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오도가도 못하고… 3만가구 `입주지연` 대혼란

이미연 2023. 3. 14. 19: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사비 인상 갈등에 소송 난무
개포자이 200세대 열쇠 못받아
이사·중개업 도미노 피해 우려
피해구제 대상도 명확지 않아
재건축 전부터 단지 안에 있던 어린이집(경기유치원)이 보상을 요구하며 법원에 신청한 준공인가 처분 효력정지가 받아들여져 13일부터 24일까지는 열쇠 불출이 불가해 입주를 할 수 없게 됐다. 사진은 단지 내 입지원센터에 붙어 있는 입주 중단 공고문.

"전입 신고도 안되고 이사도 못해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게 됐다. 이런 집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입주 예정자)

공사비 인상 갈등과 조합 관련 소송 등으로 예정했던 시기에 입주를 하지 못하는 서울 아파트 대단지들이 늘고 있다. 입주 직전이나 입주 기간 도중 시공사나 행정기관 등에 의해 입주가 막히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지면서 입주 예정자들은 물론 부동산 중개업소, 이삿짐 업체 등 '도미노 피해'가 커지고 있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인 3만3338가구로, 이가운데 27%인 9037가구가 강남권에 집중해 있다. 부동산 시장에선 강남·서초·양천구 주요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 지연 가능성이 크다며, 연쇄적 효과를 감안하면 3만 가구 이상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입주를 시작한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 3375세대)의 입주가 돌연 중단됐다. 이 단지는 조합과 단지 내 유치원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입주 예정일이 다가오자 강남구청이 '한시적 준공인가 처분'으로 입주가 시작돼 현재까지 1000여 세대 정도만 입주를 마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재건축 전부터 단지 안에 있던 경기유치원이 서울행정법원에 오는 24일까지 '준공인가 처분'의 효력정지를 신청,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열쇠 불출이 막힌 것이다.

지난 주말 사이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사를 준비했던 400여 세대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어렵사리 잔금을 마련한 200여 세대는 입주지원센터가 운영됐던 지난 12일 열쇠를 받았지만 나머지 200여 세대는 발이 묶여버렸다. 현재 사는 집에 새로 이사오는 경우가 없다면 집주인과 상의해 일정 기간 연장 등으로 거주 기간을 임시 늘릴 수 있겠지만, 당장 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세대는 짐을 어딘가에 맡기고 급하게 임시 거주지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셈이다. 자녀의 학교 등교 문제는 이미 가시화된 상태이며, 가구나 가전 배송 예약이 어그러지거나 인테리어 공사를 못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한 입주 예정자는 "전에 살았던 집에는 다른 집이 이미 이사를 온 상태이고, 이사 가야할 새 집은 키 불출(열쇠 지급)을 받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렸다"며 "조합 측에 수차례 연락했는데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며 보관 이사를 알아보거나 호텔에 머물면 관련 비용을 준다는 답만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 단지 매물을 중개한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는 "입주 도중 키를 주지 않겠다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한 집이 키 불출이 막힌 기간에 이사를 계획했다가 주말에 그 소식을 듣고 겨우 잔금을 마련해서 키를 받았고, 다른 집은 이사 예정일이 24일 이후라 아직은 괜찮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불안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원 등 200여명은 이날 강남구청을 찾아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구청은 행정명령 즉각 취소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강남구청 측에 탄원서도 제출했다.

양천구에서는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증액 갈등이 풀리지 않아 아파트 입구가 컨테이너와 차량 등으로 막힌 케이스도 나왔다. 서울 양천구 '신목동 파라곤'(신월4구역 재건축)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초 시공을 맡은 동양건설산업이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비 약 100억원 증액을 요구했으나, 조합 측이 이를 거부하자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해 입주를 막은 것이다. 한 예비 입주자는 "대출이 막혀 잔금을 치르지 못한 집은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돼 거리에 나앉을 판"이라며 "전입신고도 할 수 없어 아이들 전학도 취소됐다"고 호소했다.

예상치 못한 입주 불가사태로 인한 입주예정자들의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입주지연 보상금 등 피해구제를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명확하지 않아 분쟁 가능성도 예상된다. 개포자이의 경우 입주예정자들 사이에서 조합이나 유치원,강남구청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김문수 법무법인 오른하늘 변호사는 "입주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소송 결과에 따라 유치원 측이나 조합 측, 또는 강남구청 측에 귀속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위법성 및 고의과실 여부가 인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