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CS 위기설에 금융당국 “은행권 자본건전성 확충해야” [한강로 경제브리핑]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설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위험이 커지자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권에 ‘방화벽’을 더 높이 쌓으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당초 은행권 경영 및 관행 제도 개선 차원에서 위기 대응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최근 위기감이 고조되자 더욱 강력한 자본건전성 확충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기 둔화에 따른 자산거래 위축, 지난해 1월 세수가 많았던 것에 따른 기저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난 1월 국세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7조원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6일 ‘제3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은행권이 향후 불확실성에 대비해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건전성 제도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주문한 것은 최근의 금융 불안정성 확대도 문제지만 국내 은행 자본 적정성에도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는 “2022년부터 금리·환율의 가파른 상승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지난해 9월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은 12.26%로 전년 말 대비 하락하고 있고 유럽연합(EU·14.74%), 영국(15.65%), 미국(12.37%)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자본 적정성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밝혔다. 이날 금감원이 발표한 올해 1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31%로 전월 말 대비 0.06%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의 연체율은 0.55%로 전월 말 대비 0.09%포인트 올랐다.
금융당국은 우선 2016년 제도 도입만 하고 실제 활용은 하지 않은 경기대응완충자본(CCyB)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신용팽창 시기에 추가자본을 적립하도록 하고 신용 축소·경색 때엔 적립자본을 해소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급증한 여신의 부실화 가능성에 대비해 올해 2∼3분기 중 현재 0%인 경기대응완충자본에 추가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은행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를 신규로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금융당국은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 등 기존 발표한 충당금 제도 정비 방안 절차를 상반기 중 완료하고 시행하기로 했다.
회의를 주재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SVB 사태 등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불확실성 우려가 커진 만큼 금융권 건전성 제고가 중요한 시점”이라며 “은행권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해 자본건전성 확충과 대손충당금 적립 관련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SVB사태로 금융당국이 은행권 과점체제 개선을 위해 추진한 스몰 라이선스, 특화전문은행 도입 논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에는 “계획대로 6월 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며 변함없는 의지를 강조했다.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의 조치가 시장 안심 차원이며 국내에는 SVB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연체율이 조금씩 오르는 점 등이 뇌관이 될 수 있지만, 은행들이 위기에 대비해 충당금을 많이 적립해놨고 최근에 이익도 많이 났으니 자기자본을 올리는 등의 노력을 더 할 것”이라며 “금융당국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SVB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의에서는 ‘돈 잔치’ 비판을 받는 은행권의 성과보수 체계와 희망퇴직금 관련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5대 주요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2조6908억원, 이자이익은 36조9388억원이었다. 5대 주요은행은 성과급에 1조9595억원을, 퇴직금엔 1조5152억원을 지출했다. 김 부위원장은 “최근 은행권 대규모 수익은 임직원 노력보다 코로나19 및 저금리 지속 등으로 대출 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금리 상승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과 성과급이 사실상 고정급화돼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이어 “성과보수 체계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등 은행권이 스스로 개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이 36시간 만에 파산한 배경에 스마트폰을 이용한 뱅크런(현금 대량인출 사태)이 한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인터넷뱅킹 비중이 큰 국내 은행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다만 특수한 상황이었던 SVB와 국내 은행권은 체질이 달라 뱅크런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중론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뱅킹을 통한 입출금·자금이체 서비스 이용 비중은 77.7%로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그 밖에 창구 5.5%, 자동화기기(CD·ATM) 14.2%, 텔레뱅킹 2.6% 등으로 집계됐다.
SVB가 자금 위기에 직면한 지 36시간 만에 파산한 것은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를 하면서 예금 인출이 쉬워졌기 때문이라는, 일명 ‘폰 뱅크런’이 배경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인터넷뱅킹이 일상화한 우리 은행업계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인터넷은행) 등장과 함께 모바일뱅킹 편의성을 경쟁적으로 높여왔던 만큼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앞서 2020년 예금보험공사는 관련 보고서에서 “자금 이체의 시공간적 제약이 사라지면서 디지털 뱅크런 발생 가능성이 대두됐다”며 디지털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SVB 사태의 배경에는 ‘사이버 뱅크런’만 있는 게 아니어서 우리 금융시장과 같은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SVB는 예금 대부분을 미국 국채에 대량 투자했다 손실을 내 자금 위기를 불렀고, 여·수신(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42.5%에 불과해 예대마진으로 안정적 수익을 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반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여·수신 비율은 모두 90% 이상이었다. 주식과 채권 등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유가증권 투자 비중도 20% 미만이었다. 긴급 상황에 대비 가능한 유동성 비율도 높았다. SVB 사태 직후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우리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모바일뱅킹 접근성이 더욱 높은 인터넷은행도 대부분 계좌가 소액 자금으로 이뤄져 있어 단기간의 뱅크런 가능성은 작다는 게 당국 분석이다. 금감원의 최근 관련 점검에서 인터넷은행의 1인당 평균 예금액은 200만원 수준이었다. 소수 고객이 큰 예금을 보유했던 SVB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터넷은행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사례와 달리 개인 고객이 많고, 예금 규모도 작아 뱅크런에 대한 우려는 하고 있지 않다”며 “많은 은행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금융생활을 하고 있어 인터넷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국세수입이 전년 동월 대비 7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다만 예산안 확정 지연으로 총지출도 감소하면서 나라살림은 전년보다 소폭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재정동향 3월호’에 따르면 1월 국세수입은 42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조8000억원 감소했다. 이는 1월 기준 역대 가장 큰 감소다.
세목별로 보면 부가가치세가 3조7000억원 감소해 가장 크게 줄었다. 소득세는 부동산 거래가 위축된 영향으로 8000억원 줄었고, 법인세도 7000억원 감소했다.
1월 세외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2000억원 증가한 2조원으로 집계됐다. 기금수입은 16조5000억원으로 2조7000억원 늘었다.
국세수입과 세외·기금 수입을 합친 1월 총수입은 61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조9000억원 감소했다. 1월 총지출은 작년 동기 대비 5조2000억원 감소한 51조1000억원이었다. 기재부는 “2023년도 예산안 확정이 지연되며 사업계획 수립도 연달아 지연돼 총지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10조30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흑자 폭은 작년 1월보다 1조3000억원 확대됐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7조3000억원 흑자를 나타냈다.
2월 국고채 발행 규모는 13조4000억원이었다. 1∼2월 국고채 발행량은 28조2000억원으로 연간 총 발행 한도의 16.8%를 차지했다. 정부는 “최근 국고채 금리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영향과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등으로 변동성이 심화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는 “연초 악화했던 재정 거래 유인이 다소 회복되며 2월 외국인의 국고채 순투자는 3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됐다”며 “3월 국고채 만기상환 이후 재투자동향 등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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