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해외 계열사를 동원해 국내 자회사를 지배하는 이른바 역외 순환출자가 공정거래법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계열사 간 순환출자는 법으로 막혀 있지만, 해외 법인을 통하면 명확한 제재 근거가 없어 법의 사각지대가 생긴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구조가 자본시장 질서를 흔들 수 있다며 신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법인 간 출자를 금지한 현행 공정거래법 제21조(상호출자의 금지)와 제22조(순환출자의 금지)는 국내 계열사에만 적용되는 규제다.
이는 해외 법인을 거쳐 출자구조를 만들면 법망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허점을 이용한 순환출자 사례는 2023년 25건에서 2024년 32건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곳이 고려아연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1월 임시 주주총회를 하루 앞두고 호주 손자회사 썬메탈코퍼레이션(SMC)에 영풍 지분 10.33%를 넘기며 '고려아연→썬메탈홀딩스(SMH·SMC 모기업)→SMC→영풍→고려아연'의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었다. 공정거래법상 해외 계열사인 SMC의 출자 행위를 법 위반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고려아연은 경영권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역외 순환출자 구조와 상법 제369조 제3항에 따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25.42%)의 의결권이 제한돼서다.
다만 적용 여부에 따라 쟁점이 될 수 있는 법 조항도 있다. 공정거래법 제36조(탈법행위의 금지)와 시행령 제42조는 '타인의 명의를 이용한 우회 출자'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이런 와중 최근 정부가 역외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고려아연 사례를 포함한 대기업집단 해외 법인 출자 구조를 전반적으로 점검하면서 공시와 모니터링 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조사 종료 후에는 제도 개선 방향을 포함한 종합 결과를 공개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특히 주병기 공정위원장이 이런 흐름에 힘을 실으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공정위의 수장이 직접 해외 계열사 순환출자에 강경 대응 의지를 밝힌다면, 이는 관련 규제 강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주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현행 법 체계는 국내 계열사 간 출자만을 규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지배력을 우회적으로 확대할 우려가 있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편법적인 순환출자가 계속된다면 자본시장 투명성과 공정성이 함께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현행 공정거래법은 국내 계열사 간 출자만을 제한하기 때문에 명백한 허점이 존재한다"며 "편법 출자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결국 국부 유출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하루빨리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 공백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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