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TV 사업의 위기는 패널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에서 철수하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면서 삼성전자 TV 사업은 주력 제품군의 핵심 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그룹 차원의 결단이었지만 완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에는 원가 통제력 약화라는 비싼 수업료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LCD 공급망 재편에 흔들린 수익성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철수는 삼성 TV 사업 수익성 악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앞서 지난 2022년 6월 LCD 패널 시장이 중국 업체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LCD 패널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한계에 달한 LCD를 과감히 정리하고, 고부가가치인 OLED와 퀀텀닷(QD)-OLED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디스플레이 사업만 보면 저수익 사업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에 집중한 합리적 선택이었지만 삼성전자 TV 사업에는 원가 관리 부담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QLED와 네오 QLED 등 LCD 기반 주력 제품군의 패널을 계열사 밖에서 조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제품으로 판매하는 QLED는 퀀텀닷 기술로 색 표현력을 높인 제품이지만 큰 틀에서는 LCD TV에 속한다. 네오 QLED도 퀀텀 미니 LED를 광원으로 활용하는 프리미엄 LCD 제품군이다. 삼성전자가 OLED TV 라인업을 넓히고 있지만 전체 판매량을 떠받치는 제품군은 여전히 QLED와 네오 QLED 등 LCD 기반 라인업이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가 LCD 패널을 생산할때는 패널 가격 변동 부담을 일정 부분 흡수하고 완제품 마진을 조율할 수 있었다. 그러나 LCD 패널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삼성전자 TV 사업은 패널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됐다. 패널 가격이 오를수록 완제품 수익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후 LCD 패널 공급망은 중국 업체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BOE, CSOT, HKC 등 중국 패널 업체들은 생산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LCD 패널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삼성전자로서는 세계 TV 시장 1위를 지키기 위해 LCD 기반 대형·프리미엄 제품을 계속 팔아야 하지만 핵심 부품 조달에서는 중국 패널 업체의 영향권에 더 크게 노출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OLED 개화기 지연에…中 추격까지
패널은 TV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LCD 패널 가격이 오르면 TV 제조사는 제품 가격을 올리거나 이익률을 낮춰야 한다. 그러나 TV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들어섰고, TCL과 하이센스 등 중국 완제품 업체들은 낮은 가격으로 대형·고화질 제품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가격을 크게 올리면 점유율 방어에 부담이 생긴다. 반대로 가격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면 패널 가격 상승분을 제조사가 떠안아야 한다.
실제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 매입액은 매해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 기준 DX부문의 디스플레이 패널 매입액은 2022년 6조244억원에서 지난해 7조9606억원으로 늘었다. 전체 주요 원재료 매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8.3%에서 지난해 10.7%로 상승했다. TV뿐 아니라 모바일과 다른 세트 제품용 디스플레이가 포함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패널 매입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흐름은 확인된다.
OLED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진 점도 TV 사업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TV 시장이 빠르게 OLED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봤지만 전 세계적으로 고금리·고물가 흐름이 장기화하면서 고가의 OLED 대신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미니 LED와 QLED 등 LCD 기반 프리미엄 제품을 택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앞당겨졌던 TV 교체 수요가 소진되면서 OLED 전환은 더 늦어졌다. 제조 원가가 높은 OLED는 가격을 크게 낮춰 시장을 넓히기 어려웠고, 소비자들은 화질 격차를 좁힌 LCD 기반 프리미엄 제품으로 눈을 돌렸다. 삼성은 수익성이 낮은 LCD 기반 제품 비중을 조기에 줄이지 못한 채 중국 패널사의 가격 공세와 원가 상승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OLED 전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삼성전자 TV 사업에는 수익성 부담을 키운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LCD 기반 주력 제품군의 외부 패널 조달 부담은 커졌고 고부가 OLED 시장은 예상보다 더디게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외형을 유지했지만 원가 통제력 약화와 포트폴리오 전환 지연이라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내부적으로 수익성 압박이 커진 가운데 외부에서는 TCL과 하이센스 등 중국 제조사들이 대형 TV와 미니 LED를 앞세워 중저가를 넘어 준프리미엄 시장까지 파고들며 삼성전자 TV 사업을 본격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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