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봉과 의사봉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5. 5. 6. 14:08
돌잔치의 핵심은 돌잡이다. 돌잔치 당일 상 위에 여러 물건을 갖다 놓고 아이로 하여금 하나를 고르게 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어른들은 애가 책을 만지면 이 다음에 커서 학자, 붓을 집으면 한석봉 같은 명필가가 될 것이라며 웃음꽃을 피운다. 길쭉한 실을 선택하면 장수를 누릴 것이라 하고, 돈이나 쌀에 손이 가면 백만장자가 될 운이라 여긴다. 돌잡이 상에 오르는 물품 중에는 법관이 재판 때 쓴다고 해서 ‘법봉’(法棒) 또는 ‘판사봉’이라고 불리는 나무 망치도 있는데, 이것을 잡으면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판사가 된다고 해서 어른들이 좋아한다. 과연 그럴까.

대법원에 따르면 대한민국 법원에 법봉이란 없다. 일각에선 ‘1960년대까지 사용되다가 사라졌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1948년 사법부 출범 이래 법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 판결을 선고한 뒤 법봉을 땅땅땅 세 번 두드리는 광경은 어디서 온 거지’ 하고 궁금하게 여길 이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법원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이 진짜인 양 착각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변호인’(2013)에는 1980년대 초 시국사건 재판 도중 법정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판사가 나무 망치를 세 번 두드리며 “정숙! 정숙하세요”라고 외치는 대목이 있다. 100% 잘못된 고증이다.
많은 이들이 법봉이나 판사봉으로 알고 있는 나무 망치는 실은 ‘의사봉’(議事棒)이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할 때, 또 국회의장과 국회 상임위원장이 본회의 또는 상임위 회의를 주재할 때 나무 망치를 들어 세 번 두드리는 모습을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니 돌잡이 상에 오르는 여러 물품들 가운데 나무 망치는 법봉 말고 의사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돌잔치 날 아이가 나무 망치를 집는다면 법조인이 아니고 장차 대통령, 국회의장, 총리 등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할 징조로 여기면 되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윤호중 의원이 5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법봉보다 국민이 위임한 입법부의 의사봉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근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데 대한 항의 차원으로 풀이된다. 존재하지도 않는 법봉을 의사봉과 비교한 것도 수긍하기 힘들지만, 삼권분립의 나라에서 국회의장의 의사봉이 무슨 신줏단지라도 되는 양 떠받드는 태도도 영 탐탁치 않다. 민주당은 “의사봉을 칠 때마다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으로는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라고 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2015년 별세)의 겸양부터 배울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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