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 속 오롯이, 한 사람의 '스위트 홈'
거대한 아파트 단지, 층마다 느껴지는 썰렁한 정적. 누군가는 생기가 넘치는 이웃과 북적이는 복도를 상상하지만, 이곳에서는 반대로 ‘나 혼자만’ 살아간다. 모든 세대가 입주를 기다리며 공실로 남은 건물, 시간이 덧칠된 먼지와 닫힌 문이 일상 풍경. 이런 환경에서 딱 한 집만에 불이 들어온다. 월세 70만 원, 누군가의 ‘스위트 홈’.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는 우리 집 층에, 나만 살아. 마치 체르노빌 구역에서 혼자 살아가는 기분.”
입주민이라고는 자기뿐인 아파트. 그중 하나가 일상 공간이 되어버린 것은, 보기 드문 ‘공실화’의 민낯 그 자체다. 20세기 말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외면받는 건물들, 폐가화된 아파트들의 현실은 지역과 시대, 언어를 막론하고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이곳은 다름 아닌 프랑스, 그리고 월세 70만 원짜리 생활이다.

공실 아파트의 속사정, 왜 아무도 함께 살지 않을까
프랑스의 중소도시나 신도시에선 이미 여러 해 전부터 ‘공실 아파트’, 즉 채 입주되지 못한 아파트가 적잖다. 때론 도시 인구 감소, 지역 경기 침체, 혹은 건물 자체의 노후와 구조 문제 때문이다. 신축 아파트가 인구 급감으로 텅 비거나, 주택정책의 실패로 구 도심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지역에 따라선 투자 목적으로만 소유되고 비어 있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아파트의 내부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폐허 이미지와 꽤 닮았다. 오래된 배관, 집밖에 따로 놓인 화장실, 오래 사용하지 않아 먼지 쌓인 캐리어와 변기 커버, 삐걱거리는 복도 조명. 그러나 누군가 오롯이 이곳에 거주한다는 사실은, 공간의 생명력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님을 증명한다.
이렇듯 극단적인 ‘단독 세대’는 다양한 사회경제학적 배경을 품고 있다. 부동산 가격 급등기 저가 매물 선점, 경기 침체로 인한 대규모 공실, 지방 소도시의 소멸 위기 등 다양한 내부 사정과 맞물린다.

세상에 하나뿐인 생활, 적막이 남긴 ‘완벽한 자유’
남의 집 소음, 위층 수돗물 소리, 엘리베이터 앞 대화 소리––이런 불편은 없다. ‘이웃’ 개념조차 사라진 공간에서는 낮에도 밤에도 방음이 따로 필요 없다. 내 집 앞 계단, 내 복도에는 내가 유일한 점유자다. 설령 문을 반쯤 열어놓고 다녀도, 방문객이나 이웃이 지나칠 일 없다. 감시도 없고 간섭도 없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오히려 문단속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평범한 일상에서는 프라이버시 등 자유의 빈도와 강도가 폭발적으로 커진다. 재택근무, 조용한 독서, 음악 감상, 또는 짧은 산책. “내가 원하는 대로, 언제든, 누구 신경도 안 쓰고”라는 진정한 사적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때로 ‘외로움’과 ‘자유’의 양면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환경에는 의도치 않은 불안감이 따라붙는다. 밤이면 노숙자나 외부인이 건물에 침입할 우려, 전체 단지의 유지관리 문제, 구조적으로 오래 비어 있던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안전위험이 커지기도 한다. ‘초저밀도’ 주거라는 경험이 주는 자유와 고독, 그리고 불안은 서로 얽혀 있다.

폐아파트의 가격, '월세 70만 원'이 비싼 이유와 싼 이유
이 집의 월세는 70만 원. 서울 도심이나 개발주택 기준이라면 “저렴하다” 소리가 먼저 나오겠지만, 공실률이 높고 사실상 방치된 건물, 입주민 없는 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비용이 왜 이렇게 비쌀까?”라는 반문 역시 가능하다. 실제로 관리비 부담이 혼자에겐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공용설비와 보안, 단지 전체를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나, 남들은 2~4인 가족이 쓰는 면적을 온전히 독점할 수 있다는 어쨌든 ‘프리미엄’ 효과가 동반된다.
반면 시세에 비해 시설노후, 서비스 부재, 주거환경의 열악함 등은 단점이 된다. 접근성, 치안, 생활편의 시설 접근, 공용공간 관리 등은 혼자 사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극도로 불편해질 수 있다. 동시에 시장 경제 원리, 즉 ‘거주경험의 희소성’이 반영되어, 공급자 입장에선 낮은 월세이면서도 심리적 가치는 희귀성 덕분에 더 높게 매겨진다.

고립의 역설, ‘불안’과 ‘안심’이 공존하는 곳
아무도 살지 않는 폐아파트의 가장 큰 특색은 ‘고요함’ 그 자체다. 외부 침입 위험이나 공포가 종종 언급되지만, 의외로 실제 사건은 적다. 사람이 없어 쥐나 바퀴벌레가 더 많을 것 같지만, 주인공 역시 2년을 살면서 벌레나 쥐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때때로,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도 나온다.
심야 시간, 복도 끝에서 울리는 발자국 하나가 더욱 크게 느껴지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자신의 발소리만이 메아리칠 정도의 정적이 때론 새로운 형태의 긴장감을 만든다. 하지만 이런 고요함과 적막 속에서도 ‘내 집’의 안전을 스스로 결정하고, 매일 조심스럽게 문을 관리하며, 나만의 공간을 지킨다는 뿌듯함도 있다. 안전과 불안은 제로섬이 아니라 교차하는 감정이 된다.

폐허에서 살아가는 ‘나’, 도시와 집의 미래를 묻다
오래된 도심과 신시가지에선, 공실 아파트가 늘어난다. 저출생·고령화·이동의 자유가 활발한 유럽뿐 아니라, 최근 한국의 중소도시에서도 공실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 세대별 주거 선호 변화, 도심 공동화, 경제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대규모 단지의 절반 이상, 혹은 대부분이 ‘거주자 없음’ 상태에 놓이는 경우도 더 이상 드물지 않다.
그렇다고 폐아파트가 무가치한 슬럼으로만 전락하지는 않는다. 일부에선 개인 창작 공간, 예술가 레지던스, 저예산 장기 임대주택 실험 등으로 재생 가능성을 찾기도 한다. 언제라도 새 사람이 들어올 가능성, 혹은 공동체적 대안 실험이 이뤄질 수 있는 잠재적 공간이기도 하다. “나 혼자 살아도 집은 집”이라는 주인공의 소박한 결론에는, 집의 본질성과 공간의 활용, 미래 도시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함께 담겨 있다.
폐허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스위트 홈은, 결국 도시와 집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떤 공간에, 어떤 ‘자기만의 집’을 꿈꾸고 있는가? ‘월세 70만원, 나만의 아파트’의 현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씁쓸함만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