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실속 있는 본질, 폭스바겐 제타

기본기에 충실하다. 연료 효율은 훌륭하다. 편의장비도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화장을 안 했다. 겉보기엔 투박할지 몰라도, 제타는 ‘자동차’ 본질에 충실한 독일차다.

크고 아름다운 디스플레이와 화려한 무드등으로 치장하지 않았다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제타의 아날로그 정신은 실내에서 도드라진다. 버튼을 모조리 없애고 터치스크린 하나만 덩그러니 놓는 무책임이 일상인 디지털 시대에 투쟁하는 마지막 전사다. 스티어링 메뉴 버튼과 크루즈컨트롤 조작부, 공조기, 조명, 비상등, 시트 조절 스위치 등 원래 있어야 할 버튼이 제자리에 있다.

인포테인먼트 주변부에 일부 터치 패드가 있지만, 볼륨 레버와 메뉴 다이얼을 따로 빼 전혀 불편하지 않다. 심지어 시프트레버조차 정직한 기계식이다. 드르륵, 드르륵… 그리운 감성이다. 차를 처음 몰더라도 아주 능숙하게, 편안하게 다루기에 전혀 불편 없다.

폭스바겐답게 승차감은 차급을 뛰어넘는다. 잔망스럽게 굴지 않고 부드럽게 도로를 읽는 모습이 중형 세단 못지않다. 평범한 출근길에는 뒤서스펜션이 토션빔이라는 사실을 새하얗게 잊을 터다. 출력은 초반 가속에 집중해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쑥 튀어 나간다. 시내에서 치고 나갈 때 답답함을 덜었다(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에는 조금 예민하지만…).

2열 승차감은 준수하다. 차 뒤꽁무니가 통통 튀는 현상을 잘 억제한 덕분이다. 공간은 성인 남성에게도 여유롭고, 시트 각도는 적당하다. 열선 시트와 컵홀더, USB-C타입 포트 1개를 마련해 장거리 여행도 문제없다. 다만, 2열 송풍구가 없어 극한의 날씨라면 조금 괴로울지도. 연비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부럽지 않다.

약 2시간 동안 시내와 고속도로를 고루 달렸는데, 130km를 이동하면서 1L에 20.1km 효율을 기록했다. 디젤 시승차를 잘못 받았나 싶었지만 폭스바겐코리아는 디젤 제타를 팔지 않는다. 길이 막히는 퇴근길에도 평균연비는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시승차를 처음 받았을 때 주행가능거리는 580km였는데, 420km를 달린 뒤 남은 주행가능거리는 620km로 늘었다. 본격적인 연비 주행을 시도하면 한 번에 1000km 주행도 거뜬하겠다.

제타는 ‘엔트리급 수입차는 옵션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깨부순다. 차로유지보조 기능을 포함한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부터 1열 통풍시트, 무선 애플 카플레이 등 소비자가 바라는 옵션을 가득 챙겼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부재가 조금 아쉽지만, 차급을 고려하면 큰 불만은 아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실속 있는 구성이다. 하지만 ‘다홍치마’가 자꾸 떠오른다. 한때 ‘2000만원대 수입차’라는 강력한 한방으로 주목받은 제타지만, 가격을 야금야금 올린 지금은 몸값이 그랜저에 버금간다. “차는 좋은데…”라는 말로 포장하기엔 숫자가 너무 크다. 가성비 국산차를 기준으로 삼는 한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선 더 과감한 한방이 필요하다.

권지용 사진 이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