육개혁 원년을 이야기하며, AI 디지털 교과서를 3년 안에 전국 모든 학교에서 사용하도록 하겠다며 나서고 있다. 설사 사용하지 않아도 전국 모든 학교는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단다. 이런 이주호 장관의 독단적이고 상식에 벗어난 정책추진 방식은 교육계는 물론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AI 디지털교과서를 유보해 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동의자 5만 명을 넘겨 국회 교육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 장관이 밀어붙이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는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제기되는 비판과 문제들은 하나같이 교육 전체를 뒤흔들 심각한 사안들이다.

이주호 장관이 장관 취임직전까지 이사장으로 활동했던 아시아교육협회 관련 민간 에듀테크 업체와의 유착 의혹, 교육청과 교육부가 주관하는 사업에서 27만 명 고교생 시험결과가 유출되고, 교사 1만 명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상황에서 AI 디지털 교과서로 발생할 수 있는 학생 개인정보 유출문제, 학생정보의 사기업 집적문제,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과사용으로 인한 부작용 문제, 권당 몇 천원에 불과한 종이교과서에 비해 학생별 연간 6만 원 이상 소요될 교과서구독료를 업체에 지불함으로써 발생할 교육재정 부담과 정당성 문제, IT와는 전혀 무관한 기존 교과서 출판사와 에듀테크 스타트업체 간 협업으로 진행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 안정성 문제 등등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먼저 교육적 측면, 특히 교육과정과의 관계 문제만 살펴보고자 한다.

교육과정에 부합하는 교과서가 될 수 있는가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AI 역시 일상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시켜주는 것이 교육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술 사회 이해와 그 사회를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디지털 역량을 갖추게 해줘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교육활동 중에 다양한 교재나 교육도구를 사용하는 교사 역시 디지털 활용 교수학습방법에 대한 소양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이 곧바로 다른 것도 아닌 교과서를 AI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교육과정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정한 문서다. 교과서는 실제 수업현장에서 그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준거도구다. 교과서는 교육과정과 별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이 정해진 다음 단계에서야 ‘확정된 교육과정에 근거해’ 제작된다. 단순 참고자료나 보조 자료와 구별되는 교과서에는 교육과정 내용 뿐 아니라 교육과정의 목표, 교수학습 원리, 핵심교육내용, 평가목표와 방식, 심지어 교육방법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다. 이런 이유로 교과서 구성, 교과서에 사용되는 단어나 용어 하나, 삽화나 사진 하나도 교육과정 원리와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

교과서 제도가 국정교과서든, 검정교과서든, 자유발행제든 감수주체가 달라질 뿐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현실에서 전국 모든 학교가 교과서를 구입하고, 거의 모든 수업에서 교과서가 주 교재로 쓰인다. 그래서 교과서를 바꾸는 것은 전국 모든 학교 교실 수업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AI 디지털 교과서처럼 교과서체제 전체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경우에는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과정이 필수다. 아니면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 교과서가 교육과정을 바꾸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교육부는 당분간 기존 종이교과서와 AI 디지털 교과서를 병행하고 AI 디지털 교과서가 전면화된 2028년에 대체여부를 논의하겠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디지털교과서 위주로 수업이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단순 수업보조 자료가 아니라 ‘교과서’인 한 그것에 사용되는 일체의 자료들이 모두 교육과정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고, 엄격한 감수를 거치는 검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2022 교육과정에 따른 종이교과서조차 자료오류 문제가 계속 발생해 정정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AI 디지털 교과서로 학습 속도에 맞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개별 학생에 최적화된 맞춤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AI 디지털 교과서에는 종이교과서보다 난이도별, 학생특성별에 따른 더 많은 학습 자료들이 담길 수밖에 없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2월 22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디지털 교육 비전 선포식’에서 디지털 교육 비전 및 핵심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홈페이지

