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환자 사이 의료분쟁,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나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료분쟁, 우리 법과 제도는 이 변수를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을까.

창원지방법원은 지난달 30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ㄱ(62) 씨와 검사가 양형 부당을 이유로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ㄱ 씨의 형량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ㄱ 씨는 거제의 한 의원에 근무하는 의사로 80대 파킨슨병 환자에게 잘못된 주사약을 처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일로 피해자는 전신 쇠약, 일시적 의식상실, 발음장애 등 병세가 악화되는 상해를 입었다.

ㄱ 씨는 피해자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지 몰랐다. 그는 피해자를 문진할 때 어디가 불편한지 물었다. 피해자는 구토 증상이 있다고 답해서 맥페란 주사약을 투약했다. 구토 증상에 효과가 있어서다. 그러나 피해자는 파킨슨병 환자였고, 맥페란 주사약이 부작용을 일으켰다.

창원지방법원 전경. /경남도민일보

◇유죄 판결에 의료계 반발 = 재판에서는 ㄱ 씨의 문진이 쟁점이 됐다. ㄱ 씨 측은 "의사로서의 문진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기에 업무 과실이 없다"며 "피고인에게 업무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업무 과실과 상해의 결과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1심을 맡았던 통영지원은 "ㄱ 씨는 건강 상태에 관한 질문을 했을 뿐 문진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며 "피해자가 미리 자신의 병력을 고지하지 않았더라도 문진 의무를 이행했다면 파킨슨병을 앓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상해 결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 판결을 보고 '대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 학회'도 재판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판결은 열악한 여건 아래서도 묵묵히 진료실을 지키고, 환자와 국민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며 "의사들에게 책임질 일이 없는 방어 진료와 고위험 환자에 대한 진료 회피를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임을 재판부가 고려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의료 분쟁,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 의료계는 의료사고가 일어났을 때 의료진에게 책임을 크게 물으면 필수의료 진료가 위축되고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준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에서도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덜어주는 '면책조항'이 쟁점이 되고 있다.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교수는 "의료사고가 나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다시는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는 과정은 남겨두고, 정말 운이 나빠서 생긴 일에는 면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7년 12월 16일, 서울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 의료진 3명이 구속됐다. 검찰은 신생아 시신과 주사기 등을 의료진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보고 기소했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단이 나왔다. 의료진 과실과 신생아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아서다.

김 교수는 의사 혼자서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여러 사람이 의료행위에 참여하고 있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면 합당하지 않다고 봤다. 이대목동병원사건만 보더라도 당시 전공의 수가 부족했고, 교수도 아픈 상태에서 일어났지만 병원 법인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김 교수는 "필수의료가 중요하다고 해서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정부가 다 책임지라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범위를 넓혀주고, 그만큼 정부가 책임져주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분쟁이 발생했다고 모두 법정으로 가지는 않는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거쳐서 합의로 의료분쟁을 해결할 수도 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연도별 조정성공률은 평균 66.2%이다.

선준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피해구제팀장은 "소송 전 단계에서 환자와 의료인 사이에 일어난 갈등을 해결하고 있다"며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환자가 조정 신청을 하면 의료감정과 의학적 판단 절차를 거쳐서 당사자 사이 입장과 견해를 조율하게 된다"며 "조정 절차에서 합의하면 의료분쟁 조정이 성립하고 일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면서 의료사고 감정과 조정중재 혁신방안 등을 논의했다. 의료사고 접수상담부터 조사감정, 조정중재 등 모든 과정에서 제도 개선 사항은 없는지 검토했다. 조정 제도가 보완된다면 의료분쟁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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