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猫)하고 대견(犬)하게] 백자박물관 출근하는 작은 호랑이… 특기는 ‘도자기 안 깨기’

안영옥 2024. 2. 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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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백자박물관 마스코트 고양이 ‘호야’
도자기 체험장 찾은 아이들 마음 사로잡으며 인기
반년 전 박물관 나타나 직원들과 함께 출·퇴근
“지금처럼 많은 사랑받으며 오래 행복하길”

‘유명해져라, 아니 유명해지지마, 아니다 그래도 유명해져라, 안돼 그냥 유명해지지마…’ 나만 알고 있던 어떤 멋진 사람이나 좋은 노래, 귀여운 동물이 남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 드는 내적 갈등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보다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마음과, 좋은 건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이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알음알음 유명세를 얻고있는 ‘우리 동네 명물’ 동물 친구들을 소개한다.

‘양구백자박물관에 호랑이가 출근한다?’

‘백토의 고장’ 양구에서 뽀얗지도 않은 것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반년 전 어느날 밤 양구백자박물관에 자박자박 숨어들어 직원들의 마음을 홀리고는 이제는 관람객들의 눈길까지 사로잡고 있다. 호랑이 무늬를 닮아 ‘호야’라는 이름을 얻은 묘생 8개월 차 고양이다.

호야가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도자기 제작 체험장이다. 향긋한 흙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윙윙 물레가 도는 다이내믹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호야의 애착 방석과 스크레처, 장난감, 사료, 간식 등 세간살이가 모두 이곳에 있다.

직원들은 체험장 입구에 호야를 소개하는 사진과 안내 문구를 부착했다. 혹시라도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체험객이 있을 수 있기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차원에서다. 기우였다. 우려와 달리 체험 주 고객(?)인 아이들은 마냥 신난다. 체험장에 뛰어 들어오며 호야의 이름을 외친다. 체험은 뒷전이고 호야와 노는 게 더 좋은 아이들이다.

이쯤에서 호야의 일과가 궁금해진다.

호야의 ‘박물관 라이프’는 누군가의 차 소리로 시작된다. 박물관의 ‘대장님’ 정두섭 관장의 차 소리를 기가막히게 알아차리곤 벤치 밑에서 유유히 걸어 나와 건물 앞에 대기한다. 체험장 입장 후에는 조식을 먹고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아침조례를 하듯 직원들을 순회하며 이마와 꼬리로 안부를 묻는다. 야무진 출근인사 후 오전 10시부터는 체험장에 마련된 전용 방석에 누워 두어시간 꿈나라로 떠난다. 그 이후는 고양이의 본분인 ‘먹고 자고’의 반복이다. 물론 사룟값을 해야 하기에 체험장을 찾은 어린이들을 응대하는 업무도 잊지 않는다. 분주한 오후가 지나고 직원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호야도 박물관 건물을 나선다. 퇴근 후 주로 머무는 곳은 박물관 지붕 아래 공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호야의 ‘야생 라이프’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친구들을 박물관 처마 밑으로 초대해 낮에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공유하고, 새벽녘이 돼서야 대장님의 차 소리를 기다리며 쪽잠을 청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호야의 특기는 ‘부름에 대답하기’와 ‘도자기 피해 살살 걷기’다. 깨지기 쉬운 ‘도자기의 특성’과 높은곳에 있는 물건을 발로 살살 밀어 떨어뜨리는 ‘고양이의 습성’이 충돌할 법 하지만 호야는 백자박물관에서 원만하게 살아가는 법을 이미 터득했다.

호야의 집사를 자처한 이는 장덕진 학예연구원이다. 도예가 이기도 한 장 작가는 박물관에서 체험업무를 담당하며 호야를 살뜰히 보살피는 역할도 한다. 물론 호야의 사룟값도 담당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직원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해 호야의 중성화수술도 마쳤다.

호야는 이름만큼이나 용맹한 고양이다. 자신을 돌봐주는 직원들에게 보은 하듯 박물관 주변으로 쥐와 새를 물어온다. 호야가 영특한 행동을 할 때마다 입을 맞추던 직원들은 그 쥐와 새를 본 후로 엄두를 못 낸다. 하루는 다른 고양이의 습격을 받아 피투성이로 돌아온 호야를 보고 직원들은 사료급식량을 두 배로 늘렸다. 많이 먹고 크게 자라서 그 고양이에게 복수하라는 의미를 담아.

사실 박물관 직원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 호야에 앞서 박물관에 터를 잡았던 고양이 ‘고영희’를 떠나보낸 기억 때문이다. 고영희는 호야만큼이나 사람을 따랐고 박물관에서 다섯 마리의 예쁜 새끼도 낳았다. 호야처럼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2년 가까이 직원들과 살갑게 지내다 교통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장 작가는 고영희가 쓰던 방석을 버리지 않고, 영희의 조각을 만들어 방석 위에 놓아두었다. 양구백토로 재탄생한 고영희는 새 식구 호야 옆에서 영원의 묘생을 살고 있다. 장 작가는 “호야가 아프지 않고 지금처럼 많은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오랜 시간 박물관의 마스코트가 돼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영옥

■ 호야의 근무지 양구백자박물관은 어떤곳?

양구지역은 백자 원료인 질 좋은 백토가 매장되어 있어 조선시대 왕실 관요인 분원에 태토를 공급하는 중요 공급지였다. 이곳에 들어선 양구백자박물관은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도자 작품을 30분가량 관람 할 수 있는 전시 공간과 초보자도 할 수 있는 도자기 체험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박물관 도자역사문화실은 2022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받았을 만큼 수려하다.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청량하고 넓은 잔디밭과 카페 등도 인기 만점.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가마터도 볼 수 있고, 박물관 바로 옆에는 강이 흘러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최근에는 정부가 선정하는 ‘로컬100(지역문화매력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양구백토로 빚은 소박한 달항아리를 보며 ‘달멍’을 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박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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