엉터리 교과서 제작과 도입과정

그런데 이런 교과서 만드는 과정을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교육부판 ‘좋아, 빠르게 가!’를 시전하기로 작정한 것 아닌가 싶다. 작년 6월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방안 발표하고, 1년 남짓 만인 올 8월에 업체들이 세계 최초의 교과서 개발을 완료해 제출하고, 단 3개월 간 검토해 11월에는 검정 작업을 완료한다고 한다. 가히 빛의 속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전례가 없는 세계 최초의 교과서’라면서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교육과정 목표와 운영원리에 부합하는 자료와 교과서 구성, 구동방식 등을 갖춘 AI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 수 있나. 교과서가 갖는 교육적 중요성과 교육과정 기반 제작 원칙을 고려한다면, 이렇게 종이교과서에는 없는 추가되는 자료나 정보를 교육과정에 부합하도록 하는 교육적 가공은커녕 단순 감수할 역량과 시스템운영조차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교육부는 개발업자들에게 교육과정 표준체계 하나 던져주고는 교육 관련 경험이 없는 에듀테크 업체 단독 교과서 출원마저 허용하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러니 교육과정 반영은커녕 최소한의 오류 점검조차 불가능해 교과서 검정은 형식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런 졸속적인 교과서 제작과정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과서를 서책형(종이형)에서 AI 디지털로 바꾸는 것은 단지 교과서 형태의 변화로만 볼 수 없다. 전국 모든 학교 교실에서, 거의 모든 수업시간에 사용되는 교과서를 AI 디지털 교과서로 바꾼다는 것은 단지 디지털 기기와 특정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이상의 의미와 결과를 가져온다. 잘 알다시피 현상적으로는 그저 물리적 소통수단인 전화기를 바꾸는 것이었던 스마트폰 도입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가. 디지털 기술과 만난 전화기는 단지 소통수단의 변화를 넘어 사람들의 생활방식, 사고방식, 관계양식을 변화시키고 전에 없던 사회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교육과 학습을 단순 문제풀이 반복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당연히 디지털 교과서에서 활용되는 자료나 콘텐츠의 내용 뿐 아니라, 형식이 갖는 교육적 효과와 교육과정상 원리 부합여부 등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출판사나 에듀테크 업체에 사실상 일임한다면 교육부는 직무 유기하는 것이며,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걸 피하고 싶다면 이주호 장관은 당장 ‘AI 디지털 교과서’라는 용어 대신 ‘AI 디지털 교육 보조자료’라 쓰시라. 그리고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이니, AI 디지털 교과서 교사연수니 하는 명목으로 사실상 사기업체에 퍼주는 연간 1조 2천억원이 넘는다는 예산을 진짜 미래교육을 위한 교육환경 개선에 쓰시라.

전례없는 시도, 철저한 연구·검증 선행돼야

AI 디지털 교과서는 교육부가 자랑하듯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시도다. 전례가 없다면 교육부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최소한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육과정을 잘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조와 내용구성원리가 필요한지, 교육적 효과는 어떠할 것인지, 교과별 특성에 따른 효과는 어떠할 것인지 등에 대한 연구·검증이 필요하다. 특히 교과서를 직접 사용하는 교사들 의견과 평가가 반영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근거한 교과서가 가능하다. 단 1년 만에 뚝딱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하고, 단 3개월 만에 검정하는 교과서로 미래교육을 하겠다는 이주호 교육부야말로 세계최초의 반 교육적, 미래역행 교육부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주호식 세계최초 교과서의 실험대상이 되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글을 쓴 강민정은 서울의 한 사범대학을 졸업해 25년 가까이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혁신학교와 혁신교육지구(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통해 혁신교육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명퇴 후 교육시민단체에서 교육정책 관련 연구 및 강의, 집필 등을 통해 교육개혁운동 활동가로 복무하다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회에서 4년 간 교육상임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의원임기 만료 후 국회 밖에서 여전히 교육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강의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