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자! 병오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신정과 구정 이야기
설의 ‘썰’
일제강점기부터 양력설만 쇠도록‘ 단일과세’ 추진
해방~전두환 정권까지 ‘이중과세’ 단속 지속 계도
공휴일 아닐때도 국민들, 음력설 전후 귀경길 올라
1989년 ‘설날’ 명칭 공식 복원… 3일 연휴 지위 찾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일컬어지는 설날이 그 이름을 온전히 되찾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40대 이상 국민이라면 어려서부터 들은 ‘구정(舊正)’이란 말이 더 익숙할지 모른다. 구정은 음력설을 뜻하는 말로, 신정(新正·양력설)과 대비해 이르는 명칭이었다. 일제강점기 설날이 사라진 것을 두고 구정은 ‘조선설’, 신정은 ‘일본설’로 부르기도 했다. 구정을 쇠는 국민이 다수였지만, 정부는 이를 한사코 말렸다. 정부의 끈질긴 ‘계도 활동’에 더해 구정을 쇠러 고향에 가는 이들을 ‘비과학적’ ‘시대착오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으니, 가시밭길 같은 귀향길이었을 테다. 그땐 왜 그랬을까. ‘구정 탄압’의 역사를 돌아본다.
“민족자존과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고, 고향을 찾는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여 설날과 추석이 명실상부한 우리 고유의 민속명절이 될 수 있도록 하고, 국민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여가 선용 등을 위하여 공휴일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것임.”
1989년 1월26일 국무회의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중 개정령안’이 올라왔다. 안건 제출자는 김용갑 총무처 장관이었다. 총무처가 작성한 개정령안의 제안 이유 중 핵심은 ‘전통문화 계승·발전’과 ‘고향 찾는 국민 편의 도모’였다. 이 안건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같은 해 2월1일 시행되면서 우리 국민은 ‘설날’을 공식적으로 되찾았다. 설날과 그 전후 하루씩, 3일을 공휴일로 정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설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건 1985년부터지만 처음부터 설날은 아니었다. 그해 1월18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그 명칭을 ‘민속의 날’로 결정했다. 하지만 원안은 민속의 날이 아닌 ‘조상의 날’이었다. 돌아보면 민속이든 조상이든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지만, 당시엔 이중과세(二重過歲)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이중과세란 양력설과 음력설을 두 번 쇠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음력 정월을 휴무일로 정하는 ‘구정공휴(舊正公休)’는 1981년 3월 치러진 11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선거가 끝난 뒤 공약 이행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여론에 밀린 민정당은 1984년 12월2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조상의 날 명칭 사용’을 당론으로 정해 정부에 건의했다. 총무처는 조상의 날이 이중과세의 뜻을 내포한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냈고, 결국 민속의 날로 확정됐다. 5공화국 출범 이후 국민을 대상으로 이중과세가 아닌 양력설만 쇠는 ‘단일과세’ 정착을 계도해 왔던 총무처 입장에서는 공휴일 지정까지는 수용할 수 있어도 명칭은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고유의 설날이 사라진 건 1896년 태양력을 수용하면서부터다. 일제는 음력설 쇠는 행위를 강력하게 막았는데, 해방 이후에도 이중과세 금지 분위기는 지속됐다. 경인일보의 뿌리 대중일보가 1946년 1월 음력설을 앞두고 쓴 대담 기사 <이중과세 폐지하자>의 부제목은 <음력 사용은 구식 노인의 고집>이었다. 이 기사에는 ‘양력 사용이 세계적 흐름’이라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저번 겨울방학하는 날 정월 초하룻날 아홉시에 ‘꼬까옷 입고 학교에 오너라’ 했더니 ‘독립이 되었는데 어째서 왜놈의 설을 쇱니까?’ 그래서 ‘양력은 일본사람들만이 쓰는 것이 아니고 세계사람이 모두 쓰는 것이다’하고 설명을 해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시무룩해 가더군요.”

이승만 정권 이후 전두환 정권까지 모든 정부는 ‘이중과세 단속’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1957년 보건사회부 장관이 각 정부 부처에 보낸 ‘양력 단일과세 추진에 관한 건’을 보면 “과감하게 음력을 버리고 양력으로 단일과세를 감행함과 아울러 이에 관련된 무수한 썩고 낡은 생활형태를 일소하여 세계만방과 비견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을 당부하며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 따를 것을 주문했다.
정부 수립 이후 수십 년이 흘러도 음력설을 따르는 국민 인식을 바꾸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은 신정과세 ‘강요’에서 ‘유도’ 형식으로 제도 정착을 꾀했다. 1981년 12월 ‘신정 단일과세의 정착화를 위한 지시’는 정부가 전통 습속 개선을 위해 각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부는 집요하게 양력설 단일과세를 요구했지만, 국민은 음력설을 따랐다. 1985년 전까지 공휴일이 아니었지만, 음력설을 전후해 귀향·귀경 행렬이 이어졌고 도로 정체가 극심했다. 양력을 쇠자고 주야장창 외쳤던 정부 입장에서는 귀향 지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난감했을 것이다.
1960~1980년대 산업화로 지방(농촌)의 인구가 수도권(도시)의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이촌향도(移村向都) 현상이 심했다. 당시 공장 노동자 대부분이 지방 출신이었고, 이들은 음력설을 쇠고자 했다. 새해 1월1일 공휴일에는 기숙사에서 쉬고, 음력설에 결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장주들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 역시 지방 출신이 많았다. 자발적으로 음력설에 휴업을 선택하고, 직원들에게 특별 상여금을 지급하는 곳이 다수였다.
정부는 공직 사회의 솔선수범을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공직자들도 일반 국민과 같이 명절 때 고향에 가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0~1960년대에는 국회가 ‘구정휴회(舊正休會)’를 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으로 불리는 인사들도 양력설이 아닌 음력설을 따랐으니, 정부가 일소하고자 한 ‘악습’이 폐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2026년은 설날이 설날의 이름을 얻게 된 지 37년이 되는 해이다. 설빔을 입고, 떡국을 먹고, 윷놀이를 즐기며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이다.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설날 예법이 있지만, 그 형식에 못지 않게 내용도 중요하다. 새로 시작하는 한 해,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번 설날에는 ‘새해 인사’를 달리 해보는 건 어떨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1월1일에 했으니 설날에는 다른 인사를 전하면서 대화를 터 보자는 것이다.
“아버님, 어머님,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김명래 기자 problema@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